택시 탄 직후 검거, 대포폰 쓰며 베일 속 이동
조력자들 쫓으며 5개월 만에 검거
1조6,000억원대의 피해액이 발생한 라임자산운용 사태의 핵심인물인 김봉현 전 스타모빌리티 회장이 24일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경기남부경찰청이 이날 오전 김 전 회장을 조사하기 위해 경기남부청 내 지능범죄수사대 사무실로 이송하면서다.
그는 피해자들에게 할 말이 없느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묵묵부답으로 일관한 채 사무실로 향했다.
김 전 회장은 하루 전인 23일 오후 9시 서울 성북구의 한 노상 택시 안에서 검거됐다. 누군가를 만나기 위해 택시를 타는 순간 잠복 중이던 경찰이 덮쳤다. 경찰은 택시 안에서 미란다원칙을 고지하고 수갑을 채웠다. 경기 수원시에 있는 수원여객 횡령 사건으로 지난해 12월 구속영장이 청구되자 잠적한 지 5개월 여 만이다.
김 전 회장은 가까운 거리도 택시를 3~4번 갈아타는 치밀함을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경찰은 김 전 회장의 조력자가 있다고 판단, 조력자들의 뒤를 쫓기 시작했다. 언젠가는 김 전 회장과 접촉할 것이라는 기대감을 갖고 쫓던 중 서울 성북구에 주로 나타난다는 정보를 입수, 잠복 근무 끝에 붙잡은 것이다.
경찰은 김 전 회장을 추궁했다. 라임 사태의 핵심 인물인 이종필 전 라임 부사장을 체포하기 위해서다. 김 전 회장은 경찰의 추궁에 끝까지 침묵으로 일관했다. 이 전 부사장은 코스닥 상장사 ‘리드’ 경영진의 800억원대 횡령 혐의에 연루된 것으로 드러나 역시 구속영장이 청구된 지난해 11월 행적을 감췄었다.
1시간 여 추궁을 당하던 김 회장은 경찰이 건넨 담배 한 개비에 무너졌다. 각자 따로따로 도주행각을 벌였을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이들은 함께 이동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은 김 회장이 짚어 준 주택을 급습했다. 주택에는 이 전 부사장 외에 라임 사태의 또 다른 인물인 신한금투 PBS 심모 전 팀장도 있었다.
심 전 팀장은 이미 구속된 임모 전 본부장과 공모해 코스닥 상장사 ‘리드’에 투자하는 대가로 명품가방과 시계 등을 받은 혐의를 받고 있는 인물이다.
경찰이 들이닥치자 이 전 부사장은 순순히 검거됐지만 낌새를 눈치 챈 심 팀장은 창문을 통해 도주했다가 경찰의 끈질긴 추격 끝에 붙잡혔다. 이들이 검거된 시간은 23일 오후 10시 30분쯤이다.
김 전 회장 등이 묵었던 주택은 1년 여 전부터 게스트하우스로 사용되고 있는 단독 주택인 것으로 알려졌다. 실명을 사용할 필요가 없어 장기간 이용하더라도 노출되지 않는 특성을 감안한 것으로 추정된다.
김 전 회장 등이 검거될 당시 경찰 승합차 등이 도로 일부를 막고 주택으로 진입하는 등 긴박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한 주민은 “어제 오후 10시쯤 일을 마치고 나오는데 내 차 앞뒤로 SUV차량이 막아 섰고, 승합차에서 10여 명 내리더니 막 뛰어갔다”며 “30~40분 정도 소동이 벌어지는 듯 하더니 이내 잠잠해졌다” 말했다. 그는 다만 누군가를 연행하는 장면 등은 보지 못했다고 한다.
경찰은 이들이 대포폰 수십 개를 쓰고 서울 강남 호텔 여러 곳을 떠돌며 경찰 수사망을 피해왔다고 설명했다. 경찰은 이 전 부사장과 심 전 팀장 등 2명에 대해서는 라임 사태를 수사중인 서울 남부지검에 신병을 넘겼다.
경찰은 김 전 회장에 대해 라임 사태와 별개로 수원여객의 회삿돈 161억원을 빼돌린 경위와 범행을 저지르고 달아나 자취를 감춘 전 수원여객 경리 총괄 임원의 행방 등을 집중 추궁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임명수 기자 sol@hankookilbo.com
김정현 기자 virtu@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