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TBC 금토 드라마 ‘부부의 세계’가 지난 18일 시청률 20%를 넘어섰다. 부정한 남편에 복수하는 여자 주인공의 이야기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시대 ‘집콕’ 처지에 놓인 시청자들을 열광시키고 있다. 불륜을 소재로 해 한국 드라마의 유구한 전통을 이어받은 듯하지만 2015년 방송된 영국 드라마 ‘닥터 포스터’가 원작이다. 영미 드라마를 한국식으로 옮기는 건 최근 국내 방송가의 트렌드다. tvN ‘굿와이프’(2016)와 KBS2 ‘슈츠’(2018) 등이 대표적이다.
영화계는 8년 전쯤부터 해외 원작 리메이크가 일상화됐다. ‘내 아내의 모든 것’(감독 민규동ㆍ2012)이 방아쇠 역할을 했다. 아르헨티나 영화 ‘내 아내의 남자친구’(2008)를 바탕으로 만들어져 500만 관객을 모았다. 이후 리메이크는 한국 영화계에서 뚜렷한 한 경향이 됐다. 해외 영화제마다 리메이크 판권 확보 싸움이 치열해졌다. 남미와 스페인 영화가 주요 타깃이었다. 남미와 스페인에는 완성도 높은 상업영화가 적지 않다. 스페인어 사용자 4억여명이라는 거대 시장이 경쟁력의 원천이다. 브라질은 포르투갈어를 쓰지만 인구가 2억명이다. 코로나19 직격탄을 맞고도 142만명을 불러 모은 ‘정직한 후보’(감독 장유정)는 2014년 만들어진 동명 브라질 영화를 토대로 했다.
남미와 스페인 영화 대부분은 한국에 잘 알려져 있지 않다. 리메이크 하기 좋은 조건이다. 할리우드 영화를 한국식으로 새로 만들면 지갑을 열 관객은 그리 많지 않을 테니까. 남미와 스페인 영화는 판권 구입비가 낮기까지 하다. 또 다른 매력이다.
빼어난 원작을 활용한다고 성공이 보장될 리 없다. ‘사라진 밤’(감독 이창희ㆍ2017)은 스페인 스릴러 ‘더 바디’(2012)를 밑그림 삼았는데 관객 반응은 시큰둥했다. 131만명이 관람했으나 인터넷에서 화제가 됐던 원작에 한참 못 미친다는 평가를 받았다. ‘사라진 밤’은 그나마 성공한 축에 속한다. 판권을 확보하고도 제작되지 못한 영화가 많다.
‘완벽한 타인’(감독 이재규ㆍ2018)은 리메이크의 영역을 확장했다. 이탈리아 영화 ‘퍼펙트 스트레인저’(2016)를 바탕으로 만들어 529만 관객이 들었다. 남미와 스페인에 쏠렸던 영화 관계자들의 눈이 이탈리아 등 유럽 국가들로 향하게 됐다. ‘퍼펙트 스트레인저’의 베트남판은 동양 정서가 담긴 ‘완벽한 타인’을 기반으로 한다니 리메이크 영화가 원조 못지 않은 위상에 이른 셈이다.
드라마와 달리 리메이크 영화는 원작을 되도록이면 감춘다. 오동진 영화평론가는 “오리지널인 척하고 싶은데다 굳이 얘기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국내에서 드라마는 공짜로도 볼 수 있지만, 영화는 웬만하면 유료 관람이다. 사람들은 익숙하지 않은 나라 영화를 리메이크했다면 아무래도 돈 내기 주저하지 않을까. ‘리메이크의 세계’는 ‘부부의 세계’만큼 알쏭달쏭하면서도 흥미진진하다.
라제기 영화전문기자 wender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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