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둘기. 서재훈 기자

이달 대중교통 이용요금은 ‘0’원일지도 모르겠다. 자가용만 이용해서도, 일 없이 여유롭게 시간을 보내서도 아니다. 되도록 동네 밖으로 나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뿐만 아니라 대부분 평소와 다른 일상을 보내고 있을 것이다. 전염병 확산을 막기 위한 고육지책이 장기화되면서 나중에도 예전 같은 일상으로 돌아가지 못하리라는 생각마저 든다. 이전의 일상이 점, 선, 면의 방식이었다면 선은 지우고 면은 축소해 ‘점’의 방식으로 살아야 하는 요즘. 관계와 사회적 접촉면의 확장 속에 있던 우리는 이제 일상의 다른 국면을 맞았다.

평소에 혼자 있는 시간이 많은 작가에게도 이런 고립은 쉽지 않다. 무엇보다 카페 작업을 못하게 돼서 문제다. 백색 소음 속에 스스로를 밀어 넣고 헤드폰으로 차단막을 친 채, 내 가장 깊은 곳으로 들어가 써내려 가는 과정. 그러면서도 옆에는 분명 타인이기는 하지만 사람들이 있으니까 완전한 고립은 아닌, 익명성을 띠면서도 희미한 유대를 유지했던 공간에서의 작업이 가능하지 않게 되었다. 방에서 일하다 보니 도무지 능률이 오르지 않는다. 카페 작업은 많은 사람들과 어쩔 수 없이 마주친다는 점에서도 중요했는데, 그런 자극마저 없으니 무기력해지기도 한다.

물론 그렇게 발견하게 된 다른 세상도 있다. 내 방에서 바라보이는 외부 발코니에 매일 밤 자고 가는 비둘기 한 마리가 있다는 사실이다. 친구는 물론, 부모님 얼굴도 못 보게 된 나는 그 새로운 존재에게 관심이 갔고, 대체로 책상에 앉아 있기에 비둘기에 대한 정보들을 점점 쌓아갔다. 비둘기는 언제나 아래에서 위로 날아올라 발코니로 들어왔고, 입장한 뒤에는 고개를 사방으로 꺾어 가며 주변을 경계했으며 늘 왼쪽 벽에 붙어서 잤다. 놀랍게도 발코니로 오는 시간은 오후 다섯 시 반에서 오십 분 사이로 시계처럼 정확했다. 뭔가 허탈한 깨달음을 주었던 대목은 비둘기가 초저녁부터 내내 잠을 잔다는 점이었다. 나는 일찍 일어나는 새가 먹이를 많이 잡는다는 명언은 일견 진실일지라도 그런 새는 이미 초저녁부터 잘 쉬었던 새임을 깨닫고는 왠지 억울해졌다.

우리가 사월에도 물리적 거리 두기를 유지해야 하는 이유는 자명하다. 유행은 피할 수 없더라도 대량의 환자가 발생해 의료 시스템이 붕괴되는 비극을 막기 위해서다. 의료진들이 이 어려운 시기를 사명감으로 버티며 통과하고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자세를 고쳐보게 된다.

하지만 인간이란 말할 수 없이 나약하기도 한 존재라서 다시 글을 쓰려고 혼자 앉아 있으면 어쩔 수 없이 나는 이 단절감이 무겁고, 사람들에게서 나로 이어졌던 관계의 선과, 함께 공유했던 장소와 시간들이 그리워진다. 지금은 밤이고 비둘기는 발코니로 돌아와 새벽 찬공기에 대비해 깃털을 최대한 부풀린 다음(새들이 그렇게 잔다는 것도 이번에 알았다) 자고 있는데, 마치 누군가 어둠으로 뭉쳐 낸 작은 눈덩이 같은 비둘기의 그 뒷모습을 보다 보면 혼자임을 절실히 실감하게 된다. 풍경 속 비둘기 모습이 동요 없이 자연스러울수록 그런 마음은 이상하게 더 짙어진다.

하지만 인터넷에 연결해 보면 분명히 사람들은 각자의 자리를 지키며 거기에 있다. 그렇게 자기 자리에 있는 것만으로도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한 손을 보탤 수 있는 사월, 개학을 연거푸 미루는 강력한 정책으로 가까스로 대유행을 막고 있는 아슬아슬한 요즘이지만, 이런 날들이 없었다면 서로 연결되어 있던 시간의 의미에 대해 적어도 지금보다는 알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 생각으로 힘을 좀 더 내보는 밤이다. 불안 속에서도 어쨌든 각자가 자신의 밤을 무사히 나고 있으리라 믿을 수밖에 없는, 그래서 특별한 사월의 밤이다.

김금희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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