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단체 373곳 연대체 ‘공동대책위’
독소조항 ‘아청법 40조’ 개정 촉구
“피해사실 숨긴 채 숨 죽이게 만들어”
텔레그램 n번방 사건 대책 당정협의가 5일 국회에서 열린 가운데 백혜련 더불어민주당 의원(디지털성범죄근절대책단장)이 발언하고 있다. 오대근 기자

전국 시민ㆍ사회단체 및 여성ㆍ아동ㆍ청소년 인권단체가 성착취 피해아동을 ‘자발적 성매매자’로 보는 아동ㆍ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청소년성보호법, 아청법)을 즉시 개정하라며 한목소리를 냈다. 이들은 “이른바 ‘n번방 사건’으로 디지털 성착취 범죄의 실상이 드러났지만, 실질적 해결을 위한 입법적 노력은 제자리 걸음”이라며 개정안을 20대 국회에서 반드시 통과시킬 것을 국회에 청원했다.

전국 시민ㆍ사회단체 및 여성ㆍ아동ㆍ청소년 인권단체 373곳이 뭉친 연대체 ‘아청법 개정 공동대책위원회(공동대책위)’는 지난 5일 성명을 내고 “피해자를 탓하는 현행 청소년성보호법을 즉시 개정하라”고 호소했다. 공동대책위는 번번이 좌절된 청소년성보호법 개정안 통과를 위해 지난해 1월 22일 출범했다.

공동대책위는 성명에서 “수많은 n번방 피해자들이 성착취 피해를 당하고도 도대체 왜 신고를 못하는지 법무부는 아직도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가”라며 “n번방이 그렇게 오랫동안 감춰지고 끔찍한 폭력이 지속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청소년성보호법’의 피해자를 자발과 강제로 구별하는 규정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현행 청소년성보호법 제40조는 성착취 범죄에 노출된 피해 아동과 청소년 일부를 ‘대상 아동ㆍ청소년’, 즉 자발적 성매매자로 보고 이들에게도 죄를 묻고 있다. 이 법에 따르면 피해 아동과 청소년도 소년원 송치나 소년보호시설 감호 위탁, 보호관찰, 6개월 이내의 청소년 보호ㆍ재활센터 위탁 등의 보호처분을 할 수 있다. 이 같은 처벌규정 탓에 n번방 사태와 같이 성착취 범죄 피해를 입은 아동청소년 상당수가 피해사실을 신고하지 못한 채 숨 죽이고 폭력을 견뎌야만 했다.

아동 피해자를 ‘성범죄 가담자’로 보는 이 같은 규정은 국제적 흐름에 배치된다는 게 공동대책위의 입장이다. 한국이 비준한 ‘유엔아동권리협약’ 및 ‘아동의 매매ㆍ성매매ㆍ아동음란물에 대한 아동권리협약 선택의정서’는 성매매에 노출된 18세 미만의 모든 아동을 성매수 범죄 ‘피해자’로 명시하고 있다. 피해 아동ㆍ청소년이 성착취 범죄에 자발적으로 가담했는지, 강제로 피해를 입었는지 경위를 묻는 현행 청소년성보호법과는 대조적이다.

공동대책위의 요구는 명료하다. 성착취 범죄 피해자들이 안전하게 신고할 수 있는 법률적 토대를 만들어달라는 것이다. 이들은 △자발적 성매매자로 보는 ‘대상 아동ㆍ청소년’ 개념을 삭제해 ‘피해자’로 통합하고 △피해 아동ㆍ청소년을 위한 통합지원센터를 설치하고 △장애 아동ㆍ청소년에게 성범죄를 저지른 경우 가중처벌하고 △아동ㆍ청소년이 피해를 입은 성범죄 공소시효를 폐지하고 △아동ㆍ청소년 대상 성범죄자의 신상을 공개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이런 내용을 담은 청소년성보호법 개정안은 이미 2018년 2월 국회 여성가족위원회를 통과됐지만,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제2소위에 계류돼 안건으로 상정조차 되지 못했다. 공동대책위는 “법무부 반대로 계류된 이 법이 통과됐다면 n번방 사건 피해자들 가운데 최소한 아동ㆍ청소년 피해는 최소화됐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경찰에 따르면 n번방 피해자 100여명 중 아동ㆍ청소년은 26명에 달한다.

지난달 23일 공동대책위가 국회 국민동의청원에 등록한 ‘텔레그램 미성년자 성범죄자 처벌 및 신상공개에 관한 청원’은 열흘 만에 6만1,148명이 동의했다. 공동대책위에 참여한 10대여성인권센터 조진경 소장은 “법 개정이 이뤄지지 않으면 결코 있어서는 안 되는 디지털 성착취 범죄는 앞으로도 계속 발생할 수 있다”면서 “성착취 아동ㆍ청소년을 위한 법 개정이 20대 국회에서 반드시 통과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국회 청원에 돌입했다”고 밝혔다.

앞서 ‘박사방’ 운영자 및 참여자에 대한 엄정한 수사와 신상 공개를 요구한 청와대 국민청원에는 이미 500만명 넘는 국민이 서명하며 조주빈과 가담자들에 대한 처벌 강화를 촉구했다. 문재인 대통령도 지난달 30일 정세균 국무총리에게 ‘n번방 가해자’ 전원에 대한 철저한 수사를 당부했다.

박지연 기자 jyp@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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