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양극화, 불편한 민낯] <3> 사회에서 고립된 노인들
공포에 질린 60세 이상 노인, 97%가 외부 출입 자제
‘디지털 정보 격차’에 마스크 알리미ㆍ확진자 현황 깜깜
지난달 26일 오전 대구 북구 경대교 인근 도로에서 한 노인이 수레 가득 파지를 싣고 무거운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대구=뉴스1

“동네 할매들하고 진해로 꽃 보러 가자고 약속했는데... 못 가니까 당연히 아쉽지.”

서울 동작구에 홀로 거주하는 이혜자(71)씨는 최근 눈을 뜨고 있는 시간의 대부분을 방안에서 TV를 시청하며 보낸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걸릴까 무서워 대규모 확진자가 발생한 지난 2월 말부터 외부 출입을 자제한 탓이다. 지난 주 이씨가 집 밖으로 나간 건 마스크를 사러 약국을 가거나, 쓰레기를 버리러 가는 일 등 손에 꼽을 정도다. 각종 생필품은 대전에 사는 아들이 온라인으로 구매해 주고 있다. 재난 문자로 연신 울려대는 핸드폰을 보던 이씨는 “자세한 정보는 구청 홈페이지를 확인하라는데 검색해서 들어가보면 글자도 많고 복잡해서 포기했다”고 전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세대 격차의 단면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디지털 중심의 비(非)대면 ‘언택트(untact)’ 문화에 익숙한 20~30대 청년들은 코로나 국면에 빠르게 적응하고 있는 반면 감염 위험에 무방비로 노출된 노인들은 공포에 질린 채 사회적 고립이 장기화되고 있다.

[저작권 한국일보]지난달 19일 오후 서울 강남구 구룡마을에 거주하는 김모씨의 식탁에 김씨가 점심 식사로 먹은 무와 반찬 그릇이 올려져 있다. 이승엽 기자
◇ “사람 만날 일도 없는데…” 방 안에 갇힌 노인들

신종 코로나는 노인들에게 치명적이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5일 0시 기준 국내 신종 코로나로 인한 전체 사망자(183명) 중 60대 이상은 91.5%(162명)다. 80세 이상 고령자의 치명률은 18.87%에 이른다. “코로나에 걸리면 죽을 수도 있다”는 노인들의 공포가 과장만은 아닌 셈이다.

이러다 보니 노인들은 그나마 있던 사회와의 접점도 포기한 채 고립을 선택할 수 밖에 없다. 지난 1일 한국리서치의 ‘코로나19 4차 인식조사’에 따르면 60대 이상 노인 중 신종 코로나 이후 외부활동을 자제했다고 응답한 비율은 97%였다. 150만명으로 추산되는 노인 1인가구는 사실상 방에 갇힌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강남구 개포동에 사는 김숙자(80)씨는 “무서워서 동네 밖으로 나간 지도 한 달째”라며 “신천지가 무서워 교회도 안 가고 있는데 매달 가야 하는 병원은 어떻게 가야 하나 걱정”이라고 토로했다.

두 달 가까이 고립이 지속되면서 노인들의 우울감 또한 상당한 것으로 전해졌다. 고강도 사회적 거리두기 실천 기간이 연장되면서 고령층의 주요 친목 공간이었던 노인복지관, 경로당 등은 지난 2월 28일부터 현재까지 휴관에 들어간 상태다. 정부 권고로 전체 사회복지시설 총 11만1,101개 중 11만340개, 99.3%가 문을 닫았다. 주말 노인들의 유일한 위안 거리였던 예배와 미사 등도 전면 중지된 상황이다.

◇ 코로나 격리 걱정 없는 20,30 ‘언택트’ 세대

저소득층 노인의 경우 타격은 더 심하다. 경기 위축으로 벌이도 급감했다. 30년 경력의 보험설계사 김모(64)씨는 “3월 중순부터 주 5일에서 3일 근무로 바뀌었다”라며 “점심은 라면으로 해결하고 매달 대출금 갚을 걱정에 잠을 못 잔다”고 토로했다. 일용직 노동자 서모(66)씨는 “최근 2달간 현장 일을 한 번도 하지 못했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한국노인인력개발원에 따르면 지난달 말 기준 전체 공공 노인 일자리 사업 배정 인원 64만명 중 약 53만4,000명에 대한 사업이 중단돼 일을 쉬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길거리의 폐지 노인들도 대다수가 코로나 위협에 종적을 감췄다. 강남구의 한 재활용업체 사장은 “폐지나 플라스틱 등 재활용 쓰레기 배출량 자체가 줄어 3분의 2 이상의 노인들이 일을 쉬고 있다”고 말했다.

2020-04-05(한국일보)

청년들도 신종 코로나 감염을 우려하긴 마찬가지만 노인들과 비할 바는 아니다. 5일까지 20대 확진자 2,761명 중 사망자는 한 명도 없다. 그러다 보니 “우리는 코로나에 걸려도 괜찮다”는 인식이 팽배해, 사회적 거리두기 정책에도 불구하고 강남 클럽은 여전히 장사진이다. 마스크 구매도 스마트폰으로 재고 현황을 확인해 비교적 손쉽게 해결한다. 한국리서치 조사에서 대중교통 이용을 줄였다고 답한 20대는 64%에 불과했다. 92%가 자제했다고 답한 60세 이상 노인과 큰 차이다. 회사원 이충현(29)씨는 “불안하긴 하지만 회사에 출근해야 하니 지하철을 이용할 수밖에 없다”며 “주말에 미리 마스크를 구매해 착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20~30대는 자택근무ㆍ온라인 쇼핑 등 언택트 문화에도 익숙하다. 오주현 연세대 바른ICT연구소 연구교수는 “2, 30대도 답답함을 느끼는 건 노인과 마찬가지지만 영화관 대신 OTT(Over the top)를 이용하듯 손쉽게 대체제를 찾는다”라며 “계속된 고립으로 불안한 노인들과 비교해 심리적으로 안정돼 있다고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디지털 정보격차, ‘복지’ 차원의 접근 필요

문제는 디지털 디바이드(Digital divide, 정보격차)가 세대간 위험의 간극을 확장시킨다는 점이다. 확진자 현황, 마스크 재고 등 전염병 관련 정보를 확인하려면 스마트폰 앱 설치나 인터넷 활용 능력이 필수적인데, 노인들로서는 청년 세대를 따라갈 재간이 없는 노릇이다.

한국정보화진흥원의 2019 디지털정보격차 실태조사에 따르면 60대의 디지털정보화 ‘접근’ 수준은 94.3%로 20대(104.6%)와 큰 차이가 없지만, ‘활용’ 수준은 75.6%로 20대(126.4%)와 큰 격차를 보였다. 스마트폰을 보유하고도 이를 활용하는 데는 여전히 어려움을 나타내고 있다는 의미다. 60세 이상 노인 중 필요한 앱을 설치하고 사용할 수 있다고 답한 비율은 29.2%, 전자상거래를 이용하고 있다고 한 노인은 22.7%에 불과했다. 성북구에 사는 김태남(78)씨는 “손자한테 앱 사용법을 배워 버스를 타고 재고가 100개 있는 제기동 약국을 갔는데 문이 닫혀 있더라”며 “휴일 문 여는 약국까지 확인해야 되는 줄은 몰랐다”고 전했다.

디지털 활용 능력이 단순한 생활의 기술이 아닌 생존의 문제가 되면서 세대간 디지털 격차 축소가 시급한 과제라는 지적이다. 오주현 연구교수는 “노인들의 카카오톡ㆍ유튜브 사용률이 높아 디지털 기술을 잘 활용한다고 알려졌지만 예매, 금융 등 본인 생활에 필요한 서비스는 여전히 진입장벽이 높다”면서 “지자체의 집단강의 형식의 정보화교육 대신 1대1 맞춤 교육을 실시하는 등 디지털정보 격차를 ‘복지’ 차원에서 접근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5일 오전 서울 종로5가 인근 약국 앞에 마스크를 사기 위해 시민들이 줄을 서고 있다. 연합뉴스

이승엽 기자 sylee@hankookilbo.com

김영훈 기자 hun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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