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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병원의 일회용품

입력
2020.04.06 04:30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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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일회용품 사용은 환경에 좋지 않다. 우리는 이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우리 사회와 개인은 최대한 일회용품을 사용하지 않으려 애쓴다. 그럼에도 나는 일회용품을 적극적으로 사용하는 곳을 알고 있다. 바로 병원이다.

병원에서는 정말 많은 양의 일회용품이 사용된다. 환자 몸에 직접 닿는 도구나 소모품이 대부분 한 번만 사용되고 버려진다. 한 환자가 수액을 한 번 맞는 일에도, 주사기와 주삿바늘과 약제가 들어있는 앰풀과 수액 세트가 모두 일회용이다. 그것을 포장하는 포장재도 일회용임은 물론이다. 입원 환자 백 명이 하루 세 번씩 주사를 맞는다고만 가정해도, 매일 엄청난 양이 뜯어지고 버려질 것임을 쉽게 상상할 수 있다.

수술방에서는 더 많은 일회용품이 사용된다. 삽관용 튜브도 일회용이고, 환자에게 덮는 포도 한 번만 사용되고 버려진다. 의료진의 장갑, 모자, 마스크도 일회용이고, 수술에 참여할 때 입는 가운도 한 번만 입고 폐기된다. 수많은 거즈가 피를 한 번 닦으면 버려지고, 수많은 붕대도 살을 감고 풀면 버려진다. 원칙상 환자 몸에 닿는 것은 무조건 소독된 것이어야 하며, 다른 곳에 닿으면 감염된 것으로 간주하고 버려야 한다. 기타 나열하기도 벅찰 만큼 많은 일회용품을 사용하는 곳이 병원이다.

이 폐기물에는 생체 조직이 포함되어 재활용할 방법도 없다. 이것들은 따로 정해진 봉투에 담아 전문 업체로 보내져 소각된다. 병원에서는 폐기물이 트럭으로 매일같이 실려 나온다. 일회용품 사용에 있어 의료계는 상당히 많은 비중을 차지할 것이다.

이번 감염병 유행으로 일회용품은 더 많이 사용되고 있다. 감염병 관련 환자를 진료할 때 사용한 물품은 모두 한 번만 사용되고 버려져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다른 환자에게 전파될 가능성이 있으므로 환자 한 명을 진료할 때마다 일회용품은 차곡차곡 쌓인다. 전 세계적으로 이미 엄청난 폐기물이 발생했으며, 앞으로도 더 발생할 예정이다.

하지만 일반적으로는 병원의 일회용품과 환경오염을 연결 짓지 않는다. 아무리 환경오염 문제가 심각해도 인간의 생명과 비할 바는 아니기 때문이다. 소독되어 비닐로 포장된 일회용 의료도구만큼 위생적인 제품은 없다. 의료도구가 재활용될수록 감염 위험이 올라가므로, 병원에서는 역으로 일회용품을 더 적극적으로 사용하는 추세다. 예기치 못한 감염이 환자의 커다란 고통으로 이어질 수 있다. 그래서 이 일회용품은 약자의 안전을 위해 꼭 필요한 존재라고 볼 수 있다.

사실 처음 병원에 근무할 때는 이 질서가 좀처럼 적응되지 않았다. 개인적으로 환경을 보호하기 위해 일회용품을 가급적 사용하지 않으며 살아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병원에서는 무조건 많은 양의 일회용품을 사용해야 했다. 본능적으로 떨어진 물품을 주우려고 움찔거리기도 했고, 버려지는 깨끗한 거즈도 아까운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점차 깨달았다. 환자를 위해서라면 오히려 더 적극적으로 버려야 한다고. 반대로 더 과감하게 버리는 습관을 들이는 편이 옳은 일이라고.

퇴근하면 나는 한 명의 시민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생각한다. 나 개인의 삶에서는, 일회용 종이컵이나 포장 용기를 쓰지 않고도 얼마든지 건강하게 지낼 수 있다. 약간의 수고와 노력을 들여 일회용품을 피해도 생활의 지장이 거의 없다. 한편으로 자원은 결국 유한할 것이며, 우리가 가용할 수 있는 일회용품은 정해져 있을 것이다. 그래서 노약자나 정말 필요한 사람에게 이 자원을 양보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뒤로 나는 일회용품에 있어서 조금 극단적이다. 병원에서는 적극적으로 일회용품을 쓰지만, 집에 돌아오면 꼬박꼬박 재활용품을 챙기는 시민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이 기묘한 극단이, 건강한 내가 타인과 환경을 보호하는 최선이라고 생각했다.

남궁인 응급의학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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