웰빙, 소확행, 욜로, 워라밸 등등.
한국 사회의 행복 탐닉은 그칠 줄 모른다. 끊임없이 키워드를 바꿔가며 이어진다. 다 좋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행복해지는데 도움이 됐을까. “오직 행복을 제1가치로 고정시켜놓은 채, 행복에 매몰돼 있는 상태”는 “행복감에 필요한 세부 요인을 계속 추가”하는데 그칠 경우가 많다는 게, 최근 ‘다소 곤란한 감정’을 내놓은 감정사회학자 김신식의 결론이다. 행복에 대해 더 많이 말할수록 되레 더 불행해지는 역설이다.
한 사회의 감정 문제를 다루는 감정사회학은, 아직은 한국에서 낯선 개념이지만 영미권에선 최근 각광받는 분야다. SNS를 통해 온갖 감정들이 물밀 듯 쏟아지는 시대, 그래서 이제는 너와 나 감정의 넓이와 깊이가 댓글, 좋아요, 공유하기 등을 통해 물리적 실체가 되는 시대여서 그런지도 모른다.
사진잡지 편집장, 문학잡지 편집위원 등으로 활동해온 김신식은 5개 주제, 55개 단어를 통해 감정의 사회적 통용을 추적했다. 감정에도 당연히 사회적 위계화가 있다. 권력을 가진 자의 분노, 그렇지 못한 자의 분노는 같은 분노이되 다른 무게를 지닌다. 슬픔 등 다른 감정 또한 그렇다.
가령 이런 문제다. 최근 한국 사회를 강타한 것은 ‘우울 말하기’다. 우울증과 불안장애 치료일기인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 같은 책이 최근 몇 년간 큰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김신식은 ‘자신의 감정을 해석하고 말할 수 있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 사이의 격차도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최근의 ‘우울 말하기’ 특징은 작가나 의사 같은 전문가들이 아닌 우울증을 겪은 일반인 기록자들이 많다는 거예요. 일반인도 자기 감정을 해석하고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것 자체는 긍정적이에요. 문제는 이게 자기 감정을 능숙하게 검토할 수 있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 사이의 ‘감정 해석 격차’로 이어진다는 거예요. 이제 사회과학자들은 ‘왜 사람들은 감정적인 탓에 일상에서 스트레스를 받을까’ 대신 ‘왜 사람들은 자신의 감정을 감각적으로 표현해내지 못해 스트레스에 시달릴까’를 연구해야 할지도 몰라요.” 어쩌면 우울증이 문제가 아니라 우울증을 발화할 수 있느냐 없느냐가 더 문제일 수 있다.
디지털 시대의 가장 큰 부작용, 혐오도 그렇다. 김신식은 혐오 중에서도 ‘생리적 혐오’, 즉 ‘이유 없이 싫은 감정’과 ‘취향화된 혐오’, 즉 ‘좋고 싫은 건 내 취향이니 존중받아야 한다는 주장’을 깊이 들여다 봐야 한다고 봤다.
“이런 혐오들은 그날의 기분, 이유 없는 짜증, 그저 속에서 끄집어내고 싶은 흥분과 화 같은 걸로 혐오의 이유를 즉각 만들어내는 한국 사회의 일면을 보여줘요. 일단 이것저것 혐오한다 해놓고서는, 그걸 마치 일관된 맥락이 있는 것처럼, 그게 자신의 취향인 것처럼 인식하고 포장합니다. 하지만 그런 혐오에 ‘일관된 취향’이란 없어요. 혐오를 정당화하기 위한 아집만 있을 뿐입니다.”
감정치유, 감정조절 같은 것들이 ‘자기계발’로 포장되는 것 또한 그런 맥락 아래서다. 긍정적 사고로 감정을 잘 다스리라 충고하는 자기계발이란 결국 “궁극적으로는 부정적 감정을 원래 앓아왔음을 순순히 받아들이도록 한다”는 얘기다. 그러곤 이렇게 되물었다. “곤란한 상황에 빠진 사람에게, 그게 실은 어릴 적부터 당신이 이런저런 부정적 감정을 겪으며 마음의 병을 앓아왔기 때문이라고 손쉽게 판정 내리는 걸, 순순히 받아들일 생각인가요?”
감정을 잘 알아가는 건 좋지만, 세밀한 감정 분석이 자기 감정에 대한 지나친 몰입을 불러오진 않을까. 되레 김신식은 “감정 연구는 자기 객관화의 중요한 장치”라 설명했다. “감정 자체가 여러 해석을 낳기 때문에 객관화를 위한 도구가 필요해요. 자기 감정에 지나치게 몰입돼 자신의 위치를 잡지 못하는 분들일수록 오히려 더 중요한 작업이 될 겁니다.”
한소범 기자 beo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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