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스 스터디] 브라질, 벨라루스, 멕시코, 그리고 미국
지도자는 국민을 위기에서 구하기도, 위험에 빠뜨리기도 합니다. 특히 국가적 재난 상황에선 더욱 그렇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전 세계를 휩쓸고 있는 현 상황에서 각국 지도자들은 국민의 안전을 책임질 의무가 있습니다. 그렇기에 세계 각국은 체계적인 방역 대책을 세워 코로나19 위기에 맞서고 있는데요. 이 같은 상황에서 일부 지도자들이 눈총을 받고 있습니다. 코로나19에 무지한 듯한 막가파식 행보를 보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 언젠가는 죽는다?” 알긴 알겠는데…
먼저 자이르 보우소나루 브라질 대통령입니다. 보우소나르 대통령은 감염증 확산을 막기 위해 전 세계가 사회적 거리두기를 강조하는 현 상황에서 “우리 모두는 언젠가는 죽는다”며 국민들이 집이 아닌 일터로 나가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이 주장은 보우소나르 대통령이 지난달 29일(현지시간) 자신의 트위터에 올린 영상에 담겨 있는데요. 그는 브라질리아 시내에서 지지자들과 어울리는 영상을 올리며 “사람들로부터 일하고 싶다는 말을 들었다”고 전했습니다. 영상에는 보우소나르 대통령이 “우리는 가만히 있을 수 없다. 병으로 죽지 않으면 굶어 죽을 것”이라고 외치는 모습이 담겼습니다.
이날 트위터에 올라온 또 다른 영상에서 보우소나루 대통령은 “만약 이런 상황이 계속된다면 나중에 우리가 겪게 될 실업률은 매우 심각한 문제”라며 “이 문제가 해결되려면 족히 몇 년은 걸릴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면서 “바이러스를 현실로 맞서자”며 “삶이다, 우리 모두 언젠가는 죽어야 한다”고 외쳤습니다.
심지어 이날은 루이스 엔히카 만데타 브라질 보건부장관이 사회적 거리두기를 권고한 다음날이었는데요. 이날 기준 브라질 내 코로나19 확진자는 4,256명, 사망자는 136명으로 집계됐습니다. 보건부 권고를 무시하고 사람들과 어울리며 방역에 혼선을 불러 일으킨 대통령에 대해 장관과 야권 지도자 등은 물러나라고 촉구했습니다.
심지어 보우소나루 대통령의 발언 영상은 트위터,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도 삭제됐습니다. 세계보건기구(WHO)가 사회적 거리두기를 권장하는 상황에서 보우소나루 대통령의 발언은 공식적 공공보건 정보에 위배되는 콘텐츠로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극우 성향의 보우소나루 대통령은 군인 출신입니다. 1985년 군사 정권이 종식되고 민주주의가 회복된 이후 브라질에서 군인 출신이 대통령이 된 건 보우소나루가 처음입니다. 보우소나루 대통령은 지난달 31일 군사독재정권을 옹호하는 발언으로 또 다시 논란을 부르기도 했는데요. 56년 전인 1964년 3월 31일 일어난 군부 쿠데타를 두고 ‘위대한 자유의 날’이라고 표현해 논란이 일기도 했습니다.
◇보드카, 사우나로 코로나를 막는다고?
코로나19 확산에 각국이 예정된 스포츠 경기를 취소하고 팀 훈련이나 미팅도 금지하는 추세인데요. 그렇지 않은 나라가 있습니다. 동유럽 벨라루스입니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ㆍ스페인 프리메라리가ㆍ독일 분데스리가ㆍ이탈리아 세리에Aㆍ프랑스 리그앙 등 5대 리그를 포함한 유럽 축구가 코로나19로 잠시 멈춰 섰지만 벨라루스는 ‘나홀로 리그’를 강행 중입니다.
지난달 28일 워싱턴포스트(WP) 보도에 따르면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벨라루스 대통령은 이날 열린 아마추어 아이스하키 경기에서 “축구뿐 아니라 그 어떤 경기도 취소하지 않겠다”고 단언했습니다. 그는 “최고의 바이러스 퇴치 방법은 보드카를 마시고 사우나를 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는데요. 루카셴코 대통령은 “사우나에 가라. 주 2, 3회가 좋을 것”이라며 “나올 때는 손만 씻지 말고 보드카 100g을 들이켜 속까지 씻어내라”는 자신만의 코로나19 예방법을 전해 논란이 일기도 했습니다. 특히 폴란드, 러시아 등 주변 국가가 대규모 격리 조치 등을 취하는 가운데 코로나19를 “광란이자 정신병”이라며 위기 의식이 없는 발언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인지 벨라루스에서는 축구 경기를 관람하려는 관중들로 경기장이 넘쳐났는데요. 지난달 28일 벨라루스 프리미어리그인 FC 민스크와 디나 모 민스크의 경기에는 약 3,000명의 관중이 몰렸습니다. 관중 대부분은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았고요. 국제프로축구선수협회(Fifpro)도 벨라루스의 ‘나홀로 리그’ 강행에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입니다. 요나스 바어 호프만 Fifpro 사무총장은 영국 BBC와 인터뷰에서 “벨라루스가 코로나19 여파 속에서 축구를 계속하는 것은 솔직히 이해가 되지 않는다”며 “왜 벨라루스만 주변 국가들과 다른 판단을 하는 것인지 누구도 설명할 수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루카셴코 대통령은 앞서 ‘경운기 발언’으로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는데요. WP 보도에 따르면 그는 지난달 16일 “바이러스에 대해 걱정하는 대신 밖으로 나가 밭일을 해야 할 때”라며 “경운기가 모두를 치료할 것이다. 밭이 모두를 치료한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인구가 약 945만명인 벨라루스에서는 지난달 29일 기준 사망자 0명, 확진자 94명이 나온 상태입니다. 확진자 수가 적다고는 하지만 전 세계적으로 늘고 있는 만큼 안심하기에는 이릅니다.
루카셴코 대통령은 1994년부터 26년째 장기 집권을 이어오고 있는데요. 2015년 10월 83.49%라는 압도적인 득표율로 5선에 성공했습니다.
◇처음엔 “외출해라” , 지금은 “거리 둬라”
외출과 외식을 장려한 안드레스 마누엘 로페스 오브라도르 멕시코 대통령도 코로나19에 무지하다는 국제사회의 비난을 받았습니다. 그는 지난달 22일 페이스북에 올린 영상에서 “외출을 멈추지 말라”고 말했는데요. 보건당국의 사회적 거리 두기 권고가 나온 이후에도 지지자들을 만나 악수와 포옹을 이어간 로페스 오브라도르 대통령을 두고 멕시코 일간 엘우니베르살은 “코로나19 위기 속에서도 대통령은 아직도 팬데믹의 심각성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하지만 로페스 오브라도르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기준 확진자가 1,094명으로 집계되자 기존의 여유로운 태도를 버리고 보건 비상사태를 선포ㆍ사회적 거리두기를 권고하는 등 방향을 선회했습니다.
코로나19 발병 초기 여유로운 태도로 낙관론을 펼쳤던 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도 마찬가지입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독감보다 코로나19 사망자가 적다”, “우리는 상황을 완전히 통제 중이다” 등 발언을 남기며 낙관적인 태도를 보였었는데요. 지난달 16일 브리핑에서 코로나19 장기화 가능성을 인정하며 사회적 거리두기를 강조하는 등 달라진 태도를 보였습니다.
코로나19 팬데믹이 선포된 국가적 위기 상황, 지도자의 역할은 뭘까요? 무엇보다 중요한 건 국민의 안전을 위협하는 요소를 제거하고 대비하는 것 아닐까요.
박민정 기자 mjmj@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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