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EC-러시아‘감산동맹’ 깨져… 사우디ㆍ러 증산 예고
WTI 시세 18년 만에 최저, 코로나發 수요 위축 겹악재
사우디아라비아 동부 아브카이크에 있는 국영 석유기업 아람코의 정유소 모습. 로이터 연합뉴스
미국 텍사스주 퍼미안 분지에 위치한 셰일 원유 생산 현장 모습. 로이터 연합뉴스

사우디아라비아를 주축으로 한 석유수출국기구(OPEC)와 러시아를 중심으로 한 비(非)OPEC 국가들의 글로벌 ‘감산 동맹’이 31일로 3년4개월여 만에 막을 내렸다. 극적인 타협이 없는 한, 4월 1일부터 세계 원유시장은 무제한 경쟁시대로 접어들게 된다.

사우디, 러시아가 각각 시장 점유율 확보를 위해 증산을 예고한 가운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한 석유 수요 급감까지 겹치면서 일각에서는 심지어 ‘마이너스 유가’도 배제하지 않는 분위기다. 세계 경제의 주요 변수인 국제유가에 역사적 폭락의 ‘지옥문’이 열렸다는 공포도 높아지고 있다.

◇캐나다 석유 한 통이 스타벅스 한 잔 값

31일 외신 등에 따르면, 30일(현지시간) 뉴욕 선물시장에서 기준가 역할을 하는 서부텍사스산 원유(WTI) 1개월물은 전일 대비 6% 가량 급락한 배럴당 20.09달러로 마감했다. WTI 가격은 한때 20달러 밑으로 추락하기도 했다. 영국 런던 선물시장에서 거래되는 브렌트유도 8% 이상 하락해 22.67달러로 마감했다. 모두 2002년 이래 18년만에 가장 낮은 가격 수준이다.

현물 시장에서는 이미 10달러 이하로 거래되는 석유가 흔하다. 캐나다 앨버타주에서 생산되는 서부캐나다산 원유(WCS) 가격은 이날 4.18달러까지 하락했다. 블룸버그는 “캐나다산 유가가 스타벅스 단호박라떼 수준으로 떨어졌다”고 묘사했다.

급기야 마이너스 유가까지 등장했다. 3월 중순 한때 미국 와이오밍산 아스팔트용 고유황유 가격은 -19센트로 책정됐다. 넘치는 석유를 저장할 곳이 없으니 돈을 쥐어주고 소비자에게 기름을 내어주게 된 격이다.

우리나라의 전국 평균 휘발유 가격(31일 L당 약 1,393원)도 최근 20일 사이 1,500원대에서 100원 가까이 내렸다. 통상 국제유가는 2~3주 시차를 두고 국내에 영향을 미치는데, 당분간 하락세가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저작권 한국일보] 서부텍사스유 가격 추이.
◇사우디-러시아, 양보 없는 전쟁 예고

국제 원유시장은 현재 공급과 수요 이중의 충격을 받고 있다. 사우디가 주도하는 OPEC 회원국과 러시아 등 10개 비회원국이 포함된 ‘OPEC 플러스’ 국가들은 3월 초 오스트리아 빈에서 감산 협상을 벌였지만 결렬됐다. 공동 감산 합의가 유효한 시점은 3월 말까지다. 4월 1일부터는 모든 국가의 무제한 원유 생산이 가능하다.

이 때문에 시장 점유율 확보를 위해 사우디와 러시아는 모두 증산을 벼르고 있다. 사우디 국영석유회사 아람코는 4월부터 일일 산유량을 1,200만배럴까지 늘릴 것으로 예고했는데 이는 사실상 가능한 최대 생산량 수준이다. 러시아 재무부도 이달 초“배럴당 25~30달러 수준 유가도 6~10년은 버틸 수 있다”며 먼저 물러서지 않을 것임을 시사했다.

특히 러시아는 그간 감산으로 유가를 떠받쳤음에도 미국의 셰일기업들이 도리어 생산량을 늘리며 이득을 봤다고 보고 있어, 애초부터 감산에 소극적이었다. 이번 증산 전쟁은 사우디와 러시아가 싸우지만, 공통의 표적은 미국이라는 의미다.

◇코로나 수요 급감 겹쳐 추가 폭락도 가능

사우디와 러시아의 경쟁은 나머지 세계 입장에서는 최악의 시점에 발생했다. 코로나19로 경제활동이 줄면서 석유 수요가 급감하는데, 공급 확대 충격까지 겹치면서 보통은 저유가에 환호하던 소비국조차 유가 폭락으로 인한 경제 충격을 걱정하는 처지가 됐다.

국제에너지기구(IEA)의 파티 비롤 사무총장은 지난 26일 “세계적으로 30억명이 이동제한 상태에 놓여 있고 석유 수요는 하루 8,000만배럴 수준으로 떨어질 수 있다”고 밝혔다. 그는 “국제 석유시장 안정을 위한 건설적인 대응을 호소한다”며 사우디, 러시아, 미국이 함께 감산 협의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인현우 기자 inhy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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