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전 노예’ 피해자 측, 재판부 기피신청
‘신안군 염전노예’ 사건의 형사재판 당시 1심 재판부의 처분이 타당했는지를 묻는 재판에서 원고 측이 ‘공정한 재판을 기대하기 어렵다’며 재판부 기피신청을 냈다. 부당한 판단을 내린 1심 재판부를 상대로 사실확인 절차를 거치지 않고 재판을 진행하는 법원을 신뢰할 수 없다는 이유다.
27일 서울중앙지법 민사항소8-2부(재판장 이순형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염전노예피해자 박모씨가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 항소심의 두 번째 변론 기일에서 박씨 측은 “재판부 기피신청을 하겠다”고 밝혔다. 민사소송법에 따라 공정한 재판을 기대하기 어려운 사정이 있을 때 재판 당사자는 재판부 기피신청을 할 수 있다.
박씨 측은 증인신청 기각 등 재판부의 판단을 문제 삼았다. 이날 재판부는 “1심보다 증거가 확보돼 원고가 낸 증인신문을 기각한다”고 말했다. 앞서 박씨 측은 1심 재판을 맡았던 판사들을 손해배상 소송의 증인으로 세워 경위를 밝혀야 한다고 주장했다. 재판부가 증인 신청을 기각한 채 “부당하다고 생각하면 상고이유로 삼으라”며 사실상 재판을 종결하겠다고 밝히자 박씨 측은 이에 반발해 기피신청을 냈다.
염전노예 사건의 피해자인 박씨는 2014년 광주지법 목포지원이 지적장애 2급에 해당하는 박씨의 처벌불원서를 검증 없이 반영해 정신적 손해를 입었다며 2017년 10월 “국가가 1억원을 배상하라”며 손해배상 소송을 냈다. 형사사건을 맡았던 1심 재판부는 당시 박씨에게 합의 의사가 있다고 보고 13년 동안 박씨의 노동력을 착취한 염전주 A씨에 징역 2년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했다. 근로기준법 위반 혐의는 사실상 무죄에 해당하는 공소 기각 판결을 내렸다. 처벌불원이 박씨나 후견인의 진의인지 확인하는 절차는 없었다. 항소심 재판부는 처벌불원서를 인정하지 않았지만 형은 그대로 유지했다. 근로기준법 위반 부분도 검찰이 항소하지 않아 공소기각 판결이 그대로 유지됐다.
손해배상 소송 재판도 우여곡절이 많았다. 2018년 1심 재판부가 박씨의 국가배상소송을 기각하자 박씨 측은 곧바로 항소했으나, 1년 뒤인 지난해 5월에야 첫 번째 재판이 열렸다. 이날 항소심 공판은 첫 재판 이후 약 11개월만에 열린 재판이었다. 그 사이 두 번의 변론 기일이 잡혔으나 모두 재판 전날 연기됐고, 지난달 법원 인사 이동으로 재판부까지 바뀌었다.
증거 확보를 위한 과정도 쉽지 않았다. 박씨 측은 “같은 재판부가 다른 두 지적장애인의 처벌불원서는 인정하지 않았다”며 검찰로부터 관련 기록을 받으려 했으나 검찰은 “직접 당사자가 아니라면 기록을 보여줄 수 없다”며 버텼다.(본보 2019년7월8일자 13면) 검찰은 지난해 12월 법원의 문서제출명령에 그제서야 증거를 제출했다. 법원의 명령도 “광주지검 목포지청에서 증거조사를 하게 해달라”며 박씨 측이 법원 밖 증거조사 신청을 제기한 끝에 받아낼 수 있었다.
박씨 측은 “어렵게 확보한 증거들을 바탕으로 이제 해당 법관들에게 경위를 상세하게 들을 수 있게 됐다고 생각했는데 법원은 증인신문 요청도 받아들이지 않고 재판을 끝내려 한다”며 기피신청 이유를 밝혔다. 또 “충실히 심리하지 않은 채 상고심에서 다투라고 하니 재판부가 예단을 갖고 재판을 진행하는 게 아닌지 의문이 든다”고 말했다.
윤주영 기자 roz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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