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법원은 솜방망이 처벌, 검찰은 자료 거부 “염전노예 13년 고통 어디서 보상받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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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법원은 솜방망이 처벌, 검찰은 자료 거부 “염전노예 13년 고통 어디서 보상받나요”

입력
2019.07.08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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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2월 6일 서울 구로경찰서는 "일자리를 준다"는 말에 속아 외딴섬에서 '염전노예'로 일한 장애인 김모(40)씨와 채모(48)씨를 탐문수사 끝에 구출했다고 밝혔다. 김씨가 감시를 피해 '구출해달라'고 어머니에게 보낸 편지가 수사의 단서가 됐다. 정확한 주소를 알 수 없었던 경찰은 소금 구매업자로 위장해 섬 곳곳을 탐문해 염전에서 일하던 이들을 구출했다. 구로경찰서 제공

서해안 염전에 끌려가 노예로 일해야 했던 피해자가, 사실확인 절차를 소홀히 하며 염전 주인에게 솜방망이 처벌이 내린 재판부를 상대로 소송을 냈지만, 검찰이 자료 제출을 거부한 탓에 소송에 곤란을 겪는 것으로 확인됐다. 글을 모르는 지적장애인이 합의서를 썼는데 그 진위도 확인하지 않고 덥석 받아들인 법원, 개인정보 보호만 앞세우며 진실 규명을 뒷전으로 돌린 검찰 등 법원ㆍ검찰의 연이은 무성의함 때문에 염전노예 피해자의 억울함은 끝내 풀리지 못할 위기에 처해 있다.

7일 한국일보가 관계자 증언과 사건 기록 등을 통해 취재한 결과에 따르면, 지적장애인 박모씨는 2001년 1월 “먹여주고 재워 줄 테니 우리 집 가서 일하자, 70만원씩 줄게”라는 염전주 A씨의 꼬임에 속아 전남 신안군으로 따라갔다. 지능지수(IQ) 43으로 지적장애 2급에 해당하는 박씨는 이후 13년 동안 돈을 받지도 못한 채 A씨 염전에서 일했다.

그 동안 A씨는 일을 잘 못한다며 코피가 날 정도로 박씨 뺨을 때리거나, 염전노예 사건이 불거진 뒤 수사를 피하기 위해 박씨를 지인 집에 한 달간 감금하기도 했다. 2014년 검찰은 A씨를 영리유인, 준사기, 감금, 근로기준법 위반 혐의로 구속기소했다.

그러나 2014년 10월 광주지법 목포지원이 염전주 A씨에게 내린 처벌은 고작 징역 2년에 집행유예 4년이었다. 특히 임금 미지급으로 인한 근로기준법 위반 혐의에 대해 사실상 무죄인 ‘공소기각’ 판결을 내렸다. “피해자가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합의서를 제출했다”는 이유에서였다. 당시 목포지원은 염전주 측 변호사가 제출한 합의서만 믿고, 박씨와 후견인 의사는 확인하지 않았다.

[저작권 한국일보]염전노예 피해자 박모씨 사건 일지 -박구원 기자/2019-07-07(한국일보)

박씨 측에 따르면 문제의 합의서는 염전주 지인이 박씨를 찾아가 이름만 적게 한 것으로, 인감증명서나 신분증 사본 등 통상 동반되어야 할 서류도 첨부되지 않았다. 2015년 2심은 “합의가 없었다”고 인정하면서도 “A씨가 반성하고 있다”는 이유로 1심이 내린 형을 유지했다. 검찰이 근로기준법 위반 부분을 항소하지 않아 공소기각 판결도 그대로 유지됐다.

이후 박씨 측은 “목포지원 법관들의 잘못으로 형사피해자의 진술권이 침해됐고 정신적 충격을 입었다”면서 국가를 상대로 배상을 청구했다. 그러나 지난해 서울중앙지법은 “목포지원 법관들이 위법 또는 부당한 목적을 가지고 재판을 했거나 법관의 직무수행 기준을 현저하게 위반했다고 보기 어렵다”며 박씨의 청구를 기각했다.

박씨는 항소했으나, 2심에서는 검찰의 비협조에 울어야 했다. 박씨 측은 “목포지원의 동일한 법관들이 다른 염전노예 소송에서는 지적장애인의 처벌불원서를 인정하지 않았다”며 해당 재판의 기록을 제출받아 비교해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기록을 관리하는 광주지검 목포지청은 “사건 관계인의 사생활 침해가 우려된다”며 문서를 보내달라는 2심법원 요청(문서송부 촉탁)을 거부했다. 검찰 측은 “직접 당사자가 아니라면 수사기록을 보여줄 수 없다”는 입장을 바꾸지 않고 있다.

검찰 결정에도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니다. 정보공개법과 개인정보보호법 규정이 상세하지 않은 상황에서 수사기록을 당사자 동의 없이 공개했다가 개인정보가 유출되면 검사 개인이 법적 책임을 져야 하기 때문이다. 다만 국민의 공분을 샀던 염전노예 사건 피해자의 억울함을 풀어줘야 할 이 사건의 특수성을 고려할 때, 대안을 고려치 않고 무작정 정보 공개를 거부하는 검찰의 결정에는 아쉬움이 크다는 지적이 많다. 특히 증인신문조서, 공판조서 등 이미 법정에서 공개된 기록까지 제출을 거부한 것은 지나치다는 평가가 있다.

13년의 노예 생활을 벗어난 박씨는 현재 한 노숙자 쉼터에 머무르고 있다. 염전 주인의 탐욕과 재판부의 실수에서 비롯된 고통을 보상받기 위한 그의 투쟁은, 검찰과 법원의 무관심 속에 항소장이 제출된 지 1년간 단 한 번 밖에 재판이 열리지 않을 정도로 지지부진하다.

박씨 소송을 맡은 최정규 변호사는 “피해자의 합의는 재판 결과에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인감증명서나 신분증 사본으로 꼼꼼히 확인하거나 피해자를 직접 불러 의사를 물어봐야 한다”며 “법원과 검찰이 보여 준 태도는 우리 재판 절차의 총체적 부실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개탄했다.

정반석 기자 banseo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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