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때문에 극장 가기가 쉽지 않다. 영국영화연구소(BFI)가 ‘집콕’의 어려움을 영화로 달래고 싶은 시네필들을 위해 넷플릭스와 아마존 프라임에서 즐길 수 있는 수작 100편을 선정했다. 이중 국내 넷플릭스에서도 볼 수 있는 최근작 10편을 소개한다.
◇언컷 젬스(2019)
최근 미국 독립영화계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베니ㆍ조쉬 사프디 형제 감독의 최신작이다. 빚더미에 위에 앉은 보석 판매상 하워드(애덤 샌들러) 스포츠 도박으로 인생 역전을 노리는 과정을 그렸다. 하워드는 빚쟁이들에게 시달리던 중에 아프리카에서 보석 원석을 구입하게 된다. 보석 원석을 바탕으로 열악한 채무 상황을 뒤집으려는데 현실은 자꾸 꼬여만 간다. 복마전 같은 상황을 헤쳐나가는 하워드를 통해 배금주의 미국사회를 들춘다. 제92회 미국 아카데미영화상 주요 후보로 거론됐으나 지명에는 실패했다. 샌들러는 사랑과 부를 쟁취하기 위해 벼랑 끝 상황까지 삶을 몰아가는 하워드를 생동감 있게 연기한다. 미 프로농구(NBA) 보스턴 셀틱스의 케빈 가넷이 출연한다.
◇우리는, 파리(2019)
우리 삶이 우리 자유의지대로 살 수 있는 것인지 반문하는 프랑스 영화다. 아나와 그레그는 프랑스 파리에 사는 연인이지만, 그레그는 승무원이 되기 위해 스페인 바르셀로나로 떠난다. 어느 날 아나가 타기로 했던 바르셀로나행 비행기가 추락하면서 수많은 사람이 희생된다. 아나는 만일 그레그를 따라 바르셀로나를 갔다면, 그리고 자신이 탄 비행기가 추락했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는 상상한다. 자신의 의도와는 무관하게 외부 힘에 의해 뒤틀리는 삶의 부조리를 시적 영상으로 되짚는 영화다. 2015년 파리 바탕클랑 극장 테러 등을 모티프로 만들었다. 엘리자베트 보글러 감독의 데뷔작.
◇애틀란틱스(2019)
지난해 칸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서 ‘기생충’ 등과 황금종려상을 다투다 2등상에 해당하는 심사위원대상(2004년 ‘올드보이’가 수상했던 상)을 받았다. 세네갈ㆍ프랑스 합작영화로 배우 마티 디우프의 장편 데뷔작이다. 부잣집 남자와 정혼했음에도 사귀는 남자가 따로 있는 아다의 이야기를 펼친다. 아다의 남자친구는 만성 임금체불에 실망해 유럽행 밀입국선을 타지만 사고로 숨진다. 이슬람 가부장제의 억압과 약탈적 자본주의의 착취, 식민지배의 후유증 등을 마술적 리얼리즘에 기대 은유한다. 예측불가 이야기 전개가 매혹적인 영화다.
◇피플리 라이브(2010)
인도의 도농격차를 다룬 풍자 코미디 영화다. 인도 피플리에 사는 가난한 소작농 형제의 이야기를 통해 빠르게 현대화하고 있는 인도 사회의 어둠을 들춘다. 소작농 네이타와 부디아 형제는 농사 일을 하러 나간 척하고선 틈만 나면 술을 마신다. 모아놓은 돈이 바닥을 드러낼 정도로 술을 마시다가 형제 가족에게 위기가 닥친다. 대출금 이자조차 못 낼 상황에 집과 토지를 은행에 뺏길 처지에 놓인다. 형제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면 지방정부로부터 가족에게 보상금이 나올 수 있다는 점을 알고, 이를 악용하려 하는데 일은 계획과 달리 틀어지기 시작한다. 감독 아누사 리즈비, 마흐무드 파루키.
◇바람의 저편(2018)
영화 역사상 가장 위대한 영화 중 하나로 꼽히는 ‘시민 케인’(1941)을 만든 배우 겸 감독 오슨 웰스(1915~1985)의 연출 유작이다. 웰스는 ‘상하이에서 온 연인’(1947), ‘검은 함정’(1958) 등 여러 편의 걸작을 만들었음에도 ‘시민 케인’을 능가하는 위대한 작품을 만들겠다는 강박에 사로잡혔다고 한다. ‘바람의 저편’은 그런 웰스가 1970년부터 6년 동안 만들다가 재정난으로 제작이 중단된 작품이다. 2017년 넷플릭스가 영화 복구 작업을 결정해, ‘바람의 저편’의 프로듀서였던 프랭크 마셜이 총괄해 완성했다. 전설적인 영화감독 제이크(존 휴스턴)가 유럽 은둔 생활을 마치고 할리우드에서 복귀작을 촬영하는 과정을 담았다. 화면 하나하나에서 웰스의 집요한 예술혼을 감지할 수 있다. 남녀 주인공이 차 안에서 사랑을 나누는 장면은 3년에 걸쳐서 촬영됐다. 2018년 베니스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 올랐다.
◇프라이빗 라이프(2018)
리처드(폴 지아메티)와 레이철(캐스린 한)은 중년의 작가 부부다. 이들은 아이를 갖고 싶어 갖은 애를 쓰지만, 임신에 거듭 실패한다. 리처드는 난임 치료를 위해 동생 부부에게 1만 달러를 빌리기도 하는 등 애를 쓰는 한편 아이 입양을 추진한다. 시험관아기 임신마저 실패하자 의사는 레이철에게 난자를 기증 받으라고 권한다. 레이철은 모르는 사람 난자를 기증 받는 게 불안해, 작가 지망생으로 자신의 집에 머물게 된 리처드의 조카 사디에게 난자 기증을 제안한다. 사디는 대수롭지 않은 듯 요청에 응하고, 부부의 임신 소망은 금세 이뤄질 것처럼 보이는데…. 임신을 둘러싼 여러 소동을 통해 삶의 의미를 곱씹는 코미디 영화다. 감독 타마라 젱킨스.
◇로마(2018)
지난해 미국 아카데미영화상 감독상과 촬영상, 외국어영화상을 받은 작품이다. 넷플릭스가 야침차게 만든 영화로 제작 단계부터 화제를 모았다. 멕시코시티 로마 지역에 사는 한 중산층 가족의 삶을 통해 1970년대 격동의 멕시코 역사를 보여준다. 아름다운 흑백화면과 섬세한 음악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부모의 이혼으로 시련 앞에 놓인 아이들의 이야기에다, 멕시코 북부 지역 원주민 가정부 클레오의 고난을 포개며 현재진행형인 멕시코 현대사의 아픔을 그린다. ‘이투마마’와 ‘칠드런 오브 맨’, ‘그래비티’ 등을 만든 알폰소 쿠아론 감독의 세공술이 빛을 발한다.
◇일요일의 병(2018)
오랫동안 떨어져 지낸 엄마와 딸에 대한 스페인 영화다. 스페인 유명 감독 페드로 알모도바르의 후기 작품을 연상시킨다는 평가를 받는 작품이다. 어느 날 중년 여성 아나벨에게 30년 전 양육을 포기한 딸 키아라가 찾아온다. 키아라는 아나벨에게 10일만 같이 보내자고 한다. 아나벨은 키아라의 요구대로 키아라를 법적 가족으로 받아들이지만 키아라의 의중을 알 수 없다. 키아라는 아나벨에게 시골 여행을 하자고 하고, 아나벨은 함께 길을 나선다. 어쩔 수 없이 헤어져야만 했던 모녀의 애증과 심리를 묘사하는 연출력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2018년 베를린국제영화제 파노라마부문에서 상영됐다. 감독 라몬 살라사르.
◇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2017)
프랑스 누벨바그의 주요 감독이었던 아녜스 바르다(1928~2019)가 유명 사진작가 제이알과 함께 만든 다큐멘터리영화다. 두 사람은 프랑스 전국을 돌며 평범하지만 평범하지 않은 사람들의 얼굴을 포착해 찍은 대형 사진을 지역 현실에 맞게 전시하는 프로젝트를 꾸린다. 바르다와 제이알은 세대차이 때문에 서로 티격태격하면서 아름다운 사진들을 찍어가며 보이지 않는 곳에서 프랑스를 지탱하는 보통사람들의 얼굴을 화면에 소개한다. 영상물이 넘쳐나는 현대사회에서 영화의 효용성을 새삼 깨닫게 하는 영화다. 그저 지나치기 십상인 시골 농민과 공장 노동자, 여성 노동자 등의 얼굴을 예술의 경지로 이끌어내는 바르다와 제이알의 협업이 흥미롭다.
◇우리 함께 파라다이스(2018)
멕시코 스릴러 영화다. 페드로는 아내, 아들과 일주일간 고급 리조트에서 휴가를 보내게 된다. 리조트 방갈로에 도착해 해방감을 느끼는 순간은 잠시. 안드레스라는 남자의 가족이 찾아와 자신들이 예약한 방이라고 주장한다. 리조트의 실수로 초과 예약을 받은 것. 두 가족은 어쩔 수 없이 방갈로를 함께 쓰는데, 페드로는 안드레스 가족의 행동이 계속 눈에 거슬린다. 안드레스와 아내는 아들을 잃은 후 사이가 급격히 나빠진 상황. 두 사람은 리조트에서 함께 일하고 있는데, 아내는 새로운 프로젝트에 참여해 승진을 눈앞에 두고 있다. 페드로는 두 사람의 신경전을 불안하게 바라보는데 갑작스런 사고가 발생한다. 감독 세바스티안 호프만
라제기 영화전문기자 wender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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