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2학년 새 학기가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던 4년 전 이맘때쯤 방과후 운동장에서 놀던 아이가 갑자기 친구와 함께 담임교사에게 불려갔다. 당시 아이 설명을 종합하면, 담임은 하교하던 한 1학년 동생을 신발주머니로 때린 녀석이 누구냐고 다짜고짜 물었다. 영문을 몰라 우물쭈물한 채 서 있던 두 아이에게 담임은, 그 동생 엄마가 자기 아이를 신발주머니로 때린 학생을 찾아내 달라고 학교로 연락했다면서 솔직히 얘기하라 다그쳤다. 담임은 다음날 그 동생과 동생네 담임교사가 다른 교실들을 돌며 전날 때린 형을 찾아낼 거라는 계획까지 상세하게 일러줬다.

아이는 겁을 잔뜩 집어먹고 울먹이면서 집으로 돌아왔다. 누군가가 신발주머니로 맞는 걸 보지도 듣지도 못했는데, 그 동생이 누군지도 모르는데 선생님이 자신을 의심한다며 너무나도 억울해 했다. 함께 불려갔던 아이 친구는 혹시 그 동생이 자길 때린 형과 얼굴이 헷갈려서 자신을 지목하면 어떡하냐고 걱정했다. 아이들의 억울함이 충분히 공감할 만했다. 전화기를 들었다 놨다 망설였다. 화가 났지만, 직접 목격한 상황이 아닌데 학교 문제에 엄마가 괜히 나서나 싶기도 했다. 아이들이 신발주머니로 동생을 때려놓고 혼날까 봐 모른 채 한 건 아닐까, 별 생각이 다 들었다.

조심스럽게 교실로 전화를 걸어 담임에게 두 아이를 의심한 이유를 물었다. 그런데 당황스럽게도, 이유는 두 아이가 그 1학년 동생과 같은 시간에 운동장에 있었다는 것뿐이었다. 그 외에 다른 뚜렷한 정황이 없는데 어린 아이들을 잠재적인 가해자로 몰아버린 건 성급했다고 생각한다는 의견을 전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때 운동장에 있었던 다른 반 아이들도 각자의 담임에게 비슷한 추궁을 당했다는 얘기를 며칠 뒤 이웃 엄마들에게 전해 들었다.

억울함은 인간의 감정이나 의사결정 과정에서 일어나는 뇌의 작용을 연구하는 신경과학이 난제로 꼽는 현상 중 하나다. 사회생활을 하는 인간만이 갖는 특별한 감정이기 때문이다. 가령 무서움이나 두려움 같은 감정을 느낄 때 뇌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 지는 수많은 동물실험을 통해 연구가 시도돼왔다. 하지만 인간을 대상으로는 뇌 실험이 쉽지 않아, 억울함처럼 인간만이 갖는 감정에 대해선 어떤 신경이 관여하는지 여전히 수수께끼다.

사람이 특정 감정을 느낄 때 뇌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를 확인하는 실험 방법으로 기능성 자기공명영상(fMRI) 촬영이 있다. 피험자를 특정 감정이 나타나는 상황에 처하게 해놓고 10분~1시간 정도 fMRI로 뇌 속 여러 부위별 변화를 영상으로 촬영하는 것이다. 이렇게 얻은 데이터를 평균하면 두려움이나 만족감, 슬픔 등 여러 감정마다 대개 뇌의 어느 한 부위가 두드러지게 활성화하는 경향이 나타난다. fMRI 연구의 신뢰성을 둘러싸고 많은 논란이 있긴 했지만, 한때 이 방법이 신경과학 연구에 적잖은 기여를 했던 건 사실이다.

과학자들이 보는 억울함은 공포나 슬픔처럼 뚜렷하게 설명되는 감정들과는 좀 다르다. 억울함을 느끼는 사람의 심리는 이런저런 상황 및 인간관계와 여러 생각들이 얽히면서 뭐라 딱 잡아 한 마디로 표현하기 어려운 복잡한 상태가 된다. 더구나 그런 상태가 몇 분 만에, 몇 시간 만에, 하루가 다르게 바뀌기 예사다. 너무 억울해서 눈물 날만큼 슬프다가도 너무 억울한 나머지 불같이 화가 나기도 한다. 억울하다 못해 체념하게 되거나, 반대로 오기와 반발심이 생기기도 한다. 첨단 연구 장비로도 억울함을 관장하는 뇌 영역을 콕 집어 찾아내기 어려운 이유다.

신경과학에서는 억울함을 감정이 아닌 고등한 뇌 기능이라고 보는 시각도 있다. 인간이 억울함을 표출하는 건 단순한 감정의 발로만이 아니라 사회적 가치에 대한 판단이 담겨 있는 반응이라는 것이다. 이를테면 누군가의 잘못으로 피해를 입은 사람이 억울하다고 생각하는 데는 앞으로 자신이 손해를 보거나 부당한 대우를 받을 거라고 염려하는 생각이 깔려 있다. 자신의 이익과 손해를 판단하고, 미래에 있을 일을 예측하는 건 인간의 뇌가 가진 고등한 인지능력이다.

억울한 일을 겪은 사람에게 가장 도움이 되는 건 공감이다. 생각을 공유해주고 함께 마음을 나눠주는 이웃이 있을 때 억울함은 조금씩 치유될 수 있다. 이마 바로 뒤, 뇌의 가장 앞부분인 전두엽 안쪽에 이런 공감 능력을 담당하는 신경세포들이 있다. 다른 이의 아픔을 마치 내 아픔처럼 느끼게 하는 이 세포를 과학자들은 거울신경이라고도 부른다.

신발주머니 사건이 해결된 뒤 담임은 아이에게 진심을 담아 사과했다. 담임을 어려워했던 아이는 미안했다는 선생님의 말 한 마디에 억울했던 기억을 지워갔다. 개학이 연기되기 전 아이에게 초등학교 마지막 학년에 어떤 담임을 만나면 좋을까 물었더니, 아이는 망설임 없이 2학년 때 담임이라고 답했다. 아이의 기억 속에 그 교사는 자신의 억울함에 공감해준 좋은 선생님으로 남았다.

임소형 기자 precar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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