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도쿄올림픽 무대를 준비 중이던 복싱과 럭비 대표팀은 올해를 비인기 종목의 설움을 떨칠 기회로 여겼다. 사상 첫 올림픽 진출을 확정한 기세를 안고 깜짝 메달까지 노려보겠다는 각오도 컸다. 그러나 24일 국제올림픽위원회(IOC)와 일본 정부가 대회 연기를 결정하면서 올림픽 무대 도전의 기다림도 1년 더 연장됐다.
선수와 지도자들은 “허탈하지만 더 탄탄한 전력을 갖출 기회로 삼겠다”며 의지를 다졌다. 지난달 9일 요르단 암만에서 열린 도쿄올림픽 아시아ㆍ오세아니아 지역 예선 여성 페더급(54~57㎏) 동메달을 따내며 여자복싱 사상 첫 올림픽 본선행을 확정한 임애지(21ㆍ한국체대)는 25일 본보와 통화에서 “조금은 허탈하지만, 긍정적으로 생각하겠다”고 했다.
임애지는 “지난달 올림픽 예선을 나가보니 내가 올림픽에서 메달을 따려면 정말 죽어라 연습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대회 연기를 하늘이 내게 준 기회로 여길 생각”이라고 했다. 실제 전남 화순중 2학년 때 동네 체육관에서 복싱을 시작한 임애지는 투지와 자세가 훌륭하지만 기본기가 다소 약하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본인 스스로도 “올림픽 본선행 티켓을 따긴 했지만, 정작 도쿄에서 메달을 딸 거란 생각은 못 하겠더라”고 할 정도로 보완해야 할 점이 적지 않다.
그를 지도하는 장한곤 복싱대표팀 감독도 생각은 비슷하다. 장 감독은 이날 “이미 티켓을 확보한 선수들 입장에선 허탈할 수 있겠지만, 경쟁력을 더 키울 기회로 삼아야 한다”고 했다. 장 감독은 “함께 도쿄행 티켓을 따낸 오연지의 경우 워낙 베테랑인 데다 훈련을 오랫동안 많이 했지만, 임애지의 경우 복싱을 상대적으로 늦게 시작해 기본기를 더 가다듬고 장점을 살릴 시간을 번 셈”이라고 내다봤다.
임애지는 “올림픽 연기 결정 이전까지 ‘어떤 상황이든 받아들일 것’이란 마음가짐으로 준비했다”며 “기대가 크지 않았던 올림픽 본선티켓을 거머쥐어서인지 성취감에 취해있었는데, 남은 1년 동안 후회 없이 훈련해 도쿄에서 경쟁하겠다”고 했다.
여자복싱과 마찬가지로 사상 첫 올림픽 본선 무대를 준비하던 남자럭비 대표팀도 여러 감정이 교차하는 모습이다. 주장 이완용(36ㆍ한국전력)은 이날 본보와 통화에서 “나를 포함해 연령대가 높은 선수들이 꽤 있어서인지 선수들이 다소 허탈해 하고 있다”면서 “그래도 올림픽이 취소된 것보단 낫다는 안도감과 함께 준비를 더 잘 해야겠다는 마음가짐도 크다”고 했다. 서천오 남자럭비 대표팀 감독은 “안전이 우선이기에 대회 연기는 받아들여야 한다”면서 “차근히 체계적으로 준비하고, 시간이 더 생긴 만큼 ‘숨은 진주’도 찾아볼 것”이라고 했다.
김형준 기자 mediabo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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