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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읽기] 우리는 어쩌다 이렇게 좁은 집에 살게 됐을까

입력
2020.03.28 04:30
수정
2020.04.16 14:16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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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1인당 주거면적 31.7㎡… 일본보다 8.5㎡나 작아

체형 커지고 생활 윤택해졌지만 국민주택규모는 50년째 85㎡

코로나로 주거기능 외에 피신처ㆍ재택근무 기능까지

초연결사회 양질의 생활 위해 새로운 주거기준 도입해야

서울 중구 남대문 쪽방촌 주민들이 추운 겨울을 나고 있다. 뉴시스.
서울 중구 남대문 쪽방촌 주민들이 추운 겨울을 나고 있다. 뉴시스.

※서민들에게 도시는 살기도(live), 사기도(buy) 어려운 곳이 되고 있습니다. 부동산 가격은 치솟고 거주의 양극화는 갈수록 심해집니다. 이런 불평등과 모순은 어디에서 비롯된 걸까요. 도시 전문가의 눈으로 도시를 둘러싼 여러 이슈를 하나씩 짚어보려 합니다. 주택과 부동산 정책, 도시계획을 전공한 김진유 경기대 도시교통학과 교수가 <한국일보>에 3주에 한번씩 토요일 연재합니다.

<1> 코로나와 도시주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우리 주변의 모든 일상을 뒤바꿔놓고 있다. 그 중심에는 ‘집(home)’이 있다. 주로 먹고 자는 공간이었던 집은 이번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을 겪으며 다차원적 의미를 가진 공간으로 거듭나고 있다. 집 밖에서 행해지는 게 당연했던 일들이 하나 둘 집 안으로 들어오고 있다. 이러다 과부하에 걸리지 않을지 걱정될 정도다.

◇팬데믹이 바꾼 집의 의미

처음 코로나19의 유행이 시작된 중국을 비롯해 최근 확산세가 무서운 유럽과 미국에 이르기까지, 세계 각국은 시민의 이동을 제한하고 자택에 머물도록 강제하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 도시봉쇄 같은 조치까지는 없었지만 우리나라 역시 코로나와 유사한 증상만 있어도 ‘자가격리’가 필수인 상황이다. 각자가 머물고 있는 집이 단순한 주거공간을 넘어, 감염병의 피신처이자 자가 치료 공간의 역할까지 요구 받고 있는 것이다.

그뿐 만이 아니다. 집단감염을 최소화하기 위해 시행되고 있는 재택근무는 주택이 업무기능을 수용하는 공간으로 변화해야 함을 의미한다. 인터넷망이 잘 구축되어 있고 충분한 면적의 주택에 거주하고 있다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이 가운데 어느 하나만 부족해도 업무 효율성은 크게 떨어질 수밖에 없다.

더구나 아이들과 청소년이 있는 가정이라면 집은 보육이나 교육기능도 수행해야 한다. 최악의 경우에는 자가격리를 하면서 아이들을 돌보고 재택근무를 해야 하는 상황까지 벌어질 수 있다는 얘기다. 감염병의 확산을 막고 사회존립을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기능들을 담아야만 하는, 집에 부여된 역할은 그야말로 막중해졌다.

사실 산업화와 도시화 이전의 집은 매우 복합적인 기능을 가진 공간이었다. 출산은 대부분 집에서 이루어졌고, 가정에서 교육이 이루어졌다. 아프면 집에서 치료를 받았고, 자신의 집에서 죽음을 맞이하였다. 집은 병원이자 학교이면서 공장이었고, 부모는 의사이자 선생님이면서 직장 상사였다. 우리 생애 전 과정을 담는 그릇으로서의 다목적 공간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도시화의 물결 속에서 집이 품고 있던 기능들은 상당 부분 외부화됐고, 집은 순수한 주거공간으로 그 역할이 축소되었다. 병원에서 태어나서 학교에서 교육을 받고 공장에 근무하거나 오피스에서 업무를 보면서 살게 되었다. 보통사람에게 집은 그저 지친 몸을 누이고 가족과 담소를 나누며 재충전하는 회복의 공간이면 충분했다.

그러던 집이 이번 팬데믹을 거치며 느닷없이 산업화, 도시화 이전의 역할을 요구 받고 있다. 기후변화로 인한 환경오염과 신종 감염병의 발발 주기가 갈수록 빨라지는 점을 떠올리면 앞으로도 집은 위기의 순간마다 피난처가 될 가능성이 높다. 과연 우리들의 집은 이 위기에서 우리를 구해낼 수 있을까.

◇좁은 집에 살게 된 이유

그런데 한국의 사정은 조금 특수하다. 이번 사태는 오히려 우리나라 도시주거 현실의 열악함을 피부로 느끼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질병관리본부의 자가격리수칙 중에는 ‘가능한 방과 욕실을 혼자 사용하라’는 항목이 있다. 문제는 단독으로 방과 욕실을 사용할 수 있는 경우는 많지 않다는 점이다. 국토교통부의 2018년도 주거실태조사를 분석해보면 서울과 6대 광역시 거주자들은 1인당 1.2개의 방을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 하지만 이를 가구원수별로 구분해보면 3인 이상 가구부터는 1인당 방의 수가 1에 미치지 못한다. 가구원수가 많아질수록 이 비율은 더 떨어진다.

특히 원룸에 살고 있는 가구의 경우 13.4%가 2인 이상 가구이므로 방과 욕실의 단독 사용은 불가능하다. 만약 자가격리수칙을 철저히 지키고자 한다면 이들 중 한 사람은 다른 집을 찾아야 한다.

다른 나라들과 비교해보면 더 쉽게 체감할 수 있다. 같은 해 기준 우리나라의 1인당 주거면적은 31.7㎡로 일본의 40.2㎡나 영국의 40.9㎡보다 약 9㎡정도 작다. 미국의 65㎡에 비하면 반도 안 되는 수준이다. 이 면적은 주거전용면적을 기준으로 한 것이므로 마당이나 발코니 등의 부수적인 공간은 포함되지 않는다. 공동주택비율이 월등히 높은 우리의 현실을 감안하면 실제 사용하는 면적은 더 큰 격차를 보일 것이다. 심지어 우리보다 작은 집에 살 것이라고 생각하는 일본마저도 우리보다 27% 정도 넓은 면적에 살고 있다.

이유가 뭘까. 1972년 도입된 ‘국민주택규모(85㎡)’와 주택관련법상의 ‘소형주택(60㎡)’에서 그 실마리를 찾아볼 수 있다. 국민주택규모는 제정된 지 50년 가까이 됐지만 단 한 뼘도 늘어나지 않았다. 주택시장에서 85㎡는 절대적이다. 전용면적이 85㎡를 넘는 순간 많은 혜택들이 사라지고 소유자는 세금계곡에 빠지게 된다. 절세를 위해선 85㎡를 넘어선 규모는 지양해야 한다. 건설사들이 분양하는 아파트에 ‘84.xx㎡’ 규모가 많은 이유다.

또한 소형주택과 공공임대는 60㎡를 넘지 못한다. 공공임대주택에 들어가려면 식구가 많아도 그저 59㎡에 입주할 수밖에 없다. 그 결과 2018년 기준 우리나라 주택 1,760만 호 중 36%인 632만 호가 60㎡ 초과 85㎡ 이하다. 그보다 더 큰 규모인 85㎡ 초과 100㎡ 이하는 84만 호로 전체의 5%에 불과하다.

부동산정보서비스 직방의 통계를 봐도 서울시내 30세대 이상 아파트 중 36.6%는 80∼85㎡이고 19.4%는 55∼60㎡규모다. 반면 이보다 조금 작거나 큰 규모의 재고 비율은 모두 5% 미만이다. 한마디로 기형적인 규모 분포라고 할 수 있다. 그 사이 평균 키도 커지고 살림살이가 윤택해졌음에도 우리가 사는 집의 규모는 ‘85㎡와 60㎡’의 굴레에 수십 년간 갇혀 있는 셈이다.

한 고시원의 내부 모습. LH토지주택연구원 제공.
한 고시원의 내부 모습. LH토지주택연구원 제공.

◇집이 충분히 넓어야 안전하다

온 식구가 집에 모여 하루 종일 생활하게 된 지금, 우리 가족 구성원들은 ‘불편한 진실’을 깨닫고 있지 않을까. 자가격리 중인 아빠와 화장실을 함께 쓰면서, 재택근무 중인 아들과 아버지가 서재를 호시탐탐 노리면서, 맞벌이 부부 언니가 맡기고 간 조카들을 돌보면서, 우리가 살고 있는 집의 넓이가 너무 작다는 점을 새삼 느끼고 있을 지 모른다. ‘식탁이 빠듯하구나’ ‘화장실이 부족하구나’ ‘거실이 너무 좁구나’ 하는 생각들 말이다.

그나마 ‘주택’의 사정은 나은 편이다. 최저주거기준에도 미치지 못하는 고시원과 원룸, 쪽방에 사는 가난한 노인과 청년들까지 눈을 돌리면, 우리의 주거 현실은 우려를 넘어 공포마저 느끼게 된다.

1∼2인가구가 증가하고 공유주택이 세계적 대세인 시점에 ‘넓은 집 타령이 웬 말이냐’는 반론이 나올 수도 있다. 일시적으로 자가격리나 재택근무가 늘어난 것을 두고 넓은 집을 운운하는 것은 비약 아니냐는 이야기를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앞서 살펴봤듯 우리나라의 절대적인 주거면적은 경제수준에 비춰볼 때 너무 좁다. 이웃 일본보다도 1인당 8.5㎡가 적다. 평균가구원수 2.5명 기준으로는 약 21㎡가 좁다. 무엇보다 이렇게 된 이유가 1∼2인 가구 증가라는 인구학적인 변화가 아닌, 현실을 따라가지 못하는 국민주택규모와 같은 낡은 규제에 있다면 문제가 심각한 것 아닌가.

사실 바쁜 일상을 전쟁하듯 살아가는 보통의 한국인들은 집을 그저 밥 먹고 잠자는 곳으로만 알고 살아가는 경우도 많다. 그래서 좁더라도 큰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해왔다. 필요한 기능이 단순하고 머무는 시간도 많지 않으니 말이다.

그러나 4차 산업혁명의 물결 속에서 초연결사회가 다가오고 있는 현 시점에 집은 더 이상 순수 주거의 공간일수만은 없다. 감염병이 아니더라도 집은 이미 다양한 기능들을 수용해야만 하는 공간으로 변화되고 있다. 후대의 건강한 생활과 새로운 시대의 공간수요를 충족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주거기준을 도입하고 충분한 면적을 가진 양질의 주택을 지속적으로 공급할 필요가 있다. 본질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주택과소비’를 들먹이는 일은 이제 멈춰야 한다. 집이 집으로 설 수 있게, 삶이 삶으로 이어질 수 있게 보다 현실적인 주택 정책이 절실히 요청되는 시기이다.

김진유 경기대 도시ㆍ교통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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