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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일상생활을 유지하려는 것은 중력에 끌리는 것과 같다. 바이러스로 인해 전 세계가 이동 제한령을 내리는 중에도, 국가가 허락하는 최소한의 생필품이 있다고 한다. 벨기에의 감자튀김, 프랑스의 와인은 국민 먹거리로 문을 연다. 이탈리아의 신문 판매대와 독일의 자전거 대여점도 국민 생필품을 제공하는 의미로 허가했다고 한다. 재난 상황에서도 종이 신문을 보는 것은 최소한의 먹거리처럼 심리적 위안이 될 수 있다. 이런 것이 문화 정체성이다.

재난 상황보다는 평안한 때라면 무엇이 문화를 말해 줄까? 공간의 틈새에서 숨 쉬는 색깔도 그중 하나다. 한 예로, 우체통의 색깔은 나라마다 다르다. 이탈리아, 일본, 캐나다, 태국의 우체통은 빨간색이지만, 프랑스, 독일, 오스트리아, 스위스의 우체통은 노란색이다. 미국과 러시아에는 파란색, 중국에는 초록색 우체통이 있다. 한국에서는 처음 나무 색깔 그대로를 썼지만, 이후 현재까지 빨강이 들어간 색을 계속 쓰고 있다. 빨간색은 열정과 사랑, 신속성을 의미하고 파란색은 희망을 전한다는데, 한국의 빨간 우체통은 어떤 의미일지 새삼 생각해 본다.

어릴 때 가을 하늘 아래 펼쳐지던 운동회에는 청군과 백군이 있었다. ‘이겨라!’를 외치며 하루를 선하게 싸운 두 팀을 ‘청군과 백군’으로 부른 것은 참 독특하다. 이웃나라들에서 청군과 홍군이 맞붙을 때, 한국에서 파란색을 상대한 대표 색깔은 흰색이었다. 돌아보면 한국 땅에는 흰색 차가 유난히 많다. ‘백의민족’이란 말처럼 한국에서 흰색의 힘은 세다. 비빔밥, 단청, 색동옷의 오방색을 누리면서도 흰색의 멋을 아는 한국 사람들. 재난 상황의 생필품처럼, 빛깔이 말하는 것도 한국인의 문화 정체성이다.

이미향 영남대학교 국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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