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은, 美연준과 6개월 계약… 12년前 금융위기 때 규모의 2배
美, 호주 등 8개국과도 체결… 한은 “외환시장 안정화 기대”
한국과 미국 간 통화스와프 계약이 19일 전격 체결됐다. 통화스와프는 미국으로부터 국내 금융시장에 가장 빠른 속도로 달러를 공급할 수 있는 제도로, 최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에 따른 달러 수급 불균형으로 인해 변동성이 강해진 국내 외환 및 금융시장이 빠른 안정을 찾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한국은행은 이날 밤 10시 미국 연방준비제도(Fedㆍ연준)와 600억달러 규모로 통화스와프 계약을 체결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이는 2008년 금융위기 당시의 두배 규모다. 계약 기간은 이날부터 올해 9월 19일까지 최소 6개월간이다.
한국과 미국은 과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도 통화스와프를 체결했으나 2010년 종료된 바 있다. 당시 통화스와프 규모는 300억달러였고, 한은은 이를 통해 5회에 걸쳐 163억5,000만달러를 시중에 공급해 시장 불안을 잠재웠다.
연준은 당시 금융위기로 인한 각국의 달러 조달 부담 해소를 위해 한국을 포함한 신흥국 중앙은행과 통화스와프를 체결했으나 이를 연장하지 않고 현재까지 유럽중앙은행(ECB)과 영국 영란은행(BOE), 일본은행(BOJ), 캐나다ㆍ스위스 중앙은행 등 5개 은행과 상시적 통화스와프만 유지하고 있었다.
한은은 “통화스와프를 통해 체결한 미국 달러화를 곧바로 공급할 계획이며, 최근 달러화 수급 불균형으로 환율 급상승을 보이고 있는 국내 외환시장 안정화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한미가 전격적으로 체결한 통화스와프는 악화일로의 국내 금융시장에 큰 버팀목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앞서 이날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ㆍ달러 환율은 전날보다 40원 오른 1,285.7원으로 마감했다. 종가 기준으로는 2009년 7월 14일(1,293원) 이후 11년만에 가장 높은 수준이다. 장중 환율이 한때 1,297원에 육박하자 외환당국은 이날 “펀더멘털 대비 원ㆍ달러 환율의 한 방향 쏠림이 과도하다”며 구두개입에 나서기도 했다.
시장에서는 2010년 이후 여러 금융 불안에도 불구하고 달러당 1,245원선이 장기간 심리적 저지선 역할을 했다고 보고 있었는데 이날 환율은 이를 크게 넘어서면서 시장에서 외환발 위기감이 증폭됐다.
현재 환율 상승의 주 원인은 급증하는 달러 수요 때문이다. 이달 들어 외국인 투자자가 코스피시장에서만 9조원 이상 주식을 순매도하면서 그만큼 달러화 환전 수요가 급증했다.
이는 동시에 국내 금융시장 불안의 원인이 되고 있다. 외부로 유출되는 자금이 많을수록 원화가치 하락으로 이어져, 다시 추가 자금이탈을 유발하는 악순환 고리가 형성되고, 국내 증시도 더 빠르게 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 한미 통화스와프 체결로 이런 불안감은 상당 부분 가실 것으로 기대된다. 2008년 통화스와프 체결 당시의 경우, 글로벌 금융위기의 영향으로 원ㆍ달러 환율이 8월말 1,089원에서 계약체결 당시 1,468원까지 상승했으나, 2010년 계약 종료 시점에는 1,170원까지 하락하는 등 안정을 되찾았다.
한은과 기획재정부는 최근 외환시장 안정을 위해 다양한 조치를 강구해 왔는데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17일 국회에 기획재정위원회에 출석해 “(한ㆍ미 통화스와프 체결을 위해) 내막적으로 노력하고 있다”면서 논의가 진행되고 있음을 암시했다.
아울러 시장 안정을 위해 정부가 추가 조치로 외환보유고를 열 가능성도 주목된다. 기재부는 앞서 18일 은행에 적용되는 선물환 포지션 한도를 확대하는 등 외화 유동성 안정화 대책을 내놨지만 “시장이 안정되지 않을 경우 추가로 외환보유액 활용 등의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고 밝혔다.
한은에 따르면 2월 말 기준 우리나라 외환보유액은 4,091억7,000만달러로 이 가운데 유가증권(3,712억2,000만달러)과 예치금(271억달러) 등은 바로 현금화가 가능하다.
미 연준은 이날 한국 외에도 덴마크, 노르웨이, 스웨덴, 호주, 뉴질랜드, 브라질, 멕시코 중앙은행 및 싱가포르 통화청과도 동시에 스와프계약을 체결한다고 밝혔다. 앞서 15일에는 기존 통화스와프 계약을 맺은 5개 중앙은행과 스와프 금리를 0.25%포인트 내려 달러 대출을 쉽게 하고 유동성 공급에 나선 바 있다.
이는 현재 달러 품귀가 한국만의 현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코로나 사태에 국제유가 급락 등까지 겹치며, 미국 시장에서조차 ‘현금(달러)이 왕이다(Cash is King)’라는 표현이 유행할 정도다. 평소에는 안전자산으로 평가될 금이나 미 국채조차 가격이 하락하고 있다.
미국 내에서는 국제적인 달러화 수요 급증으로 인해 발생하는 역외 금융시장 불안이 자국으로 파급될 수 있다는 가능성 때문에 전문가와 언론들이 스와프 확대를 권고해 왔다.
브래드 세처 미국외교협회(CFR) 선임연구원은 18일 “연준이 달러 부족을 해소하기 위해 한국과 멕시코ㆍ싱가포르ㆍ브라질 등과 통화스와프를 확대하거나 각국 중앙은행들이 보유 중인 미국 국채를 담보로 유동성을 공급하는 등의 방안을 실행해야 한다”고 밝혔다.
국제통화기금(IMF) 역시 16일 국제금융협회의 통계를 인용해 투자자들이 신흥시장에서 약 420억달러가 유출됐다고 지적하며 통화스와프 체결을 촉구한 바 있다.
이날(현지시간 19일) 미국 뉴욕 증시에서 개장 초반 전일 대비 3% 이상 떨어졌던 다우 지수는 연준의 전방위적 통화스와프 확대 조치 소식에 반등하며 오전 11시45분 현재 1.79% 상승을 기록하고 있다.
인현우 기자 inhy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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