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채널을 틀어봤자 온통 재방송뿐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세계적 확산으로 국내는 물론 해외 스포츠들도 죄다 ‘올스톱’ 상태다. 모든 경기가 중단된 ‘스포츠 실종’ 상황에서 선수들의 사기가 크게 떨어진 것만큼이나, 팬들의 허탈감 또한 만만치 않다. 응원하던 팀과 좋아하는 선수를 볼 수 없게 돼, ‘코로나 블루’를 더 심각하게 겪고 있는 팬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토트넘 팬 이정빈씨 “주말이 너무 공허하다”
9년 째 잉글랜드 프로축구 프리미어리그(EPL)의 토트넘 홋스퍼를 응원하고 있는 이정빈(20·고려대 2년)씨는 “경기가 없었던 주말이 너무 공허했다”며 지난 주말을 떠올렸다.
2012~13시즌부터 토트넘을 응원하기 시작했다는 이씨는 토트넘의 열성 팬이다. 지난 2016년부터는 토트넘에 대한 글을 올리는 개인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다. 5년 간 3,400여 개의 글을 올렸을 정도로 토트넘에 대한 애정이 깊다. 처음에는 리그 중단 소식이 반가웠다는 이씨는 “토트넘의 최근 성적이 워낙 좋지 못해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막상 주말에 축구를 보지 못하니 서운하고 아쉬웠다”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경기가 없는 주말이면 다른 스포츠 경기라도 즐겼는데, 코로나19로 웬만한 스포츠 리그가 모두 중단되면서 이마저도 여의치 않게 됐다. 이씨는 “인생의 낙이 사라졌다”며 한숨을 쉬었다. 결국 주말은 지난 시즌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에서 토트넘이 보여줬던 ‘암스테르담의 기적’과 같은 명경기들을 다시 보고, ‘풋볼 매니저’와 ‘피파’ 등 온라인 축구 게임을 하며 허전함을 달래야 했다.
온라인 해외축구 커뮤니티 활동도 하고 있는 이씨는 “리그가 중단되면서 축구 관련 글이 많이 줄었다. 축구 외의 다른 주제들로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침체된 분위기를 전했다.
군입대를 앞둔 이씨는 시즌을 끝까지 함께하기 위해 입대 날짜도 시즌이 끝난 후인 6월 중으로 잡았다. 그러나 유럽 내 코로나19 확산세가 거세지면서 6월 이전에 시즌이 끝나지 못할 가능성이 커졌다. 이씨는 “하루빨리 코로나19가 진정돼서 리그가 재개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우리카드 팬 유은정씨 “비시즌 때보다 더 힘들다”
2012~13시즌부터 ‘우카 사랑 일곱 시즌째’라는 유은정(21ㆍ충청대 3년)씨는 최근 ‘배구 가뭄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 코로나19 확산 우려로 V리그가 ‘올스톱’되면서 남자 배구단 우리카드 선수들을 응원할 수 없게 됐기 때문이다.
‘위비 나래’(우리카드 공식 서포터즈) 1기 회원부터 활동한 유씨는 TV중계 화면에도 자주 잡히는 ‘우카 극성팬’으로도 유명하다. 지난해에는 100여명의 서포터즈를 관리하는 4기 회장으로도 활동했다. 유씨는 “비시즌엔 배구 경기가 아예 없으니 생각을 안 하게 되는데 시즌 중 중단되니 팬 입장에서도 더 힘들고 지루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면서 “이대로 시즌이 끝나 버리는 게 아닐까 걱정”이라고 했다.
‘무관중 경기’를 치렀을 때만 해도 집에서 우리카드 유니폼을 입고 팀 응원가를 틀어 놓은 채 TV중계를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일정이 ‘올 스톱’ 되면서부터는 선수들과 찍은 사진이나 영상들을 돌려보며 리그 재개만을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다. 또 예전 경기 영상이나 ‘KOVO 티비’ 등 선수들의 일상이 담긴 영상을 찾아보고 있지만 갈증이 사라지지 않는다.
예전 같으면 서울 장충체육관 홈경기 관전을 위해 오후 2시쯤 충남 아산 집을 출발해 오후 5시 체육관으로 들어오는 선수들을 일일이 맞이하던 유씨다. 이후 관중석에 선수들의 응원 문구와 플래카드 등을 붙이고 준비하는 일까지 꼼꼼히 챙겼다. 그는 “우리카드가 창단 이후 처음 통합우승에 가장 근접했을 때 하필 이런 일이 발생했다”면서 “선수들의 안전을 고려한 조치라는 데에는 공감하지만, 적어도 역사적인 우승 순간만큼은 현장에서 선수들과 함께 하고 싶다”고 말했다.
창원 LG 팬 장영미씨“일상의 한 부분이 사라졌다”
프로농구 정규리그가 중단되면서 선수는 물론 팬들도 힘든 시기를 겪고 있다.
장영미(41)씨도 그 중 한 명이다. 창원 LG의 20년 열혈팬이라는 장씨는 “이맘땐 농구장에 가는 게 일과였는데 너무 낯선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근황을 전했다. 창원 시민들에게 농구는 특히 각별하다. 프로야구단 NC가 생기기 전까지 1997년 출범한 프로농구는 창원의 유일한 프로스포츠였다. 20대에 농구와 만나 이젠 초등학생 아들까지 데리고 매년 시즌권을 끊어 ‘직관’하는 장씨는 LG 구단에서도 ‘VIP 고객’이자 든든한 서포터스다. 장씨는 “홈 경기가 있는 날이면 아들, 지인들과 일찌감치 서둘러 거의 반나절 이상을 농구장에서 보냈다”면서 “겨울엔 모든 스케줄에서 농구가 1순위였는데 일상의 일부분이 사라져 버린 느낌”이라고 말했다.
LG는 장씨와 같은 팬들을 위해 유튜브 방송을 통해 ‘무관중 극복 프로젝트’로 소통을 이어가기도 했지만 리그가 아예 중단되면서 이마저도 단절됐다. 장씨는 “아들이 공원에서 농구를 하거나 자전거를 타면서 아쉬움을 달랬는데 요즘은 밖에 나가는 것도 조심스러워 방에서 농구공을 가지고 노는 정도”라면서 “과거 경기만 반복해서 볼 수도 없는 노릇이고 빨리 리그가 재개되기만을 기다릴 뿐이다”라고 했다.
장씨는 “무관중 경기를 했을 때 아들이 왜 응원하러 안 가냐고 묻기에 요즘은 사람들 모이는 밀폐된 공간에 가면 안된다고 설명해 주면서도 안타까웠다”면서 “사실 이런 시국에 농구 못 보는 게 대수인가. 정말 어려운 사람들이 많을 텐데 모두가 각자의 자리에서 힘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성환희 기자 hhsung@hankookilbo.com
강주형 기자 cubie@hankookilbo.com
이주현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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