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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차 다른 14개 나라에서 동시 접속…교수·학생 소통은 더 활발해 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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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차 다른 14개 나라에서 동시 접속…교수·학생 소통은 더 활발해 졌다

입력
2020.03.22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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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로나19 속 한국보다 한 달 먼저 온라인 강의 시작한 중국 대학들은 

 95세 최고령 교수도 예외 없어…학생들 “강의실에서보다 부담 없이 질문” 

칭화대 의과대의 영양건강학 수업. 접속하는 국가에 따라 학생들의 현지 시간은 천차만별이다. 출처 칭화대 홈페이지
칭화대 의과대의 영양건강학 수업. 접속하는 국가에 따라 학생들의 현지 시간은 천차만별이다. 출처 칭화대 홈페이지

“출석했습니다” … 잠비아 현지시간 오전 3시 50분

“저 여기 있습니다” … 아프가니스탄 현지시간 오전 6시 20분

지난달 17일 중국 현지 시간 오전 9시 50분. 칭화대 의과대의 영양건강학 첫 수업에서 주지밍 교수가 출석을 부르자 학생들이 돌아가며 대답했다. 이 날 수업에 참여한 교수와 학생들은 전 세계 14개 나라에서 접속했고 시차 때문에 현지 시간도 천차만별이었다. 주 교수는 중국에 있고 16명 학생들은 한국, 에티오피아(아프리카), 아르메니아(유럽), 파키스탄(아시아) 등에 흩어져 있지만 모두 한 화면 안에 모여 있었다.

중국 내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코로나19) 상황이 심각해지자 칭화대는 사실상 방학 동안 비워져 있던 학생 기숙사를 폐쇄했다. 중국 밖에 머물고 있는 학생들에겐 당분간 학교에 돌아오지 않을 것을 당부했고, 특별한 사정이 있을 경우 사전 신고를 하도록 했다. 그 결과 외국 학생들은 각자의 나라에서 실시간 온라인 수업에 접속하게 됐다.

강의 시작 전 오랜 만에 ‘화면에’ 모인 학생들이 서로 각국의 코로나19 상황을 물으며 걱정했고, 주 교수는 “모니터 속에서 서로 안부를 묻는 걸 보니 마음이 따뜻합니다”라며 애틋함을 전했다.

 불가능해 보였던 2주 만에 온라인 강의 익히기… 그러나 해내야 했다 

칭화대 최고령 교수 장리가 방송이 익숙지 않아 후지아종 교수에게 도움을 받는 모습. 웨이보 캡처
칭화대 최고령 교수 장리가 방송이 익숙지 않아 후지아종 교수에게 도움을 받는 모습. 웨이보 캡처

중국의 주요 대학들은 한국 대학에 한 달 앞서 지난달 17일 온라인 강의를 시작했다. 코로나19의 발원지로 알려지며 온 나라가 공황을 겪으면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중국 교육부는 “수업은 멈춰도 가르침과 배움은 멈추지 않는다(停课不停教 停课不停学)”는 방침을 내놓으며 각 대학에 온라인 수업을 지시했다. 이에 칭화대와 베이징대를 시작으로 인민대, 대외경제무역대, 베이징사범대 등이 잇따라 온라인 강의를 열었다.

사상 처음 모든 강의를 온라인으로 실시해야 하는 상황 앞에서 중국 교수진과 학생들은 헤맬 수밖에 없었다. 교육부의 온라인 강의 실시 지침이 내려진 후 개강까지 남은 시간은 단 2주 남짓이었다. 교수들이 학생들과 효과적으로 소통할 수 있을지 방법을 찾고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에는 턱없이 모자란 시간이었다. 줌(zoom), 텅쉰(腾讯) 화상 회의 프로그램과 위커탕(雨课堂) 등 기존 온라인 교육 플랫폼의 사용법을 처음부터 익히는 데만 시간을 꽤 많이 써버렸다.

칭화대의 최고령 교수 장리(95)는 이번 학기 양자역학 수업을 온라인에서 진행하게 되었다. 제자였던 칭화대 물리학과 교수 후지아종(32)의 도움을 받으며 강의를 시작했지만 장 교수는 한동안 적응하지 못했다. 평생 처음 온라인 강의에 도전했다는 그는 “처음에는 몸과 마음이 따라주지 않았고 컴퓨터 쓰는 법을 익히느라 수업이 늦어지기도 했다”고 회상했다. 그러나 어차피 완벽하게 온라인 강의를 하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마음을 비우고 대신 내용을 풍부하게 전달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은 뒤로 지금은 꽤 적응한 상태다. 장 교수는 “학생들과도 점점 합이 잘 맞게 되어 온라인을 통해 활발하게 질문을 주고 받고 대답도 해주게 됐다”며 만족스러워 했다.

칭화대는 온라인 강의를 시작한 이후 설문조사를 통해 지속적으로 학생의 수강 상황을 파악하고 있다. 설문지 내용에는 네트워크가 안정적인지, 수업 내용 전달이 잘 되고 있는지 등이 담겨 있다. 또 학생들의 건의나 바라는 점도 최대한 듣고자 했다.

 교수 남편까지 깜짝 게스트로 등장… 학생들은 환호 

중국 칭화대의 한 교수가 화상 회의 프로그램을 통해 온라인 수업을 진행하는 모습. 인민망
중국 칭화대의 한 교수가 화상 회의 프로그램을 통해 온라인 수업을 진행하는 모습. 인민망

처음 겪는 낯선 환경에서도 학생들과 최대한 소통하려는 교수들의 노력은 계속됐다. 칭화대에서 재무 관리 강의를 진행했던 자오동칭 교수는 댓글을 통해 학생들이 질문하도록 했다. 댓글을 달면 화면 오른쪽에서 나타나 왼쪽으로 흘러가 사라지는 방식인데 댓글이 지나가는 속도가 빨라 교수가 제대로 보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자오 교수는 곧바로 “그 질문 다시 올려주겠니? 빨라서 못 봤단다”라고 되묻고 학생들은 더 활발하게 질문을 올린다. 댓글 외에도 ‘손들기’ 기능을 통해 언제든지 교수에게 질문할 게 있으면 음성으로 대화할 수 있게 했다.

강의실서 이뤄지는 강의는 주로 교수가 혼자 말하고 학생들은 가만히 듣거나 교수가 질문을 해야 입을 떼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온라인 강의는 훨씬 더 소통이 잘 된다는 게 교수, 학생들의 반응이었다.

칭화대 장리 교수는 “평소 강의실 수업에서는 학생들이 듣고 필기하는데 신경 썼지만 온라인 수업에서는 질문도 더 적극적으로 하고 주체적으로 수업을 끌어나가기 시작했다”며 “평소 온라인 생활에 익숙해 있던 학생들이다 보니 수업 분위기도 더 활발해지고 학습 효율이 올라가는 것 같다”고 전했다.

칭화대 재학생 신모(24)씨는 “강의실에서는 선뜻 나서서 이야기할 만한 분위기가 아니었지만 오히려 온라인 상에서 적극적으로 발표하는 친구들이 많이 보인다”라며 “나 역시 편하게 댓글을 달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오프라인 강의에서는 쉽게 경험하지 못했을 일도 있었다. 칭화대 법학과 프랑스인 교수 제인 윌리엄스 (Jane Williams)는 자택이 있는 프랑스에서 수업을 진행하다가 미국 변호사인 남편을 특별 강사로 깜짝 초청했다. 한 시간 가량 미국 법조계 실무자가 들려주는 생생한 현장의 이야기를 접한 학생들은 “영광이다”, “미국 변호사 시험에 관심이 있었는데 도움이 됐다” 등의 좋은 반응이 쏟아졌다.

 마이크 켜진 줄 모르고 친구 흉 보다… 아뿔싸 

중국의 짧은 영상 플랫폼 틱톡(TikTok)의 생방송 기능을 통해 공개 수업을 진행하는 모습. 하단에는 실시간 댓글을 달 수 있다. 출처 바이두 이미지
중국의 짧은 영상 플랫폼 틱톡(TikTok)의 생방송 기능을 통해 공개 수업을 진행하는 모습. 하단에는 실시간 댓글을 달 수 있다. 출처 바이두 이미지

온라인 강의에 익숙하지 않은 일부 학생들 탓에 크고 작은 사고가 일어나기도 했다. 대형 수업을 진행하는 한 교수는 100명 남짓한 학생들이 수업에 집중하고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예고 되지 않은 시간에 퀴즈를 냈다. 수업 태도 또한 성적에 반영이 되기 때문에 학생들은 하나의 퀴즈도 놓치지 않으려 했다. 그런데 교수가 퀴즈를 잇따라 내자 마이크가 켜져 있다는 사실을 몰랐던 한 학생이 “XX, 퀴즈를 또 낸다고?”라고 말했고, 해당 학생의 목소리는 다른 모든 학생과 교수가 들어 버렸다. 그러나 100명의 학생 중 사고 친 주인공을 찾을 방법은 없었다.

전공 수업을 듣던 한 학생은 마이크를 끄고 옆에 있던 친구에게 다른 친구의 흉을 봤다. 그러나 사실은 모든 얘기가 강의를 듣던 동기 전체에게 실시간으로 방송되고 있었다. 당황한 학생들은 급하게 해당 학생에게 연락을 했고, 교수님은 학생 마이크를 끄는 법을 물으며 허둥댔지만 상황은 모든 이야기가 입 밖으로 나온 후에야 끝났다.

 여성 교수에게 “남자 친구 있어요?”위험한 채팅도 

아나운서 출신 칭화대 교수 리우후이닝(刘慧凝). 베이징위성 캡처
아나운서 출신 칭화대 교수 리우후이닝(刘慧凝). 베이징위성 캡처

온라인 강의가 인터넷 개인 방송과 비슷하다 보니 학생들은 기존 인터넷 방송에서 사용하던 댓글 문화를 수업 중 그대로 드러내기도 했다.

“교수님 남자친구 있나요?”, “골키퍼 있다고 공 못 넣나요” 아나운서 출신 리우 교수(31)가 화면에 나타나자 학생들은 채팅창을 도배하기 시작했다. 교수를 상대로 오프라인 수업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이야기가 오고 갔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상황이었지만, 교수는 방송인 출신답게 대수롭지 않게 반응했다. 당시 수업에 참여했던 한 학생은 “젊은 교수님이다 보니 인터넷 문화를 이해하고 있었을 것”이라며 “채팅 창은 몇 분 동안 활발했지만 교수님이 결혼하신 지 5년 됐다는 댓글 한 마디에 상황이 정리됐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온라인 강의는 적응했지만… 논문 작성, 행정 처리는 어쩌나 

온라인 공간을 통해 한국에서 칭화대의 수업을 수강하고 있는 유학생. 칭화대 홈페이지
온라인 공간을 통해 한국에서 칭화대의 수업을 수강하고 있는 유학생. 칭화대 홈페이지

현재 중국 대학들은 코로나19의 진행 상황에 따라 학생들의 복귀 날짜를 정하기로 했다. 한국과 중국의 코로나19 확진자 증가세가 꺾이면서 이른 복귀를 기대하는 목소리도 있지만, 칭화대 국제학생센터는 “특정 국가의 학생이 강의나 학사 일정에서 손해 보는 일은 절대 없을 것”이라는 입장이다. 결국 미국, 유럽, 중동까지 코로나19 비상이 걸리면서 학생들은 온라인 수업이 장기화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칭화대에 다니는 신모(24)씨는 지난해 말 한국에 귀국했다 다시 중국으로 돌아갈 길이 막혔다. “이번 학기에 어려운 전공 수업이 많은데 집에서 혼자 온라인 강의로 공부해야 해서 막막하다”고 호소했다. 졸업 논문을 쓰고 있는 북경대 졸업반 김모(23)씨는 “교수님과 논문에 대해 활발히 소통해야 하는데 어쩔 수 없이 위챗(중국의 채팅앱)에 의지할 수밖에 없다”며 “문자나 전화로 피드백을 받다 보니 논문 작성에 지장이 생길 것 같아 걱정”이라고 전했다. 비슷한 처지의 중국 대학에 다니는 한국 학생들과 스터디를 꾸려 전공 공부와 논문 준비를 서로 돕고 있다.

졸업 예정자들의 걱정 속에 칭화대는 6월로 예정돼 있던 졸업식을 8월로 연기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서류 발급 업무는 온라인 업무로 전환했지만 얼굴을 보고 진행해야 하는 성적 정정 과정은 미뤄놓았다. 또한 학교 측은 학생들에게 학교로 돌아오기 위한 비자 발급을 당분간 자제할 것을 권유하고 있다. 때문에 학생들은 학교에 돌아가 강의실에서 수업을 듣기 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고 있다.

이혜인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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