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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담] “신천지 집단감염 이후 불안지수만큼 분노 폭증... 유념해봐야”

입력
2020.03.12 20:00
2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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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로나19 국민 위험인식’ 조사한 유명순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 

코로나19 국민 위험인식 조사를 한 유명순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가 9일 이충재 수석논설위원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배우한 기자
코로나19 국민 위험인식 조사를 한 유명순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가 9일 이충재 수석논설위원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배우한 기자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하면서 불안과 우울,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국민이 급증하고 있다. ‘사회적 거리 두기’ 확산으로 집에 갇혀 지내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전문가들은 이럴 때일수록 심리 전염을 막기 위한 ‘마음의 방역’이 중요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이런 현상은 서울대 보건대학원 유명순 교수팀이 코로나 사태 이후 두 차례에 걸쳐 시민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심리 변화 조사에서 확인됐다. 조사에서는 청와대의 소통 미숙과 언론의 자극적 보도가 더 큰 위기감을 조성하고 있다는 결과도 나왔다.

-‘심리 방역’ ‘마음 방역’이라는 말이 생소한데 학술적으로 정립된 용어인가.

“‘심리 감염’이란 말을 쓰는 사회심리학자는 있다. 하지만 심리나 마음에 ‘방역’이라는 말을 붙이는 게 학계에서 체계화된 것은 아니다. 2015년 메르스 사태 이후 보건학, 심리학, 정신건강의학 분야를 중심으로 역학적 감염뿐 아니라 정보 감염(인포데믹), 패닉, 혐오 등 부정적 정서의 감염 예방ㆍ차단도 시급하다는 취지에서 사용해왔다. 물론 개인적 차원의 스트레스 관리도 중요하지만 보건학자로서 주로 관심을 갖는 건 사회적, 집단적 심리 상태다.”

-코로나로 인한 국민들의 스트레스 상태를 어떤 방법으로 측정했나.

“메르스 사태 후 수행한 연구조사에서 사용했던 문항을 활용했다. ‘코로나 이후 일상이 얼마나 달라졌는가’를 물었는데 0점을 완전 정지, 100점을 그대로라고 했을 때 2월 18일 31번 환자가 나와 신천지 집단 감염이 촉발되기 전까지는 60점대였던 것이 이후 40점대로 급감했다. 일상 대부분이 흔들리고 있다는 얘기다. 코로나 뉴스를 접할 때 느끼는 감정은 불안 공포 충격 분노 혐오 슬픔인데 유의할 점은 ‘분노’가 치솟았다는 점이다. 1차 조사 때는 6.8%에 불과했는데 신천지 집단 감염이 확산된 2차 조사 때는 세 배가 넘는 21.6%로 높아져 불안(48.8%)에 이어 두 번째로 높아졌다. 특히 분노의 증상이 20대와 대구ㆍ경북 지역, 보수 진영에서 높게 나왔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


-대구ㆍ경북 지역 주민들의 스트레스가 가장 높았는데 어떤 형태로 나타났는가.

“지난 한 달간 울분감을 유발할 수 있는 스트레스 경험이 있느냐는 질문에 대해 ‘정의에 어긋나고 불공정하다’(76.3%)는 응답이 가장 높았다. ‘감정에 상처를 받았다’는 반응(71.2%)도 컸고, ‘스스로를 무기력하고 아무 힘도 없는 사람이라고 느꼈다’는 응답도(65.0%) 많았다. 상당수 시민도 그렇겠지만 대구ㆍ경북 주민들의 스트레스는 사태 종식 후에도 오랫동안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현재 대구시통합심리지원단에 접수된 심리 방역 상담 의뢰가 2만 건이 넘는다. 정부와 보건당국에서 대구 지역사회의 정신심리 건강을 보호하기 위한 노력을 지금부터 시작해야 한다. 자칫 위기 뒤에 더 큰 위기가 올 수 있다.”

-국민들이 불공정하다고 느낀 이유가 무엇 때문이라고 보는가.

“그 이유에 대해 설문에서 구체적으로 물어보지는 않았다. 추측하자면 왜 중국으로 인해 우리가 피해를 봐야 하는가를 염두에 두지 않았을까 싶다. 이 응답은 대구ㆍ경북 지역에서 훨씬 높게 나타났는데, 신천지 교인도 아니고 손 씻기 등 수칙을 지키지 않은 것도 아닌데 피해가 큰 것은 정의에 맞지 않을뿐더러 불공정하다고 생각한다고 해석할 수 있다. 전반적으로 억울하고 분노하는 감정이 부당하다는 생각으로 이어졌을 수도 있다.”


-청와대에 대한 신뢰가 49.5%로 1차 조사(57.6%)때보다 크게 낮아진 것으로 나타났는데 왜 그런가.

“코로나19는 종전의 사스나 메르스와는 다르다. 불확실성이 더 큰 바이러스다. 치명률은 낮지만 전파력이 높은데다 무증상 감염이 나타난 것도 이를 보여준다. 청와대는 이런 점을 감안해 ‘우리는 잘 대처하고 있지만 코로나19는 신종전염병으로 상당히 불확실하다. 조심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계속해서 국민들에게 보냈어야 했는데 그렇지 않았다. 미국 질병예방통제센터(CDC) 지침에는 아웃브레이크(전염병 유행) 상황에서 리더가 가장 명심해야 할 원칙으로 불확실성에 대한 충분한 설명을 제시하고 있다. 언제든지 상황이 급변할 수 있다는 점을 주지시키지 않은 점이 아쉽다.”

-‘마스크 대란’이 정부 신뢰도 하락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 것 같다.

“처음부터 마스크에 대한 메시지가 잘못됐다. 사실 마스크 착용은 다른 사람을 감염시키지 않기 위한 시민으로서의 책무다. 그런데 전적으로 나를 보호하기 위한 수단으로 인식되면서 구입 대란이 벌어졌다. 게다가 마스크가 예방에 도움이 된다는 효능감이 가장 높게 나왔다. 이제 와서 공급이 따라주지 않으니 양보와 우선순위 얘기를 하지만 시민들 마음 속에 깊숙이 자리잡은 인식을 바꾸기는 어렵다. 마스크 구입 행렬로 내몰린 시민들이 ‘왜 나를 이기적인 사람으로 만드느냐’는 생각을 갖게 만든 것이 잘못이다. 늦긴 했지만 마스크 착용의 목적을 분명히 시민들에게 알릴 필요가 있다.”

-이번 사태를 통해 ‘혐오’가 또하나의 키워드가 됐는데 조사에서는 어떻게 나타났나.

“차별과 혐오 표현의 수위가 심각한 수준인 것으로 조사됐다. 중국인이 가장 많았고 바이러스 감염 확진자나 확진자가 발생한 지역, 종교 등에 대한 혐오 표현이 사회 문제로까지 비화되고 있다. 안타까운 것은 포용과 인권을 강조하는 현 정부가 이 문제에 대해 단호한 입장을 취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가짜뉴스 엄단에 들이는 노력만큼 정부가 차별과 혐오 대처에도 민감한 반응을 보여주는 게 바람직하다.”


-언론에 대한 신뢰도 갈수록 떨어지던데 왜 그렇다고 보나.

“메르스 때와 첫 한 달간 보도된 건수를 비교했더니 코로나가 50% 많았다. 그러나 보도 내용은 대부분이 현상을 그대로 전달하는 정도에 그쳤다. 병원 구급차를 쫓아다니는 이른바 ‘엠뷸런스 체이서’(Ambulence Chaser) 역할에 불과했다. 이런 보도 태도가 국민 불안을 키운 측면이 있다. 물론 언론의 환경 감시 기능은 당연한 것이지만 기획자 역할에 충실해야 한다. 공공의료 강화나 감염병 전문병원 필요성 등의 정책적 대안을 제시하는 게 언론의 책무다. 메르스 때 보듯 상황이 진정되면 언론이나 정치권의 관심은 신속히 사라진다. 지금이라도 시스템적 해결 방안과 대책을 촉구하는 보도가 많아져야 한다고 본다.”

-코로나 사태에 대한 시민들의 뉴스 소비량이 늘어난 만큼 언론의 책임도 커진 것은 사실이다.

“조사에서 코로나 정보를 직접 찾아본다는 응답자가 전체의 86%에 달했다. 그런데 단순 상황 전달이 아닌 합리적인 위험 판단에 도움이 되는 정보에 대해서는 정보 이해력이 상당히 떨어지는 걸로 나타났다. 국민들은 불안해서 정보를 계속 찾는데 합리적인 위험 판단을 위한 정보 가치는 크게 낮았다는 얘기다. 가령 확진자 현황은 메달 경쟁하듯이 보여준 반면 완치자 현황이나 치명률 변화 등 중요한 정보는 소홀했다. 마스크 문제도 공포스런 정보는 쏟아졌지만 해외에서는 마스크 착용을 어떻게 권고하는지 같은 정보는 나오지 않았다. 그나마 가짜 뉴스를 가려주는 팩트체크 기능이 활성화된 것이 메르스 때보다 언론이 나아진 점이다.”

-이른바 ‘진영 논리’가 코로나 방역 해결의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지적도 높지 않나.

“설문에서 직접적으로 묻지는 않았으나 간접적으로 확인은 된다. 방역을 둘러싼 정책이나 정보 공개 문제, 인권 보호 등 개별 설문에서 진영 논리가 크게 작용하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예컨대 개인의 정치적 성향에 따라 중국인 전면 입국 금지조치 찬반과 중국 유학생 대우에서 확연히 차이가 났다. 코로나 사태가 단순히 과학이나 방역의 차원이 아님을 보여준다. 국민은 이미 코로나 위기 대응을 본인의 정치적 지향이라는 렌즈를 통해 보고 있는 것이다. 정부도 이런 점을 알고 대응책을 마련해야 한다.”

-보수 진영에서 코로나19를 여전히 ‘우한 코로나’로 부르는 것도 마찬가지 현상 아닌가.

“이번 조사에서 ‘우한 폐렴’과 ‘신종 코로나’라는 두 가지 명칭에 대한 정보 수용자 태도를 알아봤다. 각각의 용어에 대한 이미지를 물었더니 ‘바이러스’ ‘중국’ ‘감염’ 등으로 별 차이가 없었으나 부정적 정서는 ‘우한 폐렴’이 큰 것으로 나타났다. 중국에 대한 연상이 이 용어를 통해 강해졌다. 의료인과 병원 관계자를 상대로 한 조사에서는 부정적 정서를 유발하는 정도가 더 컸다. 바이러스 퇴치가 절체절명인 상황에서 명칭의 단일화는 중요하다. 무조건 하나가 돼야 한다는 게 아니라 합당한 이유가 없는 한 그래야 된다는 거다. 언론이 과도한 공포와 지나친 패닉을 경계하면서도 ‘우한 코로나’ 명칭을 고집하는 것은 모순이다. 뉴스 소비자들에게 불안과 공포를 부추긴다면 쓰지 않는 게 당연하다.”

-코로나 사태가 다소 진정돼도 후유증이나 트라우마가 오래 갈 것 같다. 어떤 대책이 필요한가.

“확진자가 대량 나타난 대구ㆍ경북은 물론이지만 특히 강조하고 싶은 게 의료인들에 대한 치료다. 여기에는 정신심리적 치료와 함께 경제적 보상도 포함된다. 메르스 때 환자 치료에 참여했던 의료기관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보상이 있었지만 완전하지 않았다. 공공병원이든, 민간이든 의료인들의 헌신은 눈부신 것이었다. 신체적 피로도 그렇지만 코호트 격리와 가족과의 단절 등은 선의로만 볼 게 아니다. 정부가 의료인의 보호와 안전에 최선을 다한다는 신호를 보여줘야 한다.”

인터뷰=이충재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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