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5년 미국 고교 농구 대회에서 원 핸드 슛을 쏘고 있는 오스카 로버트슨. ‘농구 역사상 최고의 선수’로 평가받는 NBA의 전설 로버트슨의 출발점이었다. 인디애나 농구 명예의전당 제공](http://newsimg.hankookilbo.com/2020/03/12/202003121327766725_4.jpg)
1955년 3월 19일 미국 인디애나주 버틀러대학 필드하우스 농구 경기장. 인디애나주 고교 농구 대회에서 크리스퍼스 애틱스 고교가 우승을 차지했다. ‘흑인 학교 최초’였다. 1941년 흑인 학교에 대회 참가를 허용한 지 14년만의 일이었다. 공식 참가 자격을 줬다 한들, 비공식적 편파 판정 등은 여전했다. 그 모든 걸 이겨낸 우승이었다.
필립 휴즈의 논픽션 ‘소년은 멈추지 않는다’는 이 애틱스 농구팀 이야기를 다뤘다. 박진감 넘치는 농구 게임 묘사, 당시 시대상황에 대한 풍부한 설명, 여기에 학생 개개인의 삶의 궤적을 세밀하게 훑는다. 그 덕에 길이 28m, 폭 15m의 농구 코트는 금세 인종차별의 축소판이자 격전지가 된다.
![훈련 중 체육관 바닥에 분필로 그림을 그리며 전략을 설명하고 있는 레이 크로 코치. 그 앞 선수들은 왼쪽부터 윌리 포슬리, 해럴드 크렌쇼, 할리 브라이언트, 클리블랜드 하프, 베일리 로버트슨이다. 인디애나 역사학회 제공](http://newsimg.hankookilbo.com/2020/03/12/202003121327766725_5.jpg)
이야기 자체는 열악한 상황에 처한 약체 팀이 기어이 정상에 오른다는 흔한 스포츠 서사를 따라간다. 하지만 애틱스 팀 이야기엔 좀 더 복잡한 시대적 맥락이 들어간다. 1916~1970년까지 좀 더 나은 삶을 찾아 남부에서 북부로 이동한 아프리카계 미국인은 약 600만명. 인디애나폴리스는 그런 흑인이 모여든 도시였으나, 상황은 만만치 않았다. 인디애나폴리스는 북부 도시 중에서도 백인우월주의집단 KKK 활동이 가장 활발했던 곳. 1927년 흑인 고교 크리스퍼스 애틱스 설립은 그 때문이었다.
차별은 의외의 효과를 낳았다. 분리정책 덕에 뛰어난 흑인 학생들은 애틱스로 갔다. 백인 학교가 안 받아주니 뛰어난 흑인 교사도 애틱스에 모였다. 아이들에게 새로운 땅에서 새로운 기회를 열어주려는 열성적인 부모까지 더해졌으니 애틱스는 그야말로 최고의 잠재력을 지닌 학교가 됐다. 그 잠재력이 애틱스 팀을 우승으로 밀어올렸다. 애틱스 팀의 우승은 어쩌다 한번 벌어진 일이 아니었다.
![](http://newsimg.hankookilbo.com/2020/03/12/202003121327766725_6.jpg)
소년은 멈추지 않는다
필립 휴즈 지음ㆍ김충선 옮김ㆍ류은숙 해제
돌베개 발행ㆍ336쪽ㆍ1만4,000원
그러고 보니 1955년 흑인 농구팀 우승 기적을 만든 건 고등학생들이었듯, 그 이전 1951년에는 백인 학교에 비해 열악한 흑인 교육 환경을 고발하기 위해 자체 휴교 운동을 벌인 이는 16살 흑인 소녀 바버라 존스였다. 백인에게 자리를 양보하라는 차장의 지시를 거부하며 버스 내 흑백 분리법에 항의한 사람 또한 15살 클로뎃 콜빈이었다.
흑인 인권운동가 마틴 루서 킹은 흑인 민권운동사를 되돌아보며 “공포의 장막이 걷힌 것은 이 나라의 흑인 청소년들 덕분이다”고 말했다. 괜한 말이 아니었다.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건 젊은이들이라는 것, 이 책은 그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준다.
한소범 기자 beo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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