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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출 ‘0’ 자영업자, 새벽배송 알바 내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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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출 ‘0’ 자영업자, 새벽배송 알바 내몰렸다

입력
2020.03.09 04:30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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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로나 불황에 영세업 붕괴 위기] 

 푸드트럭 운영하는 30대 청년, 사업 4년 만에 처음…영업 중단 

 정부 대책은 영세업 살리기 역부족… 알바 줄이면서 저소득층에 직격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계속되고 있는 6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소재 식당가가 한창 사람으로 붐빌 저녁 퇴근시간임에도 불구하고 한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한호 기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계속되고 있는 6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소재 식당가가 한창 사람으로 붐빌 저녁 퇴근시간임에도 불구하고 한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한호 기자

경기 성남에서 ‘푸드트럭’으로 스테이크를 팔던 윤신호(가명ㆍ34)씨는 이달 초부터 영업을 잠정 중단했다. 설 연휴 전후로 줄어들기 시작한 매출이 급기야 지난달 말 ‘제로’(0)를 찍은 뒤로 더 이상 버틸 재간이 없기 때문이다. 사업 4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각 지역 행사도 모조리 취소돼 당분간 푸드트럭을 몰고 갈 데도 없어진 윤씨는 5일 전부터 온라인 쇼핑몰 ‘쿠팡’ 물류창고에서 ‘새벽 택배 단기 알바’를 시작했다. 하루 40여개를 배송하고 버는 5만원 남짓이 유일한 생계비. 그는 “회사원은 월급이라도 받지만 자영업자는 수입이 끊기면 그날부터 저축한 돈을 헐어 생활을 해야 한다”며 “이 사태가 언제 끝날지 모른다는 게 제일 불안하다”고 토로했다.

신종 코로나 사태로 바닥경기가 얼어붙으면서 영세 자영업자들이 비명을 지르고 있다. 가뜩이나 불황인데 코로나까지 덮치자 손님들 발길이 끊기면서 매출이 한없이 곤두박질치면서다. 온라인 공간엔 “더는 버틸 수 없어 폐업한다”는 자영업자 한탄이 쏟아진다. 위기에 몰린 자영업자들이 일손을 줄이면서 아르바이트생과 같은 일용직 노동자들도 일자리를 잃는 악순환이 벌어지고 있다. 코로나 쇼크로 우리 경제의 가장 약한 고리부터 직격탄을 맞고 있는 셈이다.

6일 서울 신촌의 한 음식점이 저녁 시간인데도 손님이 없어 텅 비어 있다. 이한호 기자
6일 서울 신촌의 한 음식점이 저녁 시간인데도 손님이 없어 텅 비어 있다. 이한호 기자

◇폐업 고민하다 배달 알바 뛰는 식당 사장님

코로나 사태 이후 번화가마다 유동인구가 줄면서 지역상권은 사실상 초토화됐다. 지난 5일 찾아가 서울 중구 무교동의 한 고깃집. 손님이 한창 몰릴 저녁 시간인데도 40여석의 홀엔 달랑 두 테이블에만 손님이 앉아 있었다. 무교동 일대는 여행사와 관공서 등이 밀집해 이 지역 식당가는 불황에도 별 타격을 받지 않았다. 하지만 코로나 사태 이후 여행사들이 줄줄이 문을 닫고, 인근 회사 대부분 재택근무로 시스템을 바꾸면서 상황이 돌변했다.

김씨 식당도 손님이 70% 가까이 줄었고 하루 매출은 300만원에서 100만원 아래로 떨어졌다. 임대료 등 2,500만원인 한달 고정비를 감안하면 직원 월급 주기도 빠듯해진다. 김씨는 “인건비라도 줄이려고 직원 5명 중 2명은 내보내고 이마저도 종일 근무에서 반반 근무로 바꿨다”며 “우리는 그나마 버티는데 최근 이 동네서도 몇 곳이 문을 닫았다”고 한숨을 쉬었다.

6일 오후 저녁시간 서울 서대문구의 식당 주인이 매장에서 하염없이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이한호 기자
6일 오후 저녁시간 서울 서대문구의 식당 주인이 매장에서 하염없이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이한호 기자

식당 창업 정보를 공유하는 ‘온라인 커뮤니티’엔 식당 주인들의 비명이 줄을 잇고 있다. 고깃집 창업을 준비하는 ‘고창모’ 카페엔 지난달 말부터 최근까지 ‘코로나로 폐업을 했다거나 폐업을 준비 중인데 어떻게 해야 하느냐’는 글이 10여건 올라왔다. 폐업을 고민 중이라는 한 식당 주인은 “바로 식당 문을 닫을 수 없어 직원 수를 4명에서 2명으로 줄이고, 저녁엔 직접 배달 알바를 뛰고 있다”며 ‘운행수입’으로 7만7,000원이 찍힌 ‘인증사진’을 올렸다.

다른 영세업자들도 처지가 절박하긴 마찬가지다. 거리마다 인적이 끊기면서 택시기사들도 직격탄을 맞았다. 6일 저녁 서울 강남역 근처에서 만난 택시기사 박모(61)씨는 “30년 넘게 택시를 몰았지만 요즘 같은 불황은 처음”이라고 불만을 쏟아냈다. 택시에 탄 30분 동안 ‘택시 콜’은 한 번도 울리지 않았다. 그는 “하루 18만원 사납금을 채우면 매달 190만원 월급을 받는데 요즘은 코로나로 아예 손님이 줄어 하루 10시간 넘게 일해도 10만원을 못 벌어 나머지는 쌈짓돈으로 채운다”며 “지난달 받은 월급에서 직접 채워 넣은 사납금 등을 제하고 나니 실제로 번 돈이 100만원에 불과했다”고 했다.

서울 영등포구서 부동산 중개업소를 운영하는 최모(38)씨는 지난달 24일부터 아예 일을 쉬고 있다. 그는 “코로나 감염 우려 때문에 집을 내놓은 주인들이 생면부지인 이들에게 집 보여주는 걸 꺼리고, 보여줘도 물건 만지지 말라고 신신당부하는 분위기”라고 했다. 실제 코로나 여파 때문인지 지난달 서울 아파트 거래량은 4,100여건으로 1월(6,067건)보다 30% 가까이 줄었다. 이 여파로 부동산 중개업자나 이사업체, 청소업체들도 줄줄이 일감이 줄었다고 호소한다.

6일 오후 저녁시간 서울 서대문구 인근에 손님을 기다리는 택시들이 줄지어 있다. 이한호 기자
6일 오후 저녁시간 서울 서대문구 인근에 손님을 기다리는 택시들이 줄지어 있다. 이한호 기자

◇정부 지원받는데 두 달 “각자 도생하는 수밖에”

최근 코로나 사태로 자영업자들이 위기에 내몰리면서 정부도 긴급 지원에 나섰다. 가장 대표적인 게 유동성 위기에 몰린 자영업자를 돕기 위한 저리 대출 지원이다. 코로나 사태로 매출이 1년 전보다 10% 줄어든 사실을 입증하면 신용보증재단의 보증을 받아 1.5~2% 긴급대출을 받을 수 있다.

문제는 정부 지원이 신속하지 않다는 데 있다. 영세업자의 지원 절차를 확인하기 위해 찾아간 서울 신용보증재단에서는 “상담 수요가 몰려 지점에서 상담을 받으려면 한 달 가까이 기다려야 한다”고 했다. 재단에서는 상담 수요를 분산시키기 위해 시중은행에 상담 업무 등을 위탁하고 있는데, 은행에서도 상담을 받으려면 2~3일씩 기다려야 한다. 더구나 보증심사 인원도 부족해 실제 대출 받으려면 대출 신청시점부터 한 달 반 정도를 기다려야 한다. 결국, 당장 은행 상담을 받고 대출을 신청해도 실제 대출금은 빨라야 4월 말 또는 5월 초에 나온다는 얘기다. 이마저도 한도가 거의 소진된 상태다. 재단 관계자는 “신청자가 이미 넘쳐 늦어도 이달 중순엔 1,000억원 한도가 끝난다”면서 “장담은 못하겠지만 지점 상담을 기다리지 말고 무조건 은행으로 가라”고 했다.


이렇다 보니 영세업자들에게 정부의 지원 대책이 피부에 와 닿을 리 없다. 당장 내줘야 할 직원 월급과 임대료는 빚으로 감당할 수밖에 없다. 서울 서대문의 한 식당 주인은 “차라리 최저임금을 코로나 사태가 진정될 때까지 만이라도 지난해 기준으로 돌려주는 게 더 도움이 될 것 같다”고 했다.

같은 영세업자여도 정부 지원을 받지 못하는 경우엔 지금의 사태가 더 가혹할 수밖에 없다. 사실상 각자도생이다. 지난 8일 부산 북구 덕천동의 지하쇼핑몰. 유명 브랜드 옷집, 식당가가 밀집해 이 지역 최고 번화가지만 요즘은 지나다니는 손님을 찾기조차 쉽지 않다. 타로 부스를 차리고 장사를 하는 김모(52)씨는 “하루 수입이 2만원 남짓으로 떨어졌다” 면서 “요즘은 정말 딱 죽고 싶은 심정”이라고 했다. 대학 개강을 앞둔 3월은 최고 성수기지만 코로나 사태가 터지면서 요즘은 10시간 동안 앉아 있어도 한 팀 받기도 어렵다고 했다. 그는 “여기서 10년 넘게 손님을 받았지만 지금 같은 불황은 처음”이라며 “고용보험 이런 것도 안 들어서 정부서 지원되는 돈은 한 푼도 기대할 수 없지만, 그래도 생계를 유지하려면 나오지 않을 도리도 없다”고 했다.

경남 김해서 피아노 학원을 하고 있는 심모(33)씨는 이달 초 임대료와 생활비 등으로 쓰려고 은행에서 500만원 신용대출을 받았다. 코로나 사태 이후 원생 수가 70%나 줄었든 탓이다. 영세학원이라 애초 파트타임으로 강사들을 써 온 터라 정부가 지원하는 고용유지금을 받을 수 없다. 심씨는 “다른 피아노 학원 원장들도 휴원하면서 환불이 빗발치는 통에 대출 받아 연명하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8일 오후 부산 북구 덕천동의 한 지하쇼핑몰이 사람이 없어 텅 비어 있다. 사진=독자 제공
8일 오후 부산 북구 덕천동의 한 지하쇼핑몰이 사람이 없어 텅 비어 있다. 사진=독자 제공

 ◇영세 자영업 그늘 속에서 더 막막한 일용직 노동자 

일용직 노동자들은 상황이 더 절박하다. 자영업자들이 일손부터 줄이면서 일용직 일자리는 빠르게 사라지고 있지만 정작 정부 대책에선 소외돼 있기 때문이다. 초밥 프렌차이즈 지점에서 매니저로 일하는 김모(33)씨는 뜻하지 않게 2주 무급휴가를 받았다. 김씨는 “요즘 나 말고도 식당 일 하는 친구 여러 명이 무급 휴가를 받았다”면서 “말이 좋아 무급휴가지 기간이 얼마나 길어질지 몰라 지금 다른 일도 알아보고 있다”고 했다. 세종시의 한 자영업자는 “비싼 임대료를 감당하지 못해 문 닫는 가게들이 속출할 판인데, 고용유지금 받는다고 직원들을 계속 데리고 있을 수가 없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영세업자와 일용직 노동자들에 대한 정부 대책이 안이하다고 지적한다. 정부가 내놓은 신용카드 소득공제 확대, 자동차 개별소비세 인하 등은 상대적으로 여유 있는 이들의 지갑을 여는 유인책이지 당장 위기에 몰린 영세업자들을 살리기엔 역부족이기 때문이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최저임금 인상으로 한차례 충격파를 받은데다 코로사 사태까지 덮치면서 영세업자들은 붕괴 직전의 상황에 이른 곳이 적잖다”며 “정부 지원을 못 받고 2금융권을 전전하는 이들이 연쇄도산의 방아쇠를 당기기 전에 생계자금 직접 지원 등을 적극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정현 기자 virtu@hankookilbo.com

김동욱 기자 kdw1280@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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