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모래와 작렬하는 태양… 380m 모래사막 정상서 단숨에 뛰어내리는 전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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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모래와 작렬하는 태양… 380m 모래사막 정상서 단숨에 뛰어내리는 전율

입력
2020.02.28 16:30
수정
2020.02.28 1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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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준호의 실크로드 천일야화] <57> 나미비아 간판 모래언덕 ‘듄45’와 ‘빅대디’

독일 여행객 식민지 향수로 압도적…

여행객들이 나미비아 사막의 '듄45'를 오르고 있다. 이곳은 국립공원 입구에서 45㎞ 떨어져 있어서 이런 이름이 붙었다.

아프리카 남서부 대서양 연안의 나미비아는 사막으로 각인된다. 황량하다는 말이다. 제국주의 식민지 경쟁 대열에서 뒤늦게 뛰어든 독일이 나미비아를 삼켰을 때도 영국과 프랑스 등 기존 식민지 열강들은 쓸모 없는 땅이라며 ‘견제 잽’ 조차 날리지 않았다.

옛날 식민시대의 향수를 느껴보려는 듯 나미비아를 찾는 외국인 중에는 독일인이 압도적이었다. 짐바브웨 빅토리아폭포 공항에서 1시간20분 연착한 나미비아 수도 빈트후크행 50인승 비행기에서도 통로를 사이에 두고 독일인 부부와 나란히 앉았다. 통로를 사이에 두고 한 줄에 3명 앉는 이 운송수단은 말이 비행기지 시골버스보다 불편했다. 그들도 사막으로 간다고 했다.

나미비아 수도 빈트후크에 독립기념관이 우뚝 서 있다.

수도 빈트후크 공항에서 키가 190㎝가 넘는 흑인 가이드 존 가브리엘이 흰 치아를 드러내며 활짝 웃고 있었다. 도심 아바니호텔도 독일 냄새가 물씬 풍겼다. 독일 쉰들러사 엘리베이터였다. 로비층에 3대의 엘리베이터가 있는데 호출 버튼이 없어 당황했다. 보통 외국 호텔에서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방 카드를 인식시키면 목적지 층을 누를 수 있는 구조였지만 이 엘리베이터는 아예 첫 단추가 없었다.

방식은 이랬다. 로비에 있는 메인화면에 희망 층수를 누르면 A, B, C 알파벳이 뜬다. 그러면 ABC로 분류된 엘리베이트를 타야 한다. 문이 열렸다고 다른 엘리베이터 타면 낭패다. 엘리베이터 안에는 층수를 누르는 단추도 없었다. 잠시 갇히는 기분이 들었다. 엘리베이터는 자동으로 객실이 있는 층에 섰다.

다음날 아침 미니버스는 빈트후크 독립박물관과 기차역 등을 둘러본 후 대서양 쪽 사막으로 달렸다. 사막의 오아시스로 불리는 솔리테어에서 한국인이 운영하는 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다. 한국풍도 아니었고, 주인장은 출타 중이었지만 한국사람의 개척정신이 느껴졌다.

나미비아 현지 종업원들이 국립공원 입구 숙소에서 여행객의 짐을 방으로 옮기고 있다.

오후 4시30분 드디어 나미비아 국립공원 정문 바로 옆 로지에 여장을 풀고 말로만 듣던 ‘듄45’로 출발했다. 도로 양쪽은 모두 모래로 된 산이었다. 한참을 달려 황금빛보다 좀 더 붉은 모래언덕에 도착했다. 이미 차량 10여대가 줄지어 서있었다.

대서양에서 바람이 불어왔다. 모래는 끊임없이 언덕을 날았다. 해가 비치는 대서양쪽 언덕 사면은 비교적 완만했지만 그늘진 반대쪽은 급경사였다. 능선에서 그늘쪽으로 발을 잘못 디디면 붉은 모래 속에 파묻힐 것만 같았다.

나미비아 가이드 존 가브리엘이 듄 45를 배경으로 힘껏 뛰어오르고 있다.

여행객들이 능선을 따라 280m 높이의 듄45 정상으로 오르고 있었다. 시간을 확인했다. 일몰시간이 지나면 국립공원 문이 닫히기 때문이다. 듄45에서는 일몰을 보지 못한다는 말이다. 하지만 ‘위에는 정책, 아래에는 대책’(上有政策, 下有對策·윗선에서 정책을 만들면 아래선 대책을 세운다)이란 중국말처럼 유능한 가이드 존이 비장하게 말했다. 저녁 7시쯤 듄45 능선에서 일몰을 보고 곧바로 내려오면 국립공원 문은 자신이 돌파하겠다는 것이었다.

나미비아 국립공원 입구 숙소 위로 별이 쏟아지고 있다.

카메라 삼각대까지 들고 모래언덕을 오르려니 저질 체력에 숨이 턱까지 차올랐다. 바람에 날리는 모래는 영화 ‘페르시아의 왕자, 시간의 모래’를 연상시켰다. 단도손잡이에 넣어 단추를 누르면 시간을 되돌리는 모래가 눈 앞에서 바람에 부서지고 있었다.

장비 핑계를 대면서 사진이 잘 나올만한 능선 중간에 터를 잡았다. 정상까지는 엄두가 나지 않았다. 이런 핑계도 떠올랐다. 듄45의 일몰을 찍으려면 다른 언덕에 올라서 석양과 듄45를 같이 피사체로 잡아야 제대로라는 것이다.

짚차들이 나미비아 국립공원을 달리고 있다.

해 떨어지는 모래언덕은 비현실적이었다. 붉은 모래에 붉은 태양, 그 뒤로 어둠이 내려왔다. 그 언덕은 밤에도 내내 모래를 이리저리 옮기며 얼굴을 바꿀 것이다. 그 곳에서 출입구까지 45㎞, 그래서 듄45로 불리는 모래언덕을 빠져나오니 로지 야외에 저녁식사가 기다리고 있었다. 6가지 정도 야생동물 고기가 차려져 있었다. 얼룩말은 질기고, 의외로 물소 고기가 부드러웠다. 나미비아 대표 동물인 오릭스는 쳐다보지도 않았다.

밤 사이 남반구 별을 찍어보겠다고 어슬렁거리다 다음날 아침 일찍 또 다른 모래언덕을 찾아 나섰다. 국립공원 입구에서 60㎞ 지점의 데드블레이도 비현실적이기는 마찬가지였다.

한 여행객이 나미비아 국립공원의 데드블레이에서 700만년 전 죽은 나무를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700만년 전 강물이 흐르다 언덕에 가로막혀 형성된 데드블레이에는 당시 죽은 나무들이 지리산 고사목처럼 듬성듬성 서있다. 벤허 마차경기에 나오는 경기장의 몇 배는 될 것 같은 이곳은 외계행성의 일부분이라해도 그럴 듯 했다.

존은 이골이 난 표정으로 뒤에 쳐졌고, 여행객들은 혹성탈출 영화라도 찍듯 카메라를 들이대고 있었다.

이곳에는 가장 높은 모래언덕 ‘빅 대디’가 있었다. 380m다. 능선을 따라 오르는 사람들의 행렬이 보였다. 개미처럼 작았다. 마음의 각오를 해야했다. 듄45는 절반을 오르는데 그쳤지만 빅 대디 정상에는 올라야겠다는 촌놈의 오기가 발동했다.

여행객들이 나미비아 국립공원 모래사막에서 가장 높은 빅대디 정상 380m 지점에서 한 달음에 뛰어내려갈 준비를 하고 있다.
한 여행객이 나미비아 모래언덕 빅대디에서 뛰어 내려가고 있다.

완만한 경사 코스를 뒤로하고 급경사로 올랐다. 모래에 빠진 발에 힘을 주는 일이 장난이 아니었다. 이 사막에도 소금쟁이 같은 벌레가 기어다니면서 모래에 발자국을 남겼다. 앞 사람의 발자국이 사라지기 전에 디뎠다. 요령이 생긴 것이다.

중간쯤 올라갔는데도 땀이 비오듯 흘렀다. 1시간은 족히 지나서야 정상을 밟은 인파들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능선 끝지점에 새로 길을 내고 털썩 앉았다. 데드블레이 비슷한 형태의 지형이 곳곳에 펼쳐졌다.

여행객들이 나미비아 국립공원 모래언덕 중 가장 높은 빅대디를 오르고 있다. 점 처럼 보인다.

잠시 아무 생각없이 태양과 바람을 맘껏 즐겼다. 하산 루트는 고민할 필요도 없이 최단코스였다. 뛰든지 뒹굴든지 내려갈 일이다. 내려가는데는 5분도 걸리지 않았다. 발은 푹푹 빠져도 전속력으로 달렸다. 똑바로도 달리고 지그재그로도 틀었다. 빅 대디를 오르는 여행객들의 부러운 시선이 느껴진다.

온 몸이 모래다. 신발을 털어내도 소용없었다. 바지 주머니에도 모래가 한가득이었다. 모래를 털어내다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미비아의 모래를 한국으로 밀반입하면 어떨까. 바지를 그대로 갖고 가면 될 일이었다.

글ㆍ사진 전준호 기자 jhju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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