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27일부터 우체국, 농협 등 공적 판매처를 통해 일반 소비자들이 마스크를 구매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발표했지만 현장에선 마스크를 살 수 없었다.
이의경 식품의약품안전처장은 26일 오전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코로나19 대응책 브리핑에서 ‘마스크 및 손소독제 긴급 수급 조정조치’가 이날 0시부터 시행됐다고 발표했다. 이 처장은 “실제 소비자들에게 전달되는 것은 내일(27일) 목요일부터가 될 것”이라며 “일반 소비자 구매를 위해 우체국, 농협 및 약국 등을 통하여 매일매일 350만장을 공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정작 27일 공적 판매처에 공급된 마스크는 없었다. 마스크 물량이 사전에 확보되지 않았는데도 정부는 ‘구매가 가능할 것’이라고 속단했기 때문이다.
이번 조치의 내용을 보면 정부는 계약업체를 지정해줄 뿐, 농협·우정사업본부·약국 등이 마스크 생산 및 도매업체와 직접 계약을 체결한 후 제품을 공급받도록 되어 있다. 26일 긴급조치가 시행됐다 하더라도 실제 계약을 체결하고 마스크를 유통하는 데 적지 않은 시간이 소요될 것은 뻔했다.
현장 실태를 파악하지 못한 정부의 공식 발표 때문에 소비자와 현장 근로자들은 불편을 겪어야 했다. 공적 판매처로 지정된 농협몰의 경우 이날 오전 마스크를 구매하려는 접속자가 몰리면서 대기 시간이 50분을 넘기기도 했다. 접속이 된 이들도 마스크 확보가 안 됐다는 안내문을 보고 허탈해 했다. 농협 관계자는 “정부에서 (조기 판매 개시를) 밀어붙였지만 애초부터 무리한 요구였다”고 토로했다. 이어 “업체 목록을 주고 알아서 연락해 계약하라고 하는데, 빨라야 다음주 중이나 공급될 것 같다”고 덧붙였다.
일선 약국도 마스크 공급을 받지 못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서울 시내 일부 약국은 공적 판매 물량이 아직 입고되지 않았다는 구체적인 내용을 안내문에 적어 붙여놓기도 했다. 서울 동작구에서 약국을 운영하는 약사는 “어제 오후부터 오늘 오전까지 40명 정도의 손님들이 마스크를 사러 왔다가 돌아갔다”고 전했다. 마스크는커녕 손소독제도 공급이 끊겨 궁여지책으로 직접 만든 소독제를 손님들에게 무료로 나눠주는 약국도 있었다.
혼란을 잠재우기 위해 정부는 27일 추가 브리핑을 통해 내일(28일)부터 마스크 공적 판매가 이뤄질 것이라고 정정했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날 정부서울청사에서 “내일부터 우선 120만장이 전국 약국을 통해 직접 판매되며 이 중 23만장은 대구 경북지역에 우선적으로 공급된다”고 밝혔다. 또 “서울 경기를 제외한 약 1,900개의 농협 하나로마트에서도 1일 55만장, 점포당 약 300개가 공급될 예정”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미 한번 신뢰를 잃은 정부의 발표에 대해 의구심을 지울 수 없다. 당장 홍 부총리의 브리핑에 앞서 대한약사회는 “정부는 이번 수급조치가 26일부터 시행되어 빠르면 27일 오후부터 마스크를 구입할 수 있다고 발표하였습니다만, 132개의 생산업체와의 공급계약, 제품검수, 납품, 배송 절차 및 대구·경북지역 우선 공급 등 현재 상황을 고려할 때, 약국 공급은 3월 초부터 가능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라는 문자 메시지를 회원들에게 보냈다. 성난 민심을 진화하기에만 급급해 현실을 외면한 결과는 더 큰 혼란뿐이다.
이한호 기자 ha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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