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꿈치로 문 밀고 라이터로 버튼 누르고
도시락 싸와 ‘혼밥’에 손 소독제 직접 제조
서울 종로구 광화문에서 직장생활을 하는 김정은(36)씨는 며칠 전부터 도시락을 싸 들고 출근한다. 미처 도시락을 준비 못한 동료들은 근처 매장에서 주문해 구내식당에서 혼자 먹는다. 회사에서 ‘가급적 혼자 식사하라’는 긴급지침을 내린 뒤의 변화다. 김씨는 “구내식당에서 도시락을 먹을 때도 자리를 한 칸씩 띄워 최대한 마주보지 않게 앉는다”고 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자가 급속히 증가하며 소소한 일상까지 송두리째 바뀌고 있다. ‘혼밥’ 하는 직장인이 늘고 저녁 회식은 아예 자취를 감췄다. 악수 대신 목례를 하거나 사람이 많은 대중교통 이용은 최대한 피한다. 감염 공포에 사람 손이 닿는 곳을 극도로 꺼리면서 미닫이 문을 팔꿈치로 밀거나 라이터 등으로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는 모습이 낯설지 않게 됐다.
신종 코로나 사태는 직장가의 점심 풍경을 완전히 변화시켰다. ‘단체식사 자제령’ 같은 회사 지침과 관계 없이 감염 우려에 같이 밥 먹고 차 마시는 걸 꺼리는 자발적 혼밥족이 부쩍 늘었다. 서울 중구 을지로의 한 회사에 다니는 박모(36)씨는 “일주일에 두 번은 팀원끼리 점심을 함께 먹었는데 요즘은 도시락을 단체 주문해 각자 자리에서 먹는다”며 “저녁 회식은 무기한 연기됐다”고 말했다.
사정이 이러니 음식점을 운영하는 자영업자들은 울상이다. 27일 점심시간 둘러본 서울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 주변 식당들은 대부분 개점휴업 상태였다. A 한식당은 점심시간이 끝날 때까지 딱 한 테이블에만 손님이 앉았다. 이 식당 주인은 “정부청사와 회사들이 몰린 중심가라 경기 불황이어도 단체예약으로 항상 꽉 찼는데 요새는 예약이 하루에 고작 한두 건”이라고 말했다.
신종 코로나 우려로 인사법도 달라졌다. 악수가 필요한 자리에선 주먹을 마주 대거나 마스크를 쓴 상태에선 목례나 눈인사로 대신하는 식이다. 불특정 다수의 손이 스치는 곳을 최대한 피하려는 노력도 곳곳에서 목격된다. 엘리베이터 버튼을 라이터나 휴대폰 등으로 누르거나 손가락을 구부려 관절을 사용하는 이들도 많다. 직장인 김모(44)씨는 “버스나 지하철을 타면 아무리 흔들려도 손잡이를 안 잡고, 버스에서 하차 벨은 라이터로만 누른다”고 말했다.
품귀 현상을 빚은 마스크나 손 소독제 제조법이 인터넷에서 공유되며 직접 제작에 뛰어든 이들도 적지 않다. 부산에 사는 김보경(33)씨는 “손 소독제를 직접 제조하면 비용이 저렴해 일주일 분량을 만들어 온 가족이 나눠 쓴다”고 말했다.
확진자가 대거 늘어난 지난주부터는 대중교통 이용량도 확 줄었다. 이달 17~23일 서울지하철 1~8호선 승객 수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9% 감소했고 누적 확진자 수가 600명을 돌파한 23일엔 승객 수가 반 토막이 났다. 직장인 황모(35)씨는 “대중교통을 피하기 위해 확진자 아닌 동료들끼리 카풀을 하거나 차량 호출서비스 ‘타다’를 이용한다”고 말했다.
외출은 자제하고 이른바 ‘집콕’하는 이들이 늘면서 여가 방식의 변화도 두드러지고 있다. 극장은 파리가 날리고 각종 문화공연을 찾는 발길이 대폭 감소한 반면, 넷플릭스와 유튜브는 상한가다. 직장인 황모(36)씨는 “헬스장이나 사우나도 꺼림직하니 집에서 홈트레이닝을 한 뒤 넷플릭스를 보거나 온라인 게임을 하는 게 유일한 낙”이라고 했다.
소소한 일상이 급격히 재편된 영향에 주식시장에서 게임주와 동영상 관련 주식은 강세를 보이고 있다. 미국 회사 넷플릭스 주가는 지난 18일 주당 387달러를 기록하며 52주 최고가를 경신했다. 국내 게임사 엔씨소프트의 전날 주가도 지난해 말보다 18%가량 뛰었다.
김영훈 기자 huni@hankookilbo.com
김동욱 기자 kdw1280@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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