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이 금융통화위원회가 27일 시장의 예상을 깨고 기준금리를 연 1.25%로 동결했다. 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이 예상보다 빠르게 확산되면서 실물 경제 충격이 현실화되고 있어 금리 인하 전망에 무게가 실렸으나 예상 밖 결정을 내린 셈이다. 지난해 10월 인하 결정으로 이미 기준금리가 사상 최저치로 접어든 데 데다 부동산 시장에 미칠 영향 등 추가 인하에 대한 부담이 만만치 않은 만큼 코로나19가 미칠 영향을 지켜보며 신중한 선택을 하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한은은 이날 이주열 총재 주재로 금통위를 열고 기준금리를 기존의 연 1.25%로 동결을 결정했다. 지난해 10월 인하 이후 3회 연속으로 동결을 이어갔다. 이에 따라 기준금리는 4월 9일 예정된 다음 통화정책방향 결정회의까지 유지된다.
금통위는 이날 발표한 통화정책방향 결정문에서 “완만한 성장세와 낮은 물가상승 압력을 고려해 통화정책의 완화 기조를 유지할 것”이라면서도 “성장과 물가목표, 금융안정에 유의해 통화정책을 운용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최근 시장에서는 코로나19 대규모 유행의 여파로 국내 공급과 수요 양 측면에서 충격이 가시화하고, 확산세가 꺾이지 않고 있는 점을 고려해 한은이 전격 금리 인하에 나설 것이란 전망이 높아졌다. 하지만 한은은 여전히 신중한 태도를 유지했다. 앞서 이주열 총재는 14일 코로나19 대응책을 논의한 거시경제금융회의를 마치고 “통화정책은 여러 변수를 고려해 신중히 결정해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금리 인하 여력 부족, 금융불균형 등 경계론 여전
한은이 금리 동결을 결정한 배경에는 금리 인하 여력이 크지 않다는 점이 작용했을 것으로 보인다. 시장은 우리나라 기준금리가 경기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실효 하한을 0.5% 내지 1%로 보고 있는데 이를 고려하면 금리인하 여력은 2~3회 정도에 그친다. 지난달 금통위 의사록에 따르면 한은 집행부는 금리 인하가 경제 성장과 물가에 미치는 영향력이 예전보다 약화한 것으로 파악했다.
부동산 시장 과열로 유발된 금융 불균형에 대한 우려도 여전히 중대한 고려 대상이다. 한은은 기준금리 인하가 주택가격 상승과 가계부채 증가의 한 요인으로 작용했다고 인식하고 있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1,600조원을 돌파한 가계부채의 증가세 등 금융안정 상황의 변화도 살피겠다고 덧붙였다.
단 코로나19가 국내외 경제에 미치는 충격이 예상되는 만큼 4월 9일로 예정된 다음 금통위에서는 금리 인하 결정에 유력시된다. 한은은 이날 발표한 경제연중 성장률 전망치를 지난해 2.3%에서 2.1%로 낮췄다. 금통위는 통화정책방향 결정문에 “코로나19의 확산 정도와 국내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지속적으로 점검”하겠다고 밝혔다. 코로나19의 확산으로 인해 소비가 위축되고 수출이 둔화했으며 세계 경제와 금융시장의 변동성이 확대됐다는 점 등도 인정했다.
◇금리인하 대신 중소기업 대출 지원 5조원 확대
한은은 금리 인하 대신 단기 대책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중소기업에 대한 자금지원 차원에서 금융중개지원대출 한도를 늘려 5조원을 공급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금통위는 이날 금융중개지원대출 한도를 기존 25조원에서 30조원으로 늘렸다.
금융중개지원대출은 시중은행의 중소기업 대출을 촉진하기 위해 한국은행이 연 0.75%의 낮은 금리로 은행에 자금을 빌려주는 제도로, 시중은행이 대출을 결정하면 한은이 대출금액의 절반을 지원하는 방식이다. 은행 대출 기준으로는 총 10조가 시중에 공급되는 셈이다.
지원 대상은 유통ㆍ관광ㆍ외식 등 서비스업과 원자재ㆍ부품 조달 및 중국 수출에 어려움을 겪는 중소 제조업체로, 한은은 특히 코로나19 타격이 큰 대구시와 경상북도를 비롯한 지방 소재 중소기업에 4조원을 배정하겠다고 밝혔다.
인현우 기자 inhy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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