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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자영업의 눈물겨운 시간

입력
2020.02.28 04:30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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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 오후 7시 손님으로 한창 붐벼야 할 대구 대표 관광지 김광석길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로 텅 비었다. 윤희정 기자
4일 오후 7시 손님으로 한창 붐벼야 할 대구 대표 관광지 김광석길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로 텅 비었다. 윤희정 기자

나라 상황이 말이 아니다. 전선에서 싸우는 분들은 이제 체력이 바닥나서 정신력으로 버티는 중이다. 마스크며 위생용품의 부족을 호소하는 시민 대중들의 목소리도 높아만 간다. 급하지 않은 곳이 어디 있으랴. 손보고 챙겨줄 곳의 우선순위를 매겨야 할 지경이다. 각급학교는 이러다가 등교도 못 하고 원격 수업을 진행해야 할지도 모른다고 한다. 이참에 어차피 미국식으로 9월 학기를 첫 학기로 시작하자는 주장도 나왔다. 별일이 다 생기고, 말도 많다.

벌어야 먹고사는 자영업은 어떤가. 회사는 또 어떤가. 대구만큼이야 하겠나만 전국적 상황도 거의 바닥이다. 3월까지는 월급이며 월세를 어떻게 버텨보겠는데, 4월은 장담 못 한다는 게 지배적이다. 장사하는 이들이 ‘단군 이래 최대 불황’이라는 말을 쓴 게 어제오늘이 아니어서 그다지 말발이 먹히지도 않는데, 이번은 ‘진짜’다. 누가 뭐래도.

지난 칼럼(2020년 2월 7일 자)에서 국제통화기금사태부터 신종플루, 메르스를 돌파해온 것이 그 힘들다던 자영업 아니었느냐고 썼다. 독자들이 보충 의견을 보내왔다. 광우병, 조류인플루엔자, 돼지열병, 구제역은 왜 빼느냐는 것이었다. 그랬구나. 생각보다 자영업, 특히 외식업이 헤쳐온 어마어마한 사건들이 많았다는 얘기다.

“조류독감(조류인플루엔자) 나서 치킨집 망하고 삼겹살집 차렸더니 구제역이 나더구나. 그 와중에 사스에 신종플루며 메르스도 있었지. 워낙 외부 충격이 많아서 순서도 헷갈린다. 장기 불황은 뭐 말할 것도 없고.” 친구인 고깃집 사장의 전언이다. 그는 직원 연차휴가 독려에 장차 무급휴직(경영 악화는 허가 사유가 된다)을 고려하고 있다. 해고를 피하는 최선의 수단이라고 한다. 그의 얘기를 듣자니, 입이 깔깔해지고 끊었던 담배가 생각난다.

가게에 와서 제일 먼저 한 게 김치를 담그는 일이었다. 김치는 익어서 맛을 내려면 시간이 걸린다. 언젠가 이 김치를 먹는 날은 다른 날일 거야, 그런 희망을 담았다. 메뉴 개발도 여러 건 했다. 그동안 잘 안 되던 음식의 개선부터 시작했다. 여유를 갖고 들여다보니 문제점이 보였다. 더 맛있는 음식을 내리라. 그게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손님이 없으니, 노는 일손으로 무언가 해야 했다. 족발도 만들고, 심지어 늘 해보고 싶었던 함경도식 식해도 담갔다. 가자미 대신 대구와 광어를 썼다. 광어, 요즘 수요 감소로 시장이 엉망인 어종이니까 한 마리라도 팔아주자는 생각에서였다. 좁쌀 넣고 엿기름 부어서 밀봉했다. 잘 익어서 소소한 기쁨이라도 줄까.

어제는 직원 재교육 프로그램을 짜면서 화재예방교육을 넣었다. 평소 바빠서 못하던 것들을 다 해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화재가 발생하면 최초 목격자는 “불이야!” 외치면서 전파하고, 비상구를 확보하여 손님들을 즉시 대피시킨다, 동시에 소화기를 사용하여 화점의 불을 끈다. 뭐 이런 기본적인 교육을 하게 될 것이다.

봄맞이 대청소도 하게 된다. 타이밍이 좋다. 그런 것이다. 소독용품이 부족해서 대체재를 찾는 게 문제이긴 했다. 그래도 닦고 쓰는 일은 좋은 일이다. 오븐과 그릴, 냄비가 반짝반짝 윤이 난다. 이참에 얼굴도 잘 못 보던 거래처 직원들, 요새 피차 괴로운 인간들끼리 소주라도 한 잔 할까? 동네 어느 대폿집이 제일 장사가 안 되지? 그 집에 가서 팔아주자.

다들 가게가 깨끗해지고, 식해는 잘 익어서 감칠맛을 뿜고, 뒤늦은 김치는 입맛 돌게 혀를 위로하고, 직원들은 언제든 소화기를 능숙하게 다루고, 충분히 연차 휴가를 써서 피부도 곱고 기운도 가득 찬 그런 봄날이 오기를. 흔히 쓰는 수사이지만, ‘눈물겹게’ 다들 견디고 있는 시간의 끝이 좋기를 바랄 뿐이다. 그래도 되겠지? 그렇게도 한 세월 살아볼 수 있겠지? 불청객이 준 뜻밖의 선물이라고 생각해도 될까.

박찬일 요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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