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의 일상 시간표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여파로 흔들리고 있다. 사람이 몰리는 시간을 피해 출ㆍ퇴근 행렬이 재조정되고 대형 건물에서 방역이 일상화되면서 신종 코로나 발생 전과 후의 생활 방식이 크게 달라졌기 때문이다. 감염병의 거센 후폭풍으로 그간 당연하게 여겼던 한국인의 집단주의 행태가 변화를 겪을 조짐이다. 무리 지어 특정 시간에 맞춰 일하고 쉬려는 한국인의 시간관에 변화가 불가피해졌다는 얘기다.
‘오전 7~8시 출근, 오후 6~7시 퇴근’이란 획일화된 직장인의 출퇴근 시간 공식은 신종 코로나로 깨졌다. SK텔레콤과 LG그룹 등은 하루 혹은 주중 근무 총 시간만 정해놓고 직원들의 출퇴근 시간을 자율에 맡겼다. 유진기업 직원들은 요즘 오전 11시에 출근하고 오후 4시에 퇴근한다. 혼잡 시간에 대중교통 이용을 최소화해 신종 코로나 감염을 막으려는 몸부림이다. 코스닥 상장사로 서울 청담동에 본사를 둔 A기업 마케팅팀은 요즘 오후 1시 이후에 점심을 주로 먹는다. 이 회사 마케팅팀장은 “사람이 덜 모이는 시간에 편하게 밥을 먹고 싶어 팀원들의 의견을 모아 점심시간을 더 늦췄다”고 귀띔했다. 메르스(MERSㆍ중동호흡기증후군)와 사스(SARSㆍ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사태 당시와 달리 신종 코로나는 공공장소와 집단적 행사에서 급속도로 전파되는 양상을 보여 관습 같던 출퇴근 및 점심시간에 균열을 낸 것이다.
서민의 시간표는 곳곳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달라지고 있었다. 사진 작가인 김승민(40ㆍ가명)씨는 일하는 시간을 밤에서 낮으로 바꿨다. 건물 관리인으로부터 건물 내 신종 코로나 소독을 매일 해야 하니 당분간 오후 7시 전까지 업무를 끝내달라는 공지를 지난주에 받은 탓이다. 서울 논현동의 한 건물에 스튜디오를 꾸린 김씨는 “촬영 특성상 모델 얼굴 붓기 때문에 오전엔 촬영을 되도록 안 하는 게 업계 관례였는데 이젠 오전부터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난감해했다. 중구 명동지하쇼핑센터에서 안경 가게를 운영하는 조미숙(56ㆍ가명)씨는 강제로 ‘6시 귀가족’이 됐다. 오후 8시 이후 인근 유동인구가 확 줄어 10시까지 가게 문 열어봐야 인건비도 안 나온다는 한탄이다.
신종 코로나로 저녁 약속과 회식 등이 잇따라 취소되면서 ‘밤도깨비의 천국 서울’은 옛말이 됐다. 스타벅스코리아 등 유명 음료 및 주류 업체들은 영업 마감 시간을 1시간 정도 앞당기고 있다. 서울의 하루가 ‘아침형 인간’ 위주로 진화하는 셈이다. 역촌동에 사는 김미숙(63)씨는 동네 주민 2명과 함께 25일 새벽 4시에 대중목욕탕을 찾았다. 김씨는 “신종 코로나로 목욕탕을 안 간지 3주가 넘었는데 도저히 더는 못 참아서 사람이 없는 새벽에 목욕탕을 간 것”이라고 말했다. 김헌식 사회문화평론가는 “특정 시간과 공간에 대한 밀집도의 위험에 대해 그간 우리사회가 너무 둔감했다”라며 “신종 코로나 사태를 계기로 생활과 문화적 시간에 대한 고민과 변화가 다양하게 이뤄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양승준 기자 come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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