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한일 법률 쟁탈전 
 
 힘 빠진 ODA 절대강자 일본, 추격하는 FDI 맹주 한국 
 
 ※국내 일간지 최초로 2017년 베트남 상주 특파원을 파견한 <한국일보>가 2020년 2월 부임한 2기 특파원을 통해 두 번째 인사(짜오)를 건넵니다. 베트남 사회 전반을 폭넓게 소개한 3년의 성과를 바탕으로, 급변하는 베트남의 오늘을 격주 목요일마다 전달합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베트남 개혁의 컨트롤타워인 행정개혁위원회 전체회의가 열린 지난해 5월.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ㆍ코트라)와 일본무역진흥기구(JETROㆍ제트로) 등 여러 정부기관 관계자들이 하노이 총리실 공관에 비장한 표정으로 마주 앉았다. 핵심 의제는 외국인투자법 제정 방향을 정하는 것. 국익이 달린 이슈가 나오자 각국 대표단의 목소리에 힘이 들어갔다. 논의를 주도하던 일본은 베트남에 대한 공적개발원조(ODA) 1위를 한번도 뺏기지 않은 사실을 내세워 자국에 유리한 규정을 추가하려 애썼다. 한국도 물러서지 않았다. 최근 10년 동안 베트남 외국인직접투자(FDI) 선두 자리를 내주지 않은 자신감을 바탕으로 최신 사례를 제시하며 주도권 싸움에 불을 붙였다. 지금 베트남에서 벌어지고 있는 한국과 일본 ‘법률 쟁탈전’의 한 단면이다.

21일 베트남 호찌민시 도심에 위치한 지하철1호선 1공구(지하) 공사 현장에 대형 크레인이 멈춰서 있다. 일본 기업은 사업권을 따내고도 10년 째 공사 중단과 재개를 반복해 현지에서 원성을 사고 있다. 호찌민=정재호 특파원
 30년 공든 탑 무너지는 日 

중진국 대열에 합류하려는 베트남은 2016년 사회경제개발계획(SEDP)을 발표하고 법률 개선을 국가 발전 최우선 순위로 설정했다. 이에 한일은 ‘시장 규칙’이 될 수많은 법률 제정 및 개정 작업에 참여하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하고 있다.

사실 30여년간 이렇다 할 경쟁자가 없어 베트남 법률을 좌지우지하다시피 한 일본 입장에서 한국의 참전은 골칫거리일 수밖에 없다. 일본은 그간 베트남에 2위 한국보다 8배 넘는 ODA를 제공한 법률 기반 원조의 절대 강자였다. 일본은 1994년부터 일본국제협력기구(JICA)를 중심으로 법무성과 일본변호사협회 등 민관이 힘을 합쳐 베트남 전자통관시스템과 연동된 관세법 개정안, 부품소재 산업 관련법 등 다수의 법률을 만들었다. 당연히 일본 기업들의 세금 혜택과 시장 진출이 뒤따랐다.

영원할 것 같던 일본의 위세는 2014년을 고비로 꺾이기 시작했다. 같은 해 공격적인 베트남 투자를 시작한 한국에 FDI 1위 자리를 넘겨줬다. 특히 그 해 일본계 컨설팅 회사 JTC가 프로젝트 성공을 위해 베트남 고위층에 뇌물을 상납한 사실이 드러나자 ODA 및 FDI 모두 급격히 쪼그라들었다. 여기에 비효율적인 일본식 관세법의 폐해와 지나치게 깐깐한 건설방식 등을 지적하는 현장 목소리까지 터져 나오면서 한국에 역전의 기회가 찾아왔다.

한일 베트남 FDI 현황. 그래픽=김대훈 기자
한일 베트남 ODA 현황. 그래픽=김대훈 기자

동남아 진출 23년차인 한국 중견기업의 한 간부는 “얼마 전 만난 일본 기업 대표가 ‘베트남에 실컷 돈을 쏟아 부었는데, 최근 3, 4년만 보면 재주는 우리가 부리고 돈은 한국이 먹는 격이라고 푸념하더라”며 “일본 정부도 경쟁이 심해진 베트남보다 태국 등 아직 영향력이 건재한 다른 동남아 국가로 방향을 돌리는 기류가 역력하다”고 귀띔했다. 실제 2016~17년 FDI 규모를 갑자기 늘리며 선두 탈환에 의욕을 보이던 일본은 지난해 상반기엔 투자액을 전년 대비 70% 가량 확 줄였다. ODA 역시 정점을 찍은 2016년과 비교해 8분의 1 규모로 대폭 축소된 상황이다.

한일의 미묘한 위상 변화는 베트남 곳곳에서 감지된다. 호찌민에서 활동 중인 한 외국계 변호사는 “베트남 최초의 도시철도 프로젝트 ‘호찌민 지하철 1호선’ 사업만 봐도 수주에 성공한 일본 기업의 지하공구 공사는 10년째 중단과 재개를 반복하고 있다”며 “반면 같은 사업 지상 공사를 일본으로부터 재수주한 한국 건설사는 공정률이 80%를 넘겨 호평을 받고 있다”고 달라진 분위기를 전했다.

21일 호찌민 지하철 1호선 사업의 2공구(지상) 공사를 재수주한 한국 건설기업이 만든 고가 철도가 시내를 관통하고 있다. 10년 째 진척이 더딘 일본 기업과 달리 80% 이상의 공정률을 보여 호평이 이어지고 있다. 호찌민=정재호 특파원
 韓 ‘ITㆍ속도’ 앞세워 총공세 

일본 추격전의 야전 사령부는 주베트남 한국 대사관에 만들어진 ‘팀 코리아’ 태스크포스(TF)이다. 일본에 비해 민관 협업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불거지면서 지난해 8월 창설됐다. 코트라, 한국국제협력단(KOICAㆍ코이카), 한인 상공인연합회(KOCHAMㆍ코참), 대한상공회의소 등 정ㆍ관ㆍ재계를 망라한 조직이 참여해 실시간으로 현안에 대응하고 있다.

최근 팀 코리아는 외국인투자자 세금 인센티브 문제와 관련, 한국의 ‘투자 옴브즈만 제도’와 관련 법령을 도입할 것을 베트남 정부에 요청했다. 팀 코리아 관계자는 26일 “특정 이슈를 정하지 않고 기업들이 현장에서 맞닥뜨리는 문제들을 베트남 정부와 같이 고민하고 있다”면서 “적어도 민관이 따로 움직이는 일은 더 이상 없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전략 역시 명확하다. 한국이 강점을 가진 정보기술(IT)과 빠른 추진 속도를 무기로 베트남 전자정부 지원법 및 스마트 시티ㆍ스타트업 관련법에 집중하는 식이다. 베트남 정부 역시 수도 하노이 등 각 지방자치단체에 해당시스템을 적용해줄 것을 희망하는 등 손발을 맞추고 있다. 관련법 정비와 시스템 수출에 성공할 경우 핀테크(IT 기술을 접목한 금융서비스) 등 국내 스타트업 기업의 베트남 진출은 과거 일본이 그랬던 것처럼 말 그대로 ‘꽃길’을 걸을 수도 있다.

어렵게 찾아 온 기회를 장기적 기틀로 만드는 건 한국 정부의 숙제다. 일본에 비해 한참 떨어지는 인력ㆍ예산 지원 규모는 한 두 정부기관의 노력으로 해결할 문제가 아니다. 한-베트남 민관협력 사업을 다수 자문한 하노이 로펌 관계자는 “일본은 기회가 포착되면 자국 판검사와 변호사, 통상전문가 등을 총동원해 인력ㆍ예산을 장기 지원하는 프로그램부터 만든다”며 “정부의 의지만 있다면 우리도 법 쟁탈전의 물줄기를 확실하게 되돌릴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하노이ㆍ호찌민=정재호 특파원 next88@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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