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5시 넘어 회사로 손님이 찾아왔다. 조용한 사무실에서 터키 소설가 부르한 쇤메즈의 기이한 이야기에 코를 박고 있던 나는 초인종 소리에 깜짝 놀랐다. 벽에 걸린 CCTV 화면으로 건물 외부 현관에 우뚝 선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연락도 없이 불쑥 나타난 그의 양팔에 꽤 무거운 듯한 상자가 들려 있었다. 서둘러 엘리베이터 쪽으로 달려나가 그의 짐을 건네받았다.
상자 가득 들어 있는 건 가래떡이었다. 조랭이떡국용, 일반 떡국용, 떡볶이용, 그리고 레인지에 구워 먹기 좋은 크기로 잘라낸 여러 색상 가래떡이 커다란 박스 안을 평화롭게 구획하고 있었다.
테이블 가에 앉은 그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다보았다. 시선을 눈치챈 그가 웃었다. “사무실에 없으면 이것만 전해주고 가려 했는데. 별건 아니야. 시절이 하 뒤숭숭하니까, 끼니때마다 식당 찾아 다니기도 좀 그럴 거 같고. 집하고 회사 냉장고에 넣어두고 자기 편한 대로 조리해서 먹으라고 들고와 봤어.” 명쾌한 기업인답잖게, 그의 말이 주저리주저리 늘어졌다.
슬프거나 울적하거나 두렵거나…. 이런저런 상심에 빠질 때, 사람들이 보이는 반응은 제각각이다. 원인 제공자를 찾아내 쌈박질을 하거나 징징대며 신세타령을 늘어놓는 사람은 그래도 양반이다. 내 친구 중 하나는 몇 날 며칠 혼자 속을 끓이다가 기어이 몸으로 병치레를 하고야 만다. 정해진 수순처럼, 그런 후에야 심신의 건강을 회복하는 루틴을 수십 년째 반복하고 있다. 또는 지금 내 앞에 앉은 이처럼, ‘이 많은 걸 어떻게 다 먹나?’ 싶을 만큼 엄청난 양의 먹거리를 들고 지인을 찾아가는 묘한 습성의 소유자도 있다. 그리고 나는 벌써 여러 해째 그의 카운터파트로서 맹활약하는 중이다.
사실을 말하자면 성향도 직업도 전혀 다른 우리가 이렇게 연결된 건 우연이었다. 15년 전 가을밤, 해외 출장차 머물던 숙소 로비를 혼자 어슬렁거리는데 저쪽 소파에 앉아 곤혹스러운 표정으로 서류를 살피는 여성이 눈에 들어왔다. 그날 아침 식당에서 눈인사를 주고받은 한국인이었다. 저녁식사 뒤의 느긋함에다 타국에서만 제 존재를 드러내는 동포애가 겹쳤던 것 같다. 고양이처럼 다가가 무슨 문제라도 생겼냐며 그에게 아는 체를 했다. 작은 무역회사를 운영하고 있다고 자기소개를 하면서 그가 서류를 내밀었다. 다음 날 현지 거래처 담당자 미팅 때 브리핑할 기획서를 최종 검토하고 있는데, 아무리 봐도 뭔가 부족한 느낌이라는 거였다. 하필 그 무렵 나에게는 출판 편집자로서 충만한 자부심이 아슬아슬한 건방이 되어 흘러 넘치고 있었다. ‘기획안이라면 또 내가 꿀리지 않지.’ 한눈에 서류를 읽어 내려간 뒤 겁도 없이 훈수를 두기 시작했다. 구세주를 만난 듯 반짝이는 상대의 시선에 도취해, 그 저녁 나는 아예 남의 회사 프레젠테이션 자료를 뜯어고치는 무리수를 뒀다. 그게 시작이었다. 출장과 맞물린 긴 여행에서 돌아오니 그가 보낸 박달나무 장식장이 나를 맞이했다. 고마움을 표할 때뿐 아니라 상심을 달래는 방편으로 그가 타인에게 선물을 해대는 특이한 취향의 소유자라는 사실은 한참 뒤에야 알았다.
실은 벌써 두 달 가까이 이어지는 코로나19 사태를 겪으면서 이웃 나라 수출 물량이 절대 비중을 차지하는 그의 회사 상황이 많이 걱정됐다. 그리고 이 저녁, 그가 가래떡 상자를 들고 불쑥 나타났다. 괜찮냐는 질문 대신, 나는 사무실 한쪽에 있는 쿡탑에 프라이팬을 올렸다. 노랑, 초록, 흰색 가래떡을 굽고 소금 종지에 참기름을 부어 기름장을 만들었다. 가래떡을 입에 문 그가 크게 웃었다. 삶이 힘겨울수록 희망은 작고 선명해진다. “하하, 맛있다!” 그가 탄성을 내지르는 순간, 미어질 듯 아프던 내 마음도 살짝 풀리고 거짓말처럼 고소한 가래떡 맛이 느껴졌다.
지평님 황소자리 출판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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