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대사회] 테러 이겨내고 더 강해진 뉴질랜드 
 2부<6ㆍ완> 포용과 화합이 증오와 분열 누른다 
지난해 12월 뉴질랜드 크라이스처치 알누르 모스크 정문에 총기 난사 사건의 희생자를 위로하는 꽃다발들이 놓여 있다. 크라이스트처치=정지용 기자

주마야 존스(64)는 지난해 3월 뉴질랜드 크라이스처치를 아비규환에 빠트린 알누르 모스크(이슬람사원) 총기난사 사건의 생존자다. 당시 인종차별주의자의 무차별 총기난사로 모스크에서 예배를 보던 300여명 무슬림 중 51명이 사망했다.

지난해 12월 알누르 모스크에서 만난 존스는 모스크 곳곳을 안내하며 처참했던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그는 “모스크에서 기도를 하고 있는데 ‘뱅뱅뱅’하는 소리가 들려 처음에는 폭죽이 터지는 줄 알았다”며 “고개를 돌려 보니 한 백인남성이 총기 두 자루를 들고 난사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존스는 모스크 중앙 기도실에서 “이곳에서만 44명이 즉사했다”며 “사람들이 창문을 깨고 도망쳐 회랑(回廊)의 창문들은 모두 새것으로 교체했다”고 말했다. 그는 “범인이 탄창을 가지러 모스크 밖에 주차해 놓은 차로 돌아갈 때 도망쳐 살아남았다”며 “행복하게 살 권리가 있는 선한 사람들이 너무 빨리, 많이 죽었다”고 한탄했다.

총기난사의 범인은 호주인 브렌턴 테런트(28)였다. 그는 페이스북을 통해 약 17분 동안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며 도망가는 모습, 총을 맞고 쓰러지는 모습을 전 세계에 생중계했다. 테런트는 범행 전 인터넷에 올린 ‘반이민 선언문’에서 “한명의 백인 남성이라도 살아있는 한 침입자(무슬림)들은 우리 땅을 정복할 수 없다”고 했다.

뉴질랜드 크라이스트처치 총기 난사 테러 발생 이틀째인 지난해 3월 17일, 수도 웰링턴의 한 사원을 방문한 저신다 아던 뉴질랜드 총리가 히잡을 쓴 채로 한 이슬람 여성을 껴안고 위로하고 있다(왼쪽 사진). 오른쪽은 며칠 뒤인 22일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의 ‘부르즈 칼리파’에 아던 총리의 모습과 함께 ‘평화’라는 뜻의 아랍어와 영어가 투영된 모습. 웰링턴·두바이=AP EPA 연합뉴스

“테러범의 이름을 부르지 않겠다”

뉴질랜드에서 총기 테러가 일어난 이후 외신들은 뉴질랜드에도 극단주의가 자리잡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미국이나 폴란드 등 서구 국가가 테러 이후 보수화 분위기로 흘렀다는 점에서다. 하지만 테러리스트가 퍼뜨리길 원했던 증오와 분열의 돌풍은 뉴질랜드의 포용과 화합의 정치 속에서 사그라졌다.

존스는 “범인은 유명해지고 싶어 했고, 뉴질랜드에 증오의 씨앗을 퍼뜨리고 싶어했다”며 “하지만 그는 성공하지 못했다”고 단언했다. 그는 “우리는 범인의 이름을 말하지 않는다. 복수를 원하지도 않는다. 그는 잊혀진 존재가 됐다”고 강조했다. 존스는 “증오와 악의 대신 포용과 용서의 메시지를 한국에도 전하고 싶어 인터뷰에 응했다”고 했다.

존스를 포함해 이곳에서 만난 뉴질랜드 시민들은 뉴질랜드가 고통을 극복할 수 있었던 원동력으로 저신다 아던(39) 총리의 리더십을 우선 꼽았다. 아던 총리는 테러 다음날 히잡을 쓰고 모스크를 방문해 “나라 전체가 슬픔에 빠졌다” “뉴질랜드는 당신들과 함께 할 것”이라고 했고, 유족 모두를 한 사람씩 일일이 끌어 안으며 진심 어린 위로를 건넸다. 존스는 “모두가 패닉에 빠졌을 때 아던 총리는 우리가 나아갈 길을 보여줬다”고 했다.

아던 총리는 또 국회 연설에서 “나는 테러범의 이름을 부르지 않겠다”고 선언하며 “목숨을 앗아간 자의 이름 대신 목숨을 잃은 이들의 이름을 불러달라”고 호소했다. 그러면서 “뉴질랜드가 공격 대상이 된 이유는 포용성과 자애와 동정심을 필요로 하는 난민을 수용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비극적인 참사에도 난민 포용 정책을 유지할 것임을 분명히 한 것이다.

뉴질랜드 정부도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회사들에게 테러 동영상을 삭제해달라고 요청했다. 시민들에게는 “범행 영상을 공유하지 말아달라”고 호소했다. 현지 주요 언론도 이 같은 요청을 수용해 범인의 이름과 얼굴을 공개하지 않았다. 의회는 사건 한 달여 만에 불법 총기를 규제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존스 씨는 “뉴질랜드 어디에서도 범인의 얼굴을 보거나 이름을 들을 수 없다”며 “뉴질랜드 총리와 정부와 언론 모두가 ‘피해자의 편’에 서서 우리를 배려해 줬다”고 했다.

11선 국회의원 출신인 피터 던 전 뉴질랜드 내무장관이 지난해 12월 본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정지용 기자

포용과 화합이 증오와 분열 누른다

세계 곳곳이 증오와 분열로 ‘적대사회’로 변하고 있기 때문일까. 포용과 화합의 문화, 대화와 타협의 정치를 보여준 뉴질랜드는 그만큼 더 민주주의의 ‘모범국가’로 빛을 발하고 있다. 11선 국회의원 출신인 피터 던 전 내무장관은 한국일보와 만나 “뉴질랜드는 인구 30%가 이민자고 15%가 마오리족인 모자이크 사회”라며 “뉴질랜드에는 분열과 대립을 막기 위해 ‘앉아서 대화하는 문화’가 공고히 자리잡아 있다”고 말했다.

이 나라의 포용성과 다양성을 고스란히 나타내는 무대는 바로 정치권이다. 아던 총리는 지난해 6월 출산을 한 후 6주간 육아휴직을 갔다. 여성이 일과 육아를 병행하는 게 ‘당연하다’는 사실을 몸소 보여준 것이다. 지난해 8월에는 뉴질랜드 동성애자인 티마키 코피 노동당 의원이 대리모를 통해 나은 아이와 함께 국회에 등원해 화제가 됐다. 피터 던 전 장관은 “뉴질랜드 의회는 여성, 성소수자, 장애인, 마오리족 등으로 가득 차 있다”며 “포용과 화합을 외치는 이들 앞에서 포퓰리즘이나 극단주의는 설 자리가 없다”고 했다.

정부가 경제 양극화를 해소하기 위해 적극 나서는 것도 주목할 대목이다. 뉴질랜드 정부는 지난해 6월 국가 총예산의 3.4%인 38억 뉴질랜드달러(약 3조원)를 정신건강을 포함한 삶의 질 향상에 투자하는 ‘웰빙 예산’을 편성했다. 국가 정책과 예산 편성의 목표를 경제성장(GDP)에서 ‘행복 증진’으로 바꾸는 세계 최초의 대전환 실험이다. 웰빙 예산은 자살률, 홈리스 증가, 가정폭력과 아동 빈곤 문제에 대한 효과적인 대처를 목표로 한다.

그랜트 로버트슨 뉴질랜드 금융장관은 웰빙 예산에 대해 “경제가 성장했지만 국민들의 삶의 질은 여전히 뒤쳐져 있다”며 “이번 예산은 증가하는 빈부격차를 해소하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 뉴질랜드 켄터배리대학의 알렉스 탄 정치학과 교수는 한국일보와 만나 “뉴질랜드 정부는 사회분열을 막기 위해 일찌감치 사회복지 확대에 신경을 써 왔다”며 “정치가 국민의 요구를 정확하게 수용할 때 갈등과 분열을 막을 수 있다”고 말했다.

크라이스트처치ㆍ오클랜드(뉴질랜드) 정지용 기자

공감은 비로그인 상태에서도 가능합니다

web_cdn 저작권자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국제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