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 일선 물러난 뒤 ‘기생충’책임프로듀서로 복귀… 작품상 등 4관왕 쾌거
‘기생충’의 오스카 4관왕 뒤엔 ‘숨은 손’이 있었다. 이미경 CJ그룹 부회장이다. 이 부회장의 영향력은 9일(현지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 할리우드 돌비극장에서 열린 제92회 아카데미영화상 시상식에서 여실히 드러났다.
작품상 수상작으로 ‘기생충’이 호명된 뒤 주연배우들에게 둘러싸인 곽신애 바른손 이앤에이 대표가 수상 소감을 끝내자 이내 무대 조명이 꺼지고 카메라는 다른 곳을 비췄다. 하지만 객석의 할리우드 영화인들은 손을 휘휘 내저으며 이 부회장을 앞으로 불러냈다. 이 부회장의 글로벌 인맥과 존재감을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장면이었다.
마이크를 넘겨받은 이 부회장은 “나는 봉 감독의 모든 것을 좋아한다. 그의 미소, 트레이드 마크인 정신 없는 헤어스타일, 어법, 특히 연출 감각을 좋아한다. 봉 감독은 유머와 재치가 있고 사람을 재미있게 해 준다. 정말 감사하다”고 감격 어린 소감을 밝혔다. 아울러 이 부회장은 한국 영화 관객들에게 특별한 감사의 뜻을 나타내며 “그들이 없었으면 우리는 이 자리에 없었을 것”이라고도 말했다. “불가능해 보였던 꿈을 지지해 준 내 형제에게도 감사하다”며 이재현 CJ그룹 회장을 특별히 언급해 이목을 끌었다.
이 부회장이 이처럼 감격한 것은, 아카데미상 수상이 오랜 염원에 대한 응답이기 때문이다.
CJ는 제일제당 시절이던 1995년 영상산업에 진출하면서 동시에 글로벌화를 천명했다. 스티븐 스필버그 등이 참여한 엔터테인먼트회사 드림웍스에 투자하며 아시아 파트너가 됐고, 한국 영화의 세계화를 화두로 대형 프로젝트를 이끌었다.
CJ는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칸영화제에 진출한 이창동 감독의 ‘밀양’(2007)과 ‘버닝’(2018), 박찬욱 감독의 ‘박쥐’(2009)와 ‘아가씨’(2016)를 지원한 곳도 CJ다. 봉준호 감독과는 2003년 ‘살인의 추억’에서 인연을 맺었다. 이후 ‘마더’(2009) ‘설국열차’(2013) ‘기생충’까지 봉 감독의 영화 4편을 투자ㆍ배급했다.
한 차례 우여곡절도 있었다. 이 부회장은 반정부적인 프로그램을 만들어 방송했다는 이유로 박근혜 정부 당시 퇴진 압력을 받아 2014년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뒤 한동안 미국에 머물렀다. 탄핵으로 박근혜 정부가 무너진 뒤 이 부회장에게 ‘기생충’은 복귀작이기도 하다. 이 부회장은 ‘책임 프로듀서’로 ‘기생충’ 제작에 참여했을 뿐 아니라 ‘기생충’의 ‘오스카 레이스’에도 100억원 이상의 자금을 지원한 것으로 알려졌다. ‘기생충’의 오스카 제패는 CJ, 이 부회장 모두에게 특별한 의미다.
충무로의 중견 영화 제작자는 “부정적 측면도 있겠지만 CJ가 한국 영화의 세계화를 이끈 공은 결코 무시할 수 없다”며 “이 부회장의 애정과 집념으로 지금 ‘기생충’의 성취도 가능했다”고 말했다.
김표향 기자 suzak@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