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정당당한 승부의 세계가 인종차별로 오염되고 있다. 이젠 상대편 선수나 관중을 넘어서 소속 팀 내에서도 인종차별을 당하는 피해자들이 등장한다.
영국 매체 더 선은 10일(한국시간) 레알 마요르카의 일본인 선수 쿠보 타케후사(19)가 9일 스페인 프리메라리가 경기 도중 소속팀 코치 다니 파스토르로부터 인종차별을 당했다는 사실을 증거 사진과 함께 보도했다.
당시 파스토르는 쿠보를 교체선수로 호출하는 과정 중에 ‘눈을 좌우로 찢는’ 행동을 취했다. 보통 눈을 좌우로 찢는 행동은 동양인을 비하하는 용도로 많이 사용된다. 아직 마요르카는 사과를 비롯해 공식적인 입장조차 내놓고 있지 않다.
그간 한국 선수들도 인종차별 피해의 대상이었다. 손흥민(28)은 지난 3일 맨체스터 시티와의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25라운드 경기 직후 나선 인터뷰에서 ‘기침’을 했다고 팬들로부터 조롱을 받았다. 중국에서 발생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에 동양인인 손흥민이 걸렸다는 것이 주된 내용이었다. 수많은 비판이 뒤따랐지만 그때뿐이었다. 최근 손흥민의 팀 동료인 델리 알리(24)는 동양인으로 보이는 남성을 대상으로 신종 코로나와 관련된 농담을 하는 영상을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렸다가 뭇매를 맞았다.
이 같은 축구계 인종 차별은 2017년 이후부터 급증해왔다. 지난달 영국 가디언이 발표한 영국 내무부의 통계에 따르면 2014년부터 2017년부터 감소세를 보이던 영국 축구계 인종차별은 2017년부터 놀라운 증가세를 보였다. 지난 시즌(2018~19) 내내 일어난 인종차별 건수는 세 시즌 전과 비교하면 2배 이상 늘었고, 2017~18 시즌보다 50% 이상 증가했다. 스페인, 이탈리아 축구도 비슷하다.
전문가들은 시대적 변화가 축구에 영향을 미친다고 설명한다. 인종차별 반대 운동을 펼치는 영국 단체인 킥 잇 아웃(Kick it out)은 “세계가 증오주의, 국가주의 속에서 살게 되며 분열의 언어가 많아졌다”며 “축구계의 인종차별 증가도 이 같은 맥락에서 주류가 되어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여기에 경쟁적인 환경은 차별적 발언을 더 쉽게 내뱉게 한다.
국제축구연맹(FIFA)을 비롯해 잉글랜드축구협회(fA) 등 국가별 축구협회에서 인종차별을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있지만 효과는 미미하다. 강력한 수준의 징계가 이어지는 경우가 적기 때문이다. 지난해 9월 로멜루 루카쿠(27)에게 인종차별을 한 칼리아리 팬들은 ‘증거 부족’으로 이탈리아 축구협회로부터 아무런 징계를 받지 않았다.
그래서 피해자들은 의사 결정권을 쥐고 있는 이들이 변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영국에 기반을 둔 아시아 축구 클럽인 하부 스포팅 벵갈의 임룰 가지 감독은 영국 BBC와의 인터뷰에서 축구 당국에 더 많은 소수자 대표들이 생기지 않는 한, 변화는 없을 것이라며 “당신(백인)은 원숭이라고 불리는 것이 어떤 뜻인지 알지 못한다”고 했다. 축구 당국 의사결정권자들이 인종차별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이 같은 피해가 반복된다는 것이다.
오지혜 기자 5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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