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을 갈아 넣었다.”
‘기생충’ 홍보전에 동원된 봉준호 감독의 외미디 비명이었다. 그럴 법도 했다. 지난해 여름 이후 무려 500개 이상 외신과 인터뷰했고, 관객과 대화 무대에도 100차례 이상 서야 했다. 몸이 몇 개라도 모자란 일정이었다. 지난해 10월 ‘기생충’이 미국 극장에서 개봉한 뒤엔 더 심해졌다. 봉 감독 스스로 “하루 몇 곳씩, 봉고차를 타고 떠도는 유랑극단처럼 살았다”고 했다. ‘오스카 캠페인’은 그렇게 고단한 일정이었다.
오스카 캠페인이 이렇게 힘든 이유는 단 하나. 많아야 10여명 안팎의 심사위원들이 상의해 수상작을 결정하는 다른 영화상과 달리, 아카데미상은 8,400여명에 이르는 영화예술과학아카데미(AMPAS) 회원들 투표로 결정돼서다. 이 회원들 대부분은 미국감독조합(DGA) 전미제작자조합(PGA) 같은 미국 내 영화 관련 직능 단체 소속이다. 오스카 켐페인을 한다는 것은 이들을 상대로 시사회와 리셉션과 파티를 열어 영화를 알리는 등 끊임없이 스킨십을 해야 한다는 얘기다.
이 때문에 보통 오스카 캠페인에는 2,000만~3,000만달러, 우리 돈으로 230억~350억원 정도를 쓴다는 게 할리우드의 정설이다. 지난해 외국어영화상을 받은 넷플릭스 ‘로마’의 경우 최소 2,500만달러(298억원)을 쓴 것으로 알려졌다. ‘기생충’ 역시 CJ ENM은 함구하지만 100억원대의 자금을 썼을 것이란 추정이 나온다.
이런 물량전이 가능한 이유는, 역시 그만큼 흥행을 보장하기 때문이다. ‘기생충’만 해도 오스카 캠페인 기간 동안 영화가 지속적으로 화제가 되면서 9일 기준 미국 시장에서 3,437만달러(410억원), 글로벌 시장에서 1억6,426만달러(1,960억원)를 벌어들였다. 100억원 정도는 투자하고도 남음이 있는 돈이다.
‘기생충’의 박스오피스는 사실 이제 시작이다. 오스카 수상 이전 ‘기생충’이 ‘화제작’에 머물렀다면, 작품상에다 감독상 등 4관왕을 차지한 이후 ‘기생충’은 검증된 작품이 된다. 봉 감독을 갈아 넣은 데 따른 과실은, 이제부터 수확이다.
로스앤젤레스=라제기 영화전문기자 wender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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