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카(아카데미)는 국제영화제가 아니잖아요. 지역 행사죠."
쿨내 나는 인터뷰로 화제를 모았던 봉준호 감독이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최고상인 작품상을 받으며 4관왕에 등극했다. 주요 부문을 휩쓸며 한국영화의 위상을 드높였다.
'기생충'은 10일 오전 10시(한국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 할리우드 돌비 극장에서 열린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최우수작품상·감독상·각본상·편집상·미술상·국제영화상 등 6개 부문 후보에 올랐다.
사실 작품상의 경우는 후보에 오른 것만으로도 엄청난 의미를 가진다. 할리우드 자본이 들어가지 않고 배우와 언어 등 모든 면에서 할리우드와 무관한 영화가 작품상 후보에 오른 건 '기생충'이 최초다. 그런데 예상을 깨고 수상까지 성공하면서 이변을 만들어냈다. 비영어권 영화가 최고상을 탄 건 아카데미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감독상은 지난 2006년 이안 감독이 '브로크백마운틴'으로 아시아계 감독 최초로 수상을 했다. 봉준호 감독이 아시아에서는 두 번째로 아카데미 감독상의 주인공이 됐다. 또한 아시아계 영화인의 각본상 수상은 92년 아카데미 역사상 최초다.
끝없는 수상 낭보를 전하며 '시상식 레이스'를 펼친 봉준호 감독은 남다른 입담으로도 현지에서 주목 받았다. 겸손하지만 여유롭고 당당한 태도가 화제가 됐다. 특히 각종 영화제나 시상식에서 봉 감독은 "배가 고프다"거나 음식에 대한 이야기로 눈길을 끌기도 했다.
▶이하 봉준호 감독의 주요 수상 소감
"후보들이 대부분 후배 감독님들이라 민폐 같기도 하다. 그런데 저도 한국영화로 청룡영화상은 처음이다. 욕심 났던 상이다. 제가 감독 구실을 할 수 있게 해준 송강호 등 배우들에게 감사하다. 앞으로도 한국영화의 가장 창의적인 기생충이 돼 한국영화 산업에 영원히 기생하는 창작자가 되겠다."-청룡영화상 시상식
"혼자 외롭게 카페에서 보낸 시간이 많았다. 시나리오를 커피숍에서 쓰는데 이렇게 런던 한복판 로열 앨버트 홀에 서게 될 날이 올 줄은 상상도 못했다. 최고의 앙상블을 보여준 우리 배우들이 없었다면 이 상도 불가능했을 거 같다. 여기에 위대한 송강호 배우도 와 있다."-영국 아카데미 시상식
"우리가 어워드 시즌에 레이스를 하고 있는 건 사실이지만 오스카 예측 이런 걸 떠나서 같은 배우들의 투표로 상을 받아서 더 기쁘다. 배우들이 인정한 최고의 배우들, 앙상블을 인정받은 것이기 때문에 그 기쁨이 제일 크다. 오스카는 모르겠다. 가보면 알겠지." -영화배우조합 시상식 기자회견
"나이 얘기를 하고 싶진 않지만 최근 자주 뵙는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님, 내가 25년 후에 그 분의 나이가 된다. 오늘 이후 25년간 진정한 아웃스탠딩한 감독이 될 수 있게 최선을 다하겠다."-산타바바라 영화제
"어메이징! 언빌리버블! 자막의 장벽, 1인치 정도 되는 장벽을 뛰어넘으면 훨씬 더 많은 영화를 즐길 수 있다. 멋진 세계적인 감독들과 후보에 올라 그 자체가 영광이었다. 한국영화가 100년을 맞은 작년 칸에서 좋은 경사가 있었고, 101년을 맞이해서 골든글로브에서 경사가 생겼다. 해를 이어 좋은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골든글로브 시상식
"10월에 개봉하고 박스오피스에서 좋은 결과가 있었다. 뜨거운 반응이 놀라우면서도 당연하단 생각이 들기도 했다. 가난한 자와 부자, 자본주의에 관한 얘긴데 미국이야말로 자본주의의 심장 같은 나라니까 논쟁적이고 뜨거운 반응이 있을 수밖에 없단 생각이 들었다."-골든글로브 공식 기자회견
"상을 받을 거라고 예상하지 못했다. 오늘 비건버거를 맛있게 먹으면서 재밌는 시상식을 즐기고 있었다. 살면서 예상치 못한 일들이 많이 벌어지는 거 같다. '기생충'에서도 많은 예상치 못한 사건들이 벌어지듯이 (인생이) 그런 거 같다. 이 상을 받은 것보다도 멋진 감독님들과 같이 후보에 올라 더 기쁘다. 감사하고 이제 내려가서 반쯤 남은 비건버거를 먹도록 하겠다."-크리틱스 초이스 시상식
"제가 어렸을 때 항상 가슴에 새겼던 말이 있는데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인 것'이라는 말이었다. 이 말을 책에서 읽었는데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이 한 말이다. 제가 학교에서 마틴의 영화를 보면서 영화를 했던 사람인데 같이 후보에 오른 것만으로도 영광이다. 쿠엔틴 형님(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에게도 감사하다. 오스카 측에서 허락한다면 이 트로피를 텍사스 전기톱으로 5개로 잘라 나누고 싶다. 오늘 밤은 술 마실 준비가 돼 있다. 내일 아침까지 말이다."-아카데미 시상식
유수경 기자 uu84@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