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료원 음압병동 김연희 간호사, 메르스 때 이어 또 자원
호흡 힘든 보호구 등 5㎏ 장비 착용, 2시간 일하면 탈진 상태
“졸업식 못 가서 딸에게 미안… 동료 간호사 23명 있어 든든”
“누군가는 의심ㆍ확진 환자들을 돌봐야 하잖아요. 메르스 때 경험도 있고 해서 자원했습니다. 마음 가는 곳이 여기(음압격리병동)더라고요. 할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5일 늦은 오후 서울 중랑구 서울의료원 전문 음압격리병동에서 만난 김연희(49) 간호사. 지난달 31일 자진해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환자를 격리 치료하는 이곳으로 들어온 그는 자신감으로 눈을 빛냈다. 신종 코로나 확진 판정을 받은 5번, 7번, 9번 환자(이후 19번 환자도 이송)들과 사투의 최전방에 선 그는 2015년 중동호흡기증후군(MERSㆍ메르스) 사태 당시엔 같은 장소에서 23명의 환자를 맞아 19명을 세상으로 돌려보내고, 나머지 4명의 최후를 지켜봤다. 하지만 이번에는 단 한 명의 손도 놓치지 않겠다는 결심을 꼭 쥔 채 밤낮을 버텨낸다.
서울의료원의 전문 음압격리병동은 의료원 본관과 분리된 별도의 건물 내부에 마련되어 있어 의료진 등 병원관계자만 출입이 가능하다. 의심ㆍ확진 환자들은 환자 전용 엘리베이터를 통해 입원하며 이 과정에서 외부인은 철저히 통제된다. 김 간호사와 마주 앉은 이날도 부산한 의료진의 통행만이 고요함을 깼다.
7번, 9번 환자가 입원한 지난달 31일부터 음압격리병동에서 일하는 그는 “메르스 때는 너무 불안해 손을 부르트도록 씻고 나서도 움직일 때마다 알코올 젤을 뿌리고 바른 기억밖에 나지 않는다”고 말하며 5년 전 기억을 떠올렸다. “메르스 때 근무한 의료진 중 한 명도 감염되지 않고 환자를 치료했기에 지금 내 자신과 우리 병원 시설을 믿고 환자들을 돌보고 있어요.”
◇의심환자 “앞으로 착하게 살겠다” 다짐
자원을 했다지만 최고 보호수준인 ‘레벨(Level)D’ 보호복을 입고, 숨조차 제대로 쉬기 힘든 N95 마스크와 고글을 착용한 채 환자를 돌보는 일은 중노동일 수밖에 없다. “환자가 있는 격리병실에서 2시간 정도 근무를 하려면 필터링한 공기를 공급받을 수 있는 전동식호흡보호구(PAPR)를 부착해야 하는데 무게가 3㎏에 달하고 안면으로 공기가 공급돼 안경에 서리가 자주 껴 힘들어요. (4~5㎏에 달하는 장비를 착용한) 상태로 환자에게 주사라도 놓으려면 아찔할 때가 있어요. 이렇게 2시간 정도 음압 병상에서 일하고 나오면 탈진상태가 됩니다.”
김 간호사는 음압격리병동 근무를 위해서는 강한 인내심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한다. 음압격리병동은 바이러스 유출을 막기 위해 음압(陰壓) 상태를 유지해야 해서 한번에 문을 여닫을 수 없다. 문이 열려 의료진이 들어간 다음 그 문이 닫혀야 다음 문을 열 수 있는 방식이다. 문이 열려 복도를 지나면 만나는 전실(前室ㆍ환자 병실로 들어가기 전 방)도 같은 단계를 거쳐 통과해야 한다. 전실에서 앞치마를 두르고 병실에 들어가 환자 상태를 점검하고 필요한 물품 등을 공급한 후 다른 환자에게 이동하려면 전실로 돌아와 장갑과 앞치마를 벗고, 다시 새것을 착용해야 한다. 김 간호사는 “로봇처럼 움직이면서, 장갑과 앞치마를 무한반복으로 끼고, 입고, 벗어야 한다”며 “메르스 사태 때 환자 상태가 좋지 않아 격리병실로 뛰어 들어갔는데 문이 천천히 열려 잠시나마 마음 졸인 적이 많았다”고 회고했다.
신종 코로나 때문에 인생을 새롭게 살겠다고 선언한 환자도 만났다. “지난달 중국에 다녀왔다 폐렴 증세를 보여 선별진료소를 통해 입원한 30대 의심환자가 음성판정을 받고 퇴원하면서 ‘앞으로 나쁜 짓 저지르지 않고 착하게 살겠다’고 다짐을 했어요. (어떤 분인지 알 수 없지만) 메르스, 신종 코로나 모두 인간에게 해로운 바이러스지만 덕분에 새삶을 시작하겠다는 사람도 있네요.”(웃음)
◇ “중3 딸 졸업식 못 가 미안” 눈물
메르스, 신종 코로나 등 감염증이 유행할 때마다 자진해서 환자들을 간호하고 있지만, 그의 가슴 한 켠에는 가족에 대한 미안함이 드리워 있다. “2월 초에 딸이 중학교 졸업을 했는데 격리병동에서 근무하느라 졸업식에 가지 못했어요. 아이가 ‘엄마 빼고 다른 엄마들은 다 졸업식에 왔다’고 이야기를 할 때 너무 미안해서 말을 잇지 못했어요.” 어느새 붉어진 눈시울에서 눈물이 떨어졌다. “메르스 때도 지금도 병원에서 근무를 하고 귀가하면 남편과 아이들과의 접촉을 최대한 자제하고 있어요. 한편으로는 ‘내가 이렇게까지 하면서 살아야 하나’라며 후회를 할 때도 있지만 그래도 격리병실에서 치료를 받고 있는 환자들을 생각해 힘을 내고 있습니다.”
김 간호사는 격리병동에서 함께 근무하는 23명의 간호사들이 있어 마음이 든든하다고 말했다. 그는 “간호사들이 ‘할 수 있습니다’ ‘지금 아니면 언제 음압격리병실에서 근무할 수 있겠느냐’라고 말하며 자원을 할 때마다 환자를 아끼고, 새로움에 도전하려는 마음이 느껴져 고맙고, 행복했다”고 말했다. “첫 아이를 낳은 후 ‘다시는 애를 낳지 않을 것’이라 다짐해 놓고 둘째, 셋째를 낳는 것처럼 격리병동에서 근무할 때는 ‘다신 오지 말아야지’ 생각하지만 정작 감염병이 유행하면 발길이 이쪽으로 향합니다. 이게 운명인 것 같아요.”
김 간호사는 출근할 때마다 ‘오늘은 제발 의심ㆍ확진 환자가 병원에 들어오지 말길, 만약 환자가 오면 의심환자는 음성판정을 받고 확진환자는 상태가 호전돼 퇴원하길’ 바라며 기도한다. “병이 무섭고, 근무가 힘들지만 우리 간호사들의 손길을 기다리는 환자들을 외면할 수 없어 병동을 지키고 있습니다. 우리도 임무에 최선을 다할 테니, 국민들도 위생수칙을 지키면서 일상을 유지하길 바랍니다.” 병동으로 눈길을 돌린 그는 다시 결연한 눈빛을 되찾고 있었다.
김치중 기자 cj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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