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O 비상사태 선포는 2019년까지 총 5번 
시진핑(오른쪽) 중국 국가주석이 28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테드로스 아드하놈 게브레예수스 세계보건기구(WHO) 사무총장의 예방을 받고 악수하고 있다. 베이징=신화 연합뉴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을 아직 비상사태로 선포할 단계는 아니다. 중국 내에서 사람 간 전염이 있지만 가족이나 감염자를 돌보는 의료계 종사자 내에서 제한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중국 외 지역에선 현재 사람 간 전염에 대한 증거가 없다”

23일(현지시간) 세계보건기구(WHO)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우한 폐렴)에 대한 ‘국제공중보건위기상황’(PHEIC) 선포를 반려하며 남긴 말입니다. 국제공중보건위기상황이란 질병이 국가 간 전파 위험이 있고 잠재적으로 국제적 대응이 필요한 이례적 상황에 선포되는데요. 보통 ‘비상사태 선포’라고도 합니다.

WHO가 비상사태 선포는 시기상조라고 밝힌 23일 당시는 일본ㆍ한국ㆍ싱가포르ㆍ태국ㆍ미국ㆍ베트남 등 6개 국가에 코로나바이러스가 퍼지고, 확진자는 사망자 17명을 포함한 584명으로 집계된 상황이었는데요. 6일이 지난 29일에는 17개 국가에서 6,000명에 육박하는 확진자가 나왔고, 사망자는 132명까지 늘어났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코로나바이러스 확진자, 사망자가 빠르게 늘어나는 상황이지만 WHO의 비상사태 선포는 없었습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공포가 확산하는 가운데 29일 인천국제공항 제1터미널에 마련된 선별진료소에서 보호복을 입은 군의관과 간호장교가 업무를 보고 있다. 서재훈 기자

일각에서는 WHO의 소극적인 대처를 두고 중국 눈치를 보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오고 있습니다. WHO가 비상사태를 선포하면 국제보건규칙에 따라 각국은 중국인에 대한 입국금지 근거를 마련할 수 있게 됩니다. 이렇게 되면 중국인의 활동이 제약을 받을 수밖에 없게 되죠. 29일 로이터통신은 “WHO가 중국 눈치를 보느라 바이러스를 정치적으로 계산하고 있다”고 전했는데요. 중국은 2017년 에티오피아 출신 테드로스 아드하놈 게브레예수스가 WHO 사무총장에 당선된 직후 협약을 맺고 600억 위안(약 10조원)을 WHO에 투자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이를 두고 WHO가 돈 때문에 중국 눈치를 보고 있는 것 아니냐는 말까지 나오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최고 전염병 경보 단계에 해당하는 비상사태는 어떤 경우에 내려지는 걸까요? 비상사태는 2007년 6월부터 시행 중인 국제보건규약(IHR)에 따릅니다. 공중보건 관련 보고에 관한 권리와 의무를 담고 있는 이 규약은 1995년부터 2005년까지 약 10년에 걸쳐 완성됐는데요. WHO 회원국을 포함한 196개국간 합의에 기반한 국제 규약입니다. 다음 조건 가운데 두 가지 이상에 해당해야 합니다. △공중 보건에 미치는 영향이 심각한 경우 △사건이 이례적이거나 예상하지 못한 경우 △국가 간 전파 위험이 큰 경우 △국제 무역이나 여행을 제한할 정도로 위험이 큰 경우 등입니다. 단, 이 조건에 해당한다고 해서 무조건 비상사태 선포가 되는 건 아닙니다. WHO가 긴급 위원회를 소집해 비상사태 선포 여부를 논의하고 그 이후 사무총장이 선언합니다. 긴급 위원회는 내ㆍ외부 전문가들로 구성됩니다.

이번 코로나바이러스 경우 WHO는 이틀 동안 16명의 독립적인 전문가들로 구성된 긴급 위원회 논의를 거쳤습니다. 디디에 후상 WHO 긴급 자문위원회 의장은 비상사태 선포에 대한 위원들 의견이 50대 50으로 비등하게 엇갈렸다고 밝히기도 했는데요. 코로나바이러스를 비상사태로 선포해야 한다는 전문가 의견도 그만큼 많았다는 말이겠죠. 결국 코로나바이러스에 대한 긴급 이사회가 재소집 되는데요. 게브레예수스 사무총장은 29일 트위터로 “30일부터 긴급 이사회를 재소집 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 '우한 폐렴'이 확산하고 있는 가운데 29일 중국 발 항공편으로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한 승객들이 감염을 피하기 위해 마스크와 더불어 물안경과 고글을 착용하거나 머리에 샤워캡까지 쓴 채 고정 검역대로 들어서고 있다. 영종도=서재훈 기자

국제 비상사태가 선포될 경우 WHO 회원국은 바이러스 확산을 막기 위한 국제 공조에 동참할 것을 권고 받습니다. WHO는 발병 해당국에 출입국, 여행 제한을 권고할 수 있고 오염이 의심되는 수하물 등에 대한 압류와 폐기를 권고할 수 있습니다. 단, 강제력이 없는 권고에 그치기 때문에 한계는 있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국제보건규약 마련 이후 비상사태가 선포된 5차례 뿐인데요. 그간 WHO가 비상사태로 선포한 질병입니다.

◇2009년 멕시코 인플루엔자

2009년 8월 21일 신종플루 확진판정을 받은 학생들로 인해 휴교 중인 전북 전주여고 교실. 한국일보 자료사진

WHO의 첫 번째 비상사태 선포는 2009년 멕시코에서 신종 인플루엔자가 발생했을 때입니다. 멕시코 베라크루스주 등 3개 주에서 처음 발병한 인플루엔자는 빠른 속도로 유럽과 아시아로 확산됐습니다. 국내에서는 ‘신종 인플루엔자’ 혹은 ‘신종 플루’로 부르기도 한 이 전염병은 WHO 추산 전 세계적으로 8만명 이상의 의심 환자와 1만8,000여 명의 사망자를 냈습니다. 한국도 신종 인플루엔자의 피해를 입었는데요. 2010년 8월 말까지 약 76만여 명의 확진자가 나왔고 270명이 사망했습니다.

◇2014년 아프리카 및 아시아 일부 국가 소아마비 (폴리오)

2006년 3월 5일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에서 4살난 아이가 폴리오(소아마비)백신을 접종 받고 있다. AP=연합뉴스

소아마비로 알려진 폴리오는 대변을 통해 배출되는 폴리오 바이러스가 입을 통해 전달돼 감염되는 질병입니다. 2014년 당시 파키스탄ㆍ카메룬ㆍ시리아ㆍ아프가니스탄ㆍ적도기니ㆍ이라크ㆍ에티오피아ㆍ이스라엘ㆍ소말리아ㆍ나이지리아 등 총 10개국이 폴리오 바이러스 감염국으로 지정됐습니다. 국내는 1958년 폴리오 예방접종이 도입됐고 1983년부터 ‘국가예방접종’으로 도입됐습니다. 83년 이후 국내 환자 발생이 없었고 2000년 국내에서 박멸이 선언된 질병입니다.

◇2014년 서아프리카 에볼라 바이러스

마거릿 챈 전 WHO 사무총장. AFP=연합뉴스

2014년 2월부터 서아프리카의 기니, 라이베리아, 시에라리온 지역에서 급격히 확산돼 수천명의 희생자를 낸 바이러스입니다. 전 세계적으로 2만8,616명이 감염됐고, 이 가운데 1만1,310명이 사망했습니다.

마거릿 챈 당시 WHO 사무총장은 2014년 8월 8일 기자회견을 열고 “긴급위원회에서 논의한 결과 서아프리카의 에볼라 발병은 매우 광범위하며 복잡한 양상을 띠는 이례적인 사건이며 다른 국가에도 전파될 위험이 크다고 결론 내렸다”며 “긴급 위원회가 만장일치로 비상사태를 선언하도록 권고해 이에 따르기로 했다”고 발표했습니다.

◇2016년 지카 바이러스

지카 바이러스 유행지역인 브라질에서 한 산모가 소두증에 걸린 아이를 안고 진료를 기다리고 있다. 브라질=연합뉴스

2016년 2월 1일 WHO는 신생아에게 소두증(小頭症)을 유발할 수 있는 지카 바이러스의 확산이 이례적인 사례라고 보고 비상사태를 선포했습니다. 마거릿 챈 당시 WHO 사무총장은 “모기를 통해 전파되는 지카 바이러스가 신생아 출산에 소두증 등을 유발하는지 결정적인 증거는 아직 없지만, 사태의 위협 수준이 매우 심각하다”며 “여행이나 교역에 대한 금지는 필요하지 않지만, 국제적인 신속한 공동대응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말했습니다.

모기가 옮기는 지카 바이러스는 신생아 소두증과 뇌 신경 장애를 유발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브라질에서 2015년 10월 이후부터 총 3,893건의 신생아 소두증 의심 사례 보고되기도 했습니다. 2016년 1월에는 중남미 각국이 임신 자제를 촉구하는 상황에 이르기도 했습니다.

◇2019년 콩고민주공화국 에볼라 바이러스

민주콩고공화국에서 에볼라 바이러스가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2018년 5월 20일 음반다카의 병원에서 국경없는 의사회 소속 회원들이 에볼라 감염환자 치료 준비하는 모습. AP=연합뉴스

2014년에 이어 다시 돌아온 에볼라 바이러스는 2018년 5월부터 2019년 7월쯤까지 콩고민주공화국 북키부주와 이투리주를 중심으로 유행한 전염병입니다. 이 기간 내 2,522명의 환자가 발생했고 1,676명이 사망했습니다. 2019년 7월 18일 WHO는 콩고민주공화국 동부지역 최대도시인 고마시에서 확진 환자가 발생함에 따라 조직화된 국제적 대응이 요구된다면서 에볼라 바이러스에 대한 비상사태를 선포한다고 밝혔습니다.

박민정 기자 mjmj@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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