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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기업 2.0] 그레이프랩 “사탕수수 껍질ㆍ커피 찌꺼기 재료로 한 독서대, 발달장애인 손으로 만들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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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기업 2.0] 그레이프랩 “사탕수수 껍질ㆍ커피 찌꺼기 재료로 한 독서대, 발달장애인 손으로 만들죠”

입력
2020.02.03 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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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 거치대ㆍ달력ㆍ조명 등 친환경 재생지 사용해 제품 제작

뉴욕문구박람회서 극찬 세례

김민양 그레이프랩 대표가 지난 달 서울 용산구 사무실에서 재생지로 만든 독서대 ‘g.스탠드’를 소개하고 있다. 서재훈 기자 spring@hankookilbo.com
김민양 그레이프랩 대표가 지난 달 서울 용산구 사무실에서 재생지로 만든 독서대 ‘g.스탠드’를 소개하고 있다. 서재훈 기자 spring@hankookilbo.com

“사탕수수 껍데기, 버려진 잡지책, 가죽 부산물, 과일 찌꺼기까지, 이런 게 모두 우리 제품의 훌륭한 재료가 됩니다.”

영하 10도의 거센 한파가 몰아쳤던 지난달 13일, 서울 용산구 ‘그레이프랩’ 사무실 겸 작업실에서 김민양 대표는 회사 소개를 하는 내내 밝은 웃음을 잃지 않았다. 66㎡ 정도의 크다면 크고, 작다면 작은 작업실 안은 ‘종이접기’에 여념이 없는 직원들 온기로 가득했고, 김 대표는 그레이프랩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에 자신의 따사한 열정을 한 가득 담아 풀어냈다.

그레이프랩은 재생지를 사용해 상품을 만들어내는 사회적기업이다. 재생지란 나무를 베지 않고 만든 비목재지, 즉 사탕수수나 코코넛 껍데기, 과일 찌꺼기, 가죽 부산물 등으로 만든 종이다. 나무를 베지 않고 얻어내는 종이를 재료로 쓰니, 당연히 만들어지는 제품도 친환경 제품일 수밖에. 그래서인지 김 대표는 그레이프랩을 ‘친환경 사회적 기업’이라고 자신 있게 소개했다.

그레이프랩의 대표 상품은 재생지 한 장을 접어 만든 독서대(g.스탠드)와 노트북 전용 거치대(g.플로우)다. 두 제품 모두 접착제나 스테이플러 같은 환경에 유해한 것들은 전혀 사용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내구성이 약한 것도 아니다. 무게는 각각 95g, 45g에 불과한데, 5~10kg의 책이나 노트북을 거뜬히 지탱할 수 있을 만큼 ‘튼튼하다.’

재생지를 접어서 만든 노트북 거치대 ‘g.플로우’. 그레이프랩 제공
재생지를 접어서 만든 노트북 거치대 ‘g.플로우’. 그레이프랩 제공

김 대표는 “종이 한 장은 세울 수 없지만 이를 구조화하면 축이 생기고 그 축이 힘을 받아 버티고 균형을 잡는 원리”라고 설명했다. 게다가 잘 관리하면 2년 이상도 충분히 쓸 수 있다고 덧붙였다. 코팅 등 화학처리를 전혀 하지 않았기 때문에 쓰임이 다하고 나면 다시 한 장의 종이가 돼 흙으로 돌아간다. 그는 “커피숍 등에서 많이 쓰는 종이컵은 코팅이 돼 있기 때문에 대부분 재활용되지 않고 일반 쓰레기로 버려지고 있다”며 “우리 제품은 생산부터 소멸 단계까지 환경을 고려해 만든 것”이라고 덧붙였다.

g.스탠드는 지난 해 5월 미국 뉴욕에서 열린 ‘뉴욕문구박람회(NSS)’에서 극찬을 받았다. 김 대표는 “4일 간 박람회 기간 동안 우리 부스가 가장 흥미진진하고 ‘핫(Hot)’한 곳이란 찬사를 받았다”며 “뉴요커들은 제품 디자인에 먼저 반했고 물건들의 제작 과정 이야기에 더 환호했다”고 미소를 지었다. g.스탠드는 국내는 물론 유럽, 일본, 중국 등 5개국에 디자인 등록을 마쳤다.

그는 자신의 철학을 ‘빼기의 미학’과 ‘더하기의 미학’이라고 표현했다. 빼기의 미학은 최소한의 자원과 기술로만 제품을 디자인한다는 의미, 더하기의 미학에는 사회 주류에서 벗어난 다양한 사람들과 함께하는 기업을 지향한다는 의지가 담겨 있다고 설명했다.

그레이프랩이 만들어내는 친환경 제품들은 모두 발달장애인 손에서 탄생한다. 직원 10명 가운데 절반이 넘는 6명이 발달장애인이다. 이들은 자신이 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서 주 1~4회 출근한다. 시급은 1만~1만2,000원이다. 여기에 종이 위에 그림을 그리는 디자인 담당 장애인에게는 별도의 사용료가 지급된다.

또 다른 주력 제품인 ‘g.플래너’에도 재생지가 사용된다. 접었을 때는 손바닥보다 작지만 펼치면 지도처럼 커진다. 역시나 환경에 유해한 화학물질 등은 제작 과정에서 배제가 됐는데, 표지 딱 한 장에 유일하게 접착제를 사용한다고 김 대표는 털어놨다.

g.플래너는 일반 플래너와 달리 12개월로 나뉘어져 있는데 1월은 사탕수수 껍데기, 2월은 커피 찌꺼기, 3월은 버려진 잡지책 등 월별로 쓰인 재생지 소재가 다르다. 1~12월 첫 장에는 종이의 원료에 얽힌 사연과 삽화가 실려 있다. 김 대표는 “사람들이 좀 더 쉽게 재생지를 이해할 수 있도록 매월 각기 다른 재생지의 스토리를 입힌 것”이라며 “두껍고 무거워 들고 다니기 불편한 일반 플래너의 단점도 보완했다”고 소개했다.

재생지로 만든 ‘g.플래너’. 그레이프랩 제공
재생지로 만든 ‘g.플래너’. 그레이프랩 제공
g.플래너는 접었을 때는 손바닥보다 작지만 펼치면 지도처럼 커진다. 그레이프랩 제공
g.플래너는 접었을 때는 손바닥보다 작지만 펼치면 지도처럼 커진다. 그레이프랩 제공

재생지를 둥글게 말아 그 안에 태양광 패널을 넣은 ‘페이지 라이트’도 있다. 책 사이에 끼우면 책갈피인데 어두운 곳에서는 독서등으로도 쓸 수 있는 ‘재미가 담긴’ 제품이다. 낮에 5시간 정도 태양광 충전을 하면 밤에 3시간 정도 사용 가능하다. 김 대표는 “형광등을 완벽히 대신할 수는 없지만 전기를 사용하지 않고 자연의 힘만으로 사는 경험을 쌓게 해 주는 제품”이라고 소개했다.

그레이프랩 법인이 설립된 게 2018년 3월인데 이처럼 기발한 아이디어 덕에 현재 보유하고 있는 지적재산권만 20개가 넘는다. 그는 “재생지뿐 아니라 앞으로는 재생 플라스틱을 활용한 상품도 내놓을 계획”이라며 “지속 가능한 디자인이 환경문제 해결의 실마리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윤태석 기자 sportic@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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