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일 일본군 ‘위안부’의 존재를 세상에 알리고 평생을 인권운동가로 활동해 온 김복동 할머니의 1주기를 맞지만 여전히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표류 상태다. 설 연휴를 앞둔 지난 23일 또 한 명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가 사망하면서 피해자 총 240명 중 현재 19명만이 남았다.
정부는 기본적으로 일본의 진지한 사과와 피해자의 존엄회복이 경제적 배ㆍ보상보다 중요하다는 입장이지만, 지난해 한일 무역 갈등 상황에서는 배상을 통한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이 한국의 선제적 카드로 고려되기도 했다.
지난해 문희상 국회의장이 한일 양국 기업과 국민의 성금으로 피해자들에게 위자료를 주면 피해자는 전범기업에 어떠한 소송도 제기할 수 없는 내용을 담은 ‘기억ㆍ화해ㆍ미래재단 법안’(일명 문희상안)을 제안한 후 국내 각계 시민단체와 전문가들로부터 ‘강제동원 피해자의 인권을 짓밟고 일본에 면죄부를 주는 법안’이라는 강한 비판을 받고 적용 대상자에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만 제외한 채 국회에 발의한 바 있다.
올해로 국내에서 처음으로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공론화한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2018년 ‘일본군성노예제 문제 해결을 위한 정의기억재단’과 통합, ‘일본군성노예제 문제 해결을 위한 정의기억연대’로 재조직)가 창립 30년을 맞았지만 그간의 연구와 활동이 체계적으로 정리되지 못한 현실도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이나영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정의기억연대와 같은 시민단체가 자체적으로 연구와 활동을 체계화해 제공하기에도 힘이 부치고, 정부는 그동안 시민단체의 활동을 따라오던 입장이다 보니 사람들이 위안부 문제를 많이 안다고 생각하지만 정치인들조차 관련 논문 한편 제대로 읽어보지 않은 사람이 상당수일 정도”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시민단체에만 맡겨놓을 것이 아니라 정부가 주도해 체계적으로 집합적인 지식을 쌓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정부 차원에서도 이러한 문제의식에 근거해 일본군 ‘위안부’ 관련 자료수집과 체계화를 목표로 2018년 8월 일본군 위안부 문제 연구소(한국여성인권진흥원 산하)를 출범시켰다. 하지만 연구소는 초대 소장인 김창록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취임 3개월만에 사의를 표하는 등 시작부터 삐걱거렸다. 올해도 아카이브 오픈 등을 목표로 1억 9,800만원의 예산이 책정돼 있으나 실효성 문제가 계속해서 지적되고 있다.
여성가족부 관계자는 “현재 일본군 위안부 문제연구소는 법적 근거도 없고 해마다 공모를 통해 사업기관을 선정해야 하기 때문에 안정적인 사업을 할 수 있는 구조가 아니다”고 설명했다.
법적 근거를 갖고 장기적인 연구를 지원하기 위해 지난해 8월 국회 여성가족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정춘숙 의원은 ‘여성인권 평화재단’ 설립을 골자로 한 ‘일제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보호ㆍ지원 및 기념사업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발의했다. 하지만 해당 법률은 국회 상임위원회에서 계류된 상태다.
이 교수는 “정부가 식민지 시기에 일어난 전시 성폭력 문제를 연구하는 일을 주도적으로 끌고 나가는데 있어 미국과 일본의 눈치를 보고 있는 것”이라며 “1990년대 초반의 김복동 할머니의 일본군 ‘위안부’ 증언과 운동은 국내 성폭력처벌법도 없고 유엔 가입도 되어있지 않던 때 나온 놀라운 문제제기였다. 정부는 ‘위안부’ 운동의 역사와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고 연구와 의미를 확산하는데 기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소영기자 sosyou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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