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재를 길러 내는 시스템은 외면하고
깜짝 발탁 이벤트에 승부 거는 정치
‘인턴 헌법기관’ 오명 언제나 벗을까
지난달 26일 더불어민주당 인재 영입 1호 최혜영 강동대 교수(앞줄 가운데)의 입당 기자회견. 이해찬 대표는 손가락 움직임이 불편한 최 교수가 손가락 하트 대신 손바닥 하트를 그려 보인 걸(위 사진) 뒤늦게 알아채고 하트 모양을 바꾸는 ‘배려’를 했지만, 선천적 장애인 폄훼 발언으로 구설에 올랐다. 홍인기 기자

디지털 기술의 발전이 거친 속도로 우리의 일상을 송두리째 바꿔 놓고 있는 시대에 유독 기시감을 확대재생산하는 분야가 있다. 정치다. 갈등과 반목으로 점철된 한 해를 마감하고 맞은 새로운 10년의 첫해, 더구나 새로운 국민의 대표를 뽑는 총선을 앞두고 있건만, 세기말의 우울을 호소하는 이들이 적잖다. 리베카 솔닛은 “희망은… 미래는 아직 씌어지지 않았고 그 내용이 일부 우리에게 달려 있는데도 꼭 미래의 일을 다 아는 것처럼 생각하지 않는다”고 설파했지만, 총선체제에 돌입한 여의도 발 뉴스는 그 말에 기대 부스러기 희망이라도 찾아 쥐려는 마음을 자꾸 무너뜨린다.

‘인재 영입’ 이벤트도 그런 뉴스 중 하나다. 제1야당이 시대에 역행하는 영입 1호 논란 이후 주춤하고, 다른 야당들이 총선을 코앞에 두고도 여전히 ‘헤쳐 모여!’에 골몰하고 있는 사이, 더불어민주당은 10여명의 영입 인재를 발표했다. 역경을 헤쳐 온 여성, 장애인, 청년, 강직한 판검사 출신 등 인물들의 면면은 꽤 참신하고 당 지도부가 시대의 기후를 읽어 내려 고심한 흔적도 엿보인다. 그러나 딱 거기까지다. 그들의 인생사가 감동적이라고 해서 그들이 펼쳐 갈 정치가 감동적일 거라고 기대하기는 어렵다. 영입 발표 기자회견에선 그들이 각자 삶의 영역에서 일궈낸 빛나는 성취에 대한 상찬만 가득했지, 그 성취를 어떻게 정치에 녹여 내 무엇을 얼마나 살리고 바꿀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인 비전은 보이지 않는다. 요컨대 정치를, 인재를 대하는 철학의 빈곤이 문제다.

아니나다를까. 이해찬 민주당 대표는 사고로 척수장애인이 된 영입 1호 최혜영 교수와 경력단절을 딛고 성공한 홍정민 변호사를 칭찬한답시고 선천적 장애인과 자신의 딸을 비롯한 경력단절 여성을 폄훼하는 망언을 해 구설에 올랐다. 사회적 약자의 삶을 개선하겠다며 ‘인재’를 모셔 놓고 이들의 목소리를 누르고 옥죄어 온 ‘불굴의 의지’와 ‘노오오~력’ 타령을 무람없이 내뱉는 당 대표라니! 이쯤 되면 말실수가 아니라 사회적 약자에 대한 비뚤어진 인식이 뿌리깊게 박혔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더 근본적인 문제는 선거철마다 되풀이되는 ‘인재 영입’ 이벤트 그 자체다. “정치는 누구나 할 수 있다. 그러나 아무나 해서는 안 된다”는 경구는 도덕성이나 특정 분야 전문성에만 적용되는 말이 아니다. 정치의 본질은 한정된 사회적 자원의 배분을 둘러싼 갈등을 해소하는 것이며, 오케스트라 지휘자에 비견되는 종합적이고 수준 높은 리더십이 뒷받침돼야 한다. 좋은 정치인은 ‘백마 탄 초인’처럼 어디선가 짜잔~ 하고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오랜 시간 경험과 훈련을 통해 길러지는 것이다. 정치할 뜻조차 없었다는 사람을 ‘삼고초려’해 모셔 오는 것은 결코 미담이 아니다. 정당 스스로 인재를 길러 내는 데 실패했거나 길러 낼 능력조차 없음을 자인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정치컨설턴트 박성민은 대담집 ‘정치의 몰락’(2012)에서 “정치가의 충원 시스템은 고장 난 것이 아니라 아예 없다”며 국회를 일러 ‘인턴 헌법 기관’이라 칭했다. 실제로 국회 초선의원 수는 17대 187명(62.5%), 18대 133명(44.5%), 19대 148명(49.3%), 20대 132명(44%)에 달했다. 20대 국회에서 재선에 성공한 이는 70명뿐이다. 일 좀 할 만하면 또다시 떠들썩하게 영입된 인재를 비롯한 정치 신인에 자리를 내줘야 하는 웃픈 현실에서 소신과 능력을 갖춘 정치인이 길러질 리 없다.

어쭙잖게 미디어 ‘전략’을 고민하는 업무를 맡아 일하는 동안 줄곧 곱씹게 되는 말이 있다. 미래는 예측하는 것이 아니라 비전을 갖고 만들어 가는 것이라는 말이다. 그러려면 미래를 만들어 갈 인재를 발견하고 키우는 체계적인 시스템과 건강한 조직문화가 필수다. 일개 조직도 그럴진대 국민을 대표한다는 헌법기관에서 유효기간 4년짜리 ‘인재 영입’ 쇼를 지겹게 재방송하는 것을 언제까지 지켜봐야 하는가. 삼고초려 하는 정성의 반의 반만이라도 쏟아 인재 양성 시스템부터 갖추라.

이희정 미디어전략실장 jay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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