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사이 일상에서 달라진 풍경이 있다면, 기술변화에 관한 것들이다. 승객이 위치를 입력하면 택시가 찾아오고, 호출받은 택시가 어디쯤 왔는지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다. 배달음식을 시켜 먹을 때도 가게에 직접 전화하기보다 배달 플랫폼을 통해서 주문하고 결제한다. 또 스마트폰을 통해 내가 얼마나 걸었는지, 어떤 운동이 필요한지, 현재 내 상태는 어떤지 단백질, 근육, 체중 등을 측정할 수 있다.
이러한 변화는 건강, 소비, 교통 등 각각 다른 영역에서 이루어지지만, 개인의 데이터를 수집한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지닌다. 사람들이 어떤 시간 때에 어떤 경로로 이동하는지, 특정 계절이나 시간에는 어떤 음식을 많이 먹는지, 또 나라별로 혹은 인종별로 어떤 행동 양식을 취하는지 우리의 일상은 데이터로 축적되고 분석된다. 관습, 취향, 행동은 데이터라는 자원으로 활용되고, 택시와 배달 음식의 변화처럼 이전과 다른 생활양식을 만들어 내기도 한다.
정부 새해 업무 보고에서, 첫 순서로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방송통신위원회가 4차 산업을 통한 경제 혁신을 발표했다. 이른바 DNA(데이터(Data), 5G(Network), 인공지능(AI)) 분야의 규제를 완화하면서 경제 침체를 돌파하겠다는 것이다. 데이터 산업 시장은 10조원 대로 커질 전망이고, 인공지능에 관한 인재 양성에도 힘쓰겠다고 했다. 대통령의 말을 빌리면, “정보기술(IT) 강국을 넘어 AI 강국으로 도약할 충분한 잠재력이 있다. 잠재력을 현실로 끌어내는 게 정부가 할 일”이다. IT 강국이라는 자부심을 다시금 재현하려는 국가 기획으로 읽힌다. 과거와 다른 점이 있다면, ‘사회적 가치’, ‘혁신 성장’이라는 사회적 기치가 ‘데이터 강국’이라는 국가 전략과 만난다는 점이다.
하지만 정부가 사회적 언어를 차용하더라도, 정작 중요한 인권, 윤리 등의 사회적 문제는 논의조차 되지 않고 있다. 최근 통과된 데이터 3법(개인정보보호법, 신용정보보호법, 정보통신망법)은 데이터 사회로 전환에 필요한 제도적 기틀을 마련해 주었다. 이 법안에는 특정인을 식별하는 정보를 가공한 ‘가명정보’ 활용이 포함되어 있다. 그동안 개인정보는 특정인을 판별할 수 있는 고유한 정보이기 때문에 개인 동의 없이 활용될 수 없었다. 반면에 가명정보는 동의 없이도 특정인을 식별하는 정보만 가공한다면 활용될 수 있다.
아무리 가공된 정보라고 하더라도 특정 변수를 조합하면 개인을 식별할 수 있다는 문제가 남는다. 데이터의 개방은 필연적으로 개인정보 보호와 충돌하기 때문이다. 최영애 국가인권위원장이 정보인권 보호 논의가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법률 개정이 된 상황에 대해 우려를 표명한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특히 한국은 주민등록번호라는 개인식별번호가 있기 때문에 가명정보를 활용 과정에서 개인정보가 오남용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데이터가 중요한 자원이 된 시대임은 부정할 수 없다. 정부는 이 자원이 지닌 가능성으로 세계적인 경쟁력을 키울 수 있는 것으로 전망하고 선전하지만, 그것이 일상에 미치는 영향은 그리 긍정적이지만은 않다. 개인이 만들어낸 데이터를 어떻게 수집하고 처리하느냐에 따라서 데이터는 통제의 수단으로 활용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일례로, 중국에서는 안면인식 기술을 활용해서 무단횡단하는 사람을 적발하거나 벌점을 매긴다.
삶은 단순히 편의성과 기술혁신만으로 구성되지 않는다. 기술이 발전하고, 스마트한 사회가 된다고 해서 모든 이의 삶이 윤택해지는 것도 아니다. 데이터와 개인정보 규제 완화가 미칠 영향에 대해 배제하고 무시하는 상태에서 만들어진 사회는 여러 문제를 초래할 것이다. 공학자와 기업, 정부에만 나의 삶과 미래를 맡길 수는 없다. 지금부터라도 이런 논의를 해야 한다. 이 또한 정부가 할 일이다.
천주희 문화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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