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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아닌 척 제국주의’, 결국 미국 발목 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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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아닌 척 제국주의’, 결국 미국 발목 잡는다

입력
2020.01.17 04:40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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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스스로 제국이 아니라 주장한다. 식민지를 점령하지 않았다는 게 그 이유다. 하지만 미국은 자국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무력 전쟁도 불사한다. 최근에는 이란의 군 사령관을 기습 공격해 위기가 고조되기도 했다. 2018년 이란의 수도 테헤란에서 이란 사람들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이란 핵 합의 탈퇴 선언을 규탄하며 성조기를 불태우고 있다. 테헤란=AP 연합뉴스
미국은 스스로 제국이 아니라 주장한다. 식민지를 점령하지 않았다는 게 그 이유다. 하지만 미국은 자국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무력 전쟁도 불사한다. 최근에는 이란의 군 사령관을 기습 공격해 위기가 고조되기도 했다. 2018년 이란의 수도 테헤란에서 이란 사람들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이란 핵 합의 탈퇴 선언을 규탄하며 성조기를 불태우고 있다. 테헤란=AP 연합뉴스

“우리는 다른 나라의 땅을 탐내지 않는다. 미국은 제국주의 국가가 아니다.”

이라크 전쟁을 규탄하는 목소리가 터져 나오자 미국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짜증을 부리며 한 말이다. 전 세계 정치와 경제를 좌우하는 최강대국인 미국은 유독 ‘제국’이란 말에 알레르기 반응을 보인다. 미국 스스로 반(反) 제국주의 항쟁 속에 성장해왔다는 자부심 때문이다. 대영제국부터, 히틀러의 천년 제국 라이히, 일본 제국, 소비에트연방까지. 여러 제국과 맞서 싸워온 역사적 결정체가 연방공화국, 미국이라는 게 철썩 같은 믿음이다.

‘미국, 제국의 연대기(원제: How to Hide an Empire: A History of the Greater United States)’는 그 자부심이 얼마나 위선적인지 파헤치는 책이다. 대니얼 임머바르 노스웨스턴대 역사학과 부교수는 ‘영토(territory)’라는 관점으로 미국 제국주의의 숨겨진 민낯을 들춘다. 책은 미국 초기 원주민 개척부터 시작해 미국이 벌인 전쟁과 확장의 역사를 좇는다.

우리가 아는 세계 최강대국 미국은 북아메리카 지역 50개 주로 이뤄졌다. 그러나 이건 미국 본토에 한정한 규모다. 본토 바깥에는 미국이 관할하는 영토가 더 있다. 푸에르토리코, 괌, 미국령 사모아, 미국령 버진아일랜드, 북마리아나 제도 등 태평양과 카리브해에 퍼져 있는 섬들이다. 한때 미국 역사에서 본토보다 영토의 인구수가 더 많았던 적도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미국인들조차 이 사실을 잘 알지 못한다. 그것들이 미국의 영토라고 하는 걸 극도로 꺼려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미국인이 가진 미국 국토에 대한 이미지는 정치학자 베니딕트 앤더슨이 '로고 지도'라고 부른 이 같은 그림이다. 그러나 이는 잘못됐다. 미국의 영역을 정확히 나타내려면 알래스카, 하와이는 물론 푸에르토리코, 미국령 사모아, 괌과 같은 곳까지 포함해야 한다. 글항아리 제공
대부분의 미국인이 가진 미국 국토에 대한 이미지는 정치학자 베니딕트 앤더슨이 '로고 지도'라고 부른 이 같은 그림이다. 그러나 이는 잘못됐다. 미국의 영역을 정확히 나타내려면 알래스카, 하와이는 물론 푸에르토리코, 미국령 사모아, 괌과 같은 곳까지 포함해야 한다. 글항아리 제공
1941년 기준 '확장된 미국(Greater United States)' 지도. 알래스카, 괌, 미국령 사모아, 필리핀, 하와이, 푸에르토리코, 미국령 버진아일랜드, 태평양 외딴섬 등을 모두 포합시켰다. 글항아리 제공
1941년 기준 '확장된 미국(Greater United States)' 지도. 알래스카, 괌, 미국령 사모아, 필리핀, 하와이, 푸에르토리코, 미국령 버진아일랜드, 태평양 외딴섬 등을 모두 포합시켰다. 글항아리 제공

이를 두고 저자는 ‘업그레이드된 식민정책’이라 일갈한다. 드러나지 않는, 은밀한 영토 확장이 미 제국주의의 핵심이란 설명이다.

과거 영국이나 프랑스 등 유럽의 제국은 식민지를 점령하고, 직접 통치하고, 주민들을 동화시키려 했다. 미국은 정반대였다. 미국은 영토와 그 곳 사람들을 존재하지 않는 유령처럼 대했다. 그들에게 투표권도 주지 않았고, 아예 연방으로 편입시켜 달라는 목소리도 외면했다. 그러면서 본토의 이익을 위해 철저히 이용했다. 해조분과 백금 같은 다양한 자원을 획득하거나, 각종 의학 기술을 증진시키기 위한 생체 실험 기지로 활용했다. 푸에르토리코가 미국 의료진의 피임약 실험 무대였단 걸 아는 미국인들은 많지 않다.

20세기 들어 미국은 신(新) 제국주의 정책을 펼친다. 표준화와 미군기지가 핵심 전략이었다. 표준을 제정한다는 건, 머나먼 땅에서도 식민 지배의 관행을 지킬 수 있다는 얘기다. 나사 같은 조그만 부품부터, 도로 표지판 색깔까지 미국은 국제표준을 무시하고 미국식 기준을 적용해 나머지 국가들이 따라 오도록 했다. 식민지를 점령하지 않고도 지배할 수 있는 방법을 터득한 것이다. 이때부터 식민지화는 세계화로 대체됐다고 책은 설명한다.

미국의 또 다른 제국주의적 면모는 전 세계에 800개 넘게 설치된 미군기지에서 드러난다. 영국과 프랑스, 러시아 등 미국을 제외한 국가가 보유한 해외기지는 모두 합해 봐야 30여개에 불과하다. 미국의 해외 기지 수는 그만큼 압도적이다. 미군 기지가 세계 곳곳 전략적 요충지마다 점처럼 퍼져 있다는 점에서 미군기지는 ‘점묘주의 제국(pointillist empire)’이라 불리기도 한다.

미국, 제국의 연대기

대니얼 임머바르 지음ㆍ김현정 옮김

글항아리 발행ㆍ720쪽ㆍ3만5,000원

속으로는 제국을 추구하면서도, 겉으로는 제국의 지위를 부정하는 미국. 저자는 눈 가리고 아웅하는 식의 이런 전략이 오히려 미국을 더 큰 위험에 빠트릴 거라 경고한다.

단적으로 9ㆍ11 테러는 미국의 ‘기지 제국’에 대한 보복이었다. 당시 미국인들은 9ㆍ11 테러 이후 미국과 멀리 떨어져 있는 저들이 왜 우리를 공격하느냐고 당혹해 했다. 하지만 테러를 일으킨 오사마 빈 라덴의 메시지는 분명했다. 왜 미국 군대가 우리 나라를 점령하고 있느냐였다. 미국인들에게 아프간이나 사우디는 아무 상관 없는 지역일지 모르지만, 빈 라덴에게 미국은 먼 나라가 아니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미국 본토에 사는 미국인들에게 미국은 제국이 아닐 수 있다. 하지만 그건 미국만의 착각이자 오만이라는 걸 깨닫게 해주는 책이다. 미국은 미국 본토보다 그 바깥에 더 많이 존재한다.

강윤주 기자 kka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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