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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세 할머니, 분홍색 공주풍 드레스 입던 유년을 추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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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세 할머니, 분홍색 공주풍 드레스 입던 유년을 추억하다

입력
2020.01.17 04:40
2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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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화가 로즈 와일리 개인전

사전 드로잉을 판화에 옮겨

권순학, 로즈 와일리와 대화, 144x183㎝, 2020. 초이앤라거 갤러리 제공
권순학, 로즈 와일리와 대화, 144x183㎝, 2020. 초이앤라거 갤러리 제공

스물 한 살, 이른 나이에 결혼했다. 미술을 전공했으나 주부가 됐다. 장애가 있는 아이까지 돌보며 오랜 시간 미술과 멀어졌다. 그러나 요리, 청소, 육아의 일상 속에서도 틈틈이 드로잉 노트에다 그림을 그렸다. 그렇게 쌓인 그림들이 6만장.

이 그림들이 세상 밖으로 나오기 시작한 건 1981년, 그의 나이는 47세 때였다. 은은히 번져나가던 잔잔한 반향이 어느 순간 폭발하더니 2010년 영국 가디언지는 ‘일흔 여섯살 할머니’인 로즈 와일리를 ‘영국에서 떠오르는 가장 핫한 작가’로 소개했다. 그리고 10년이 지나 여든 여섯이 된 지금도 와일리 할머니는 여전히 주목받는 작가다.

이 와일리 할머니의 개인전 ‘내가 입던 옷(Clothes I wore)’이 서울 삼청동 초이앤라거 갤러리에서 다음달 18일까지 열린다. 올해 말 서초동 예술전당에서 있을 작가의 대규모 회고전을 앞둔 전초전 성격의 전시다. 이번 전시에 주로 선보이는 작품들은 사전 드로잉 작업을 확대해 옮긴 판화 시리즈다.

로즈 와일리, 코르셋, 2019, 120x80㎝. 초이앤라거 갤러리 제공
로즈 와일리, 코르셋, 2019, 120x80㎝. 초이앤라거 갤러리 제공
로즈 와일리, 노란 수영복, 2019, 120x80㎝. 초이앤라거 갤러리 제공
로즈 와일리, 노란 수영복, 2019, 120x80㎝. 초이앤라거 갤러리 제공

와일리 할머니에게 드로잉 노트는 모든 작품의 출발점이다. 드로잉을 하지 않고 바로 작업한 그림은 없다. 손바닥보다 조금 더 크다는 노트에 작가는 무엇이든 떠오르는 대로 그렸다. 무슨 의미인지 도통 알 수 없게 휘갈겨 쓴 단어들도 있다.

작가의 일기장 같은 드로잉을 크게, 제대로 보여주기 위해 독일의 유명한 판화 워크샵에다 작업을 맡겼다. 1층엔 노란 수영복을 입은 자화상 한 점이 있고, 그 외엔 모두 드로잉이다. 작가 그림의 출발점을 확인해볼 수 있도록 해둔 것이다.

로즈 와일리, 푸른, 120x80㎝. 초이앤라거 갤러리 제공
로즈 와일리, 푸른, 120x80㎝. 초이앤라거 갤러리 제공

그림들은 서너 살짜리 아이가 장난 삼아 그렸다고 할만한 수준이다. 실제 와일리 작품에는 “유아스럽고 순진하다”는 평이 따라 붙는다. 하지만 정말 유아스러운 건 아니다. 미술 교육을 정식으로 받은 작가라서 미술사적 지식, 드로잉 기술도 충분하다. 와일리 할머니 스스로도 “청소하듯 설거지하듯 대충 그린 것 같지만, 정성 들여 붓질을 했다”고 말한다.

그렇지만 작가는 오로지 자신만의 방식으로 자신의 기억과 경험을 표현해내고 싶어했다. 그래서 ‘내가 입던 옷’ 시리즈는 모두 작가 자신이 주인공이다. 분홍색 공주풍 드레스를 입은 그림은 “어릴 때도 스스로를 이렇게 그리지 않았을까” 생각하게끔 한다. 해변가에서 입은 노란 수영복, 가난했던 시절 열심히 돈 모아 구입했다는 예쁜 옷 등 모든 그림엔 작가의 추억이 들어가 있다.

권순학, 로즈 와일리와 대화, 288x223㎝, 2020. 초이앤라거 갤러리 제공
권순학, 로즈 와일리와 대화, 288x223㎝, 2020. 초이앤라거 갤러리 제공

여든 여섯, 그림 그리기 딱 좋은 나이의 이 할머니는, 아쉽게도 한국에 오지 못했다. 오랜 비행을 우려한 의사들의 만류 때문이다. 하지만 권순학 작가가 사진으로 와일리의 초상과 작업실 풍경을 보여준다.

이정원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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