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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 ‘있는 이’를 위한 정부

입력
2020.01.15 18:00
수정
2020.01.15 18:09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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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값 폭등, 주택 있는 이 없는 이 모두 불만

최저임금ㆍ52시간, 직장ㆍ노조 있는 이 혜택

진보 정권인데 아무것도 없는 이 가장 고통

청와대가 연일 부동산 시장에 대한 공세를 강화하고 있는 가운데 주택거래허가제 도입을 검토해야 한다는 발언까지 나와 초유의 고강도 부동산 대책이 나오는 것 아니냐는 시각이 제기된다. 15일 오후 서울 송파구 일대 아파트 단지의 모습. 연합뉴스
청와대가 연일 부동산 시장에 대한 공세를 강화하고 있는 가운데 주택거래허가제 도입을 검토해야 한다는 발언까지 나와 초유의 고강도 부동산 대책이 나오는 것 아니냐는 시각이 제기된다. 15일 오후 서울 송파구 일대 아파트 단지의 모습. 연합뉴스

다를 줄 알았다. 그래도 ‘있는 이’보다는 ‘없는 이’를 챙길 것으로 기대했다. 촛불혁명으로 집권한 진보 정권인 만큼 적어도 이명박 박근혜 보수 우익 정부보다는 약자 편에 설 것으로 믿었다. 그러나 갈수록 실망만 커지고 있다. 지금껏 문재인 대통령과 이 정부가 한 일을 돌아보면 ‘없는 이’보다는 오히려 ‘있는 이’의 이익을 공고히 했다는 생각을 지우기 힘들다. 아니 있는 이와 없는 이 양쪽에서 모두 욕을 먹고 있다는 게 더 정확할 것이다. 도대체 누굴 위한 정부인가.

먼저 집값 폭등. 결과만 보면 ‘집 있는 이’를 위한 보수 정부 아니냐고 착각할 정도다. 이전 정부가 그토록 애를 썼음에도 성공하지 못한 ‘부동산 시장 부양’을 이 정부는 이미 해냈다. ‘집 있는 이’들은 몇 년 만에 수억원씩 자산 가치를 올려준 정부에 절이라도 해야 할 판이다. 그럼에도 현실은 딴판이다. ‘가진 자’는 하나같이 문 대통령을 비판한다. 재산세와 종합부동산세가 급증했기 때문이다. “세금 걷으려고 집값 올린 거냐” “매달 수백만원씩 정부에 월세 내고 살 판”이라며 이를 간다.

더 큰 문제는 전세 보증금과 월세까지 들썩이고 있다는 점이다. ‘가진 자’의 집에 세 들어 사는 ‘없는 이’의 부담까지 커지고 있다. 지하철과 버스 환승 요금까지 아껴가며 차곡차곡 부은 적금이라도 깨서 오르는 보증금에 보태야 할지 모른다. 내 집 마련 꿈도 멀어졌다. 없는 이를 위한 주택 정책을 펼 줄 알았는데 강남 다주택자와 투기 세력을 잡겠다며 총력을 기울이다 집이 있는 이와 없는 이 양쪽 모두 고통스러운 상황만 만들었다.

최저임금 인상도 비슷하다. 최저임금 시급은 3년 새 33%가 올라 올해 8,590원이다. 얼핏 보면 ‘없는 이’를 위한 정책 같다. 국가가 저임금 근로자를 보호하기 위해 임금 하한선을 정하고 이를 강제하는 것에 토를 달 사람은 없다. 그러나 놓친 부분이 있다. 우리 사회엔 최저임금을 받는 근로자보다 더 어려운 최하층 약자도 많다는 사실이다. 무직자와 실직자가 그들이다. 일자리가 없는 이의 입장에서 보면 저임금 근로자는 그래도 ‘직장은 갖고 있는 이’다. 그런데 이 정부는 사회적 최약자보다는 사정이 나은 ‘이미 일자리가 있는 이’를 더 챙겼다.

더구나 최저임금 인상으로 가장 큰 피해를 본 이가 ‘정말 아무것도 없는 이’란 사실은 뼈 아프다. 15일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고용원 있는 자영업자는 11만명 이상 감소한 반면 고용원 없는 자영업자는 8만명 넘게 증가했다. 최저임금 인상분을 고스란히 떠안아야 하는 자영업자들이 더는 견디지 못하고 근로자를 해고한 뒤 나 홀로 일하고 있다는 얘기다. 이렇게 잘린 저임금 노동자가 무직자 그룹에 합류하면서 최약자의 일자리 구하기는 더 치열해졌다.

주 52시간 근무제도 마찬가지다. ‘없는 이’를 위한 듯하지만 이 또한 ‘정말 아무것도 없는 이’의 입장에서 보면 주로 ‘노조가 있거나 여유 있는 기업 근로자’에게 혜택이 돌아간 정책이다. 더 많이 일하는 것으로 그나마 버티고 있는 영세기업이나 노조조차 없는 열악한 작업장에서 묵묵히 근무해야 하는 ‘없는 이’의 입장에선 사치로 보일 수도 있다.

문 대통령도 이러한 결과를 의도하진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평가는 선의가 아니라 결과로 내릴 수밖에 없다. 현실과 동떨어진 엉뚱하고 과도한 아마추어 정책이 시장을 왜곡시키면서 ‘있는 이’는 물론 ‘없는 이’까지 더 힘들게 하고 있다. 마음만 앞서고 능력은 없다. 지금이라도 진정 ‘아무것도 없는 이’를 위한 정부가 되려면 무엇보다 실사구시의 자세로 접근해야 한다. 민생과 경제는 좌우가 아니라 실력으로 판명이 나는 곳이다. 이분법적 사고로는 문제를 치유할 수 없다. 정책 실패를 자성하고 상황이 더 나빠지는 걸 막는 게 문 대통령의 2020년 과제다. 내 편만 고집할 게 아니라 널리 인재를 중용하는 것도 필요하다.

그러나 신년기자회견에선 이러한 희망을 찾아볼 수 없었다. 여전히 원인을 잘못 짚은 채 남 탓만 했다. 집값을 원상 회복시키겠다는 문 대통령의 선언을 믿기엔 신뢰가 무너진 상태다. 108분의 발언이 헛헛하게 다가온 이유다.

박일근 뉴스2부문장 ikpar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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