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대사회, 신음하는 지구촌] <4> “터질 게 터졌다” 칠레 시위

국영기업 민영화로 중남미 경제 맹주 떠올랐지만 빈부차 극심

지난해 11월 22일 칠레 수도 산티아고 중심지에 위치한 국립미술관 벽면에 시위대가 써놓은 '용서할 수 없다'는 내용의 구호가 새겨져있다. 산티아고=이대혁 기자

‘용서할 수 없다(Imperdonables).’

지난해 11월 22일 찾은 칠레 수도 산티아고의 ‘호세 미겔 데 라 바라’ 거리에 위치한 국립미술관 벽면에 시위대가 세바스티안 피녜라 정권을 향해 써놓은 단어다. 정부의 지하철 요금 30페소(한화 약 50원) 인상 발표를 계기로 기자가 방문하기 한달 여 전(10월 14일) 촉발된 사상 최대 규모 시위가 더욱 격화하고 있는 이유를 보여주는 단어라는 생각이 들었다. 기적적으로 급성장하며 중남미 경제의 맹주였던 칠레에서, 국민들은 왜 이런 극도의 적대감을 보이는 것일까.

 연 평균 7% 성장, 칠레의 기적 

11월 19일 도착해 처음 찾은 곳은 산티아고의 동쪽 라스 콘데스 지역이었다. 대기업을 비롯한 외국계 회사가 밀집한 이 지역에는 30층 안팎의 최신식 고층빌딩이 즐비했다. 우리나라로 치면 여의도나 강남 테헤란로 같은 곳이다. 시위가 한창이었지만, 이곳은 예외로 보였다. 나무 판자로 유리를 가려놓은 카페나 은행들이 간혹 눈에 띄지 않았다면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칠레 시위’를 짐작조차 할 수 없을 만큼 평온했다. 그곳에서 만난 KOTRA 관계자는 “그나마 부유층이 사는 이곳까지는 시위대가 넘어오지 못한다”며 “중남미에서 가장 발전하고 안전했던 칠레가 시위에 몸살을 앓을 줄 예상치 못했다”고 말했다.

실제 칠레는 남미에서 가장 앞선 나라였다. 선진국 클럽이라고 하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남미 유일 회원국이다. 성장의 핵심은 개방과 민영화였다. 1973년 좌파 사회주의 노선의 살바도르 아옌데(1908~1973년) 정부를 쿠데타로 몰아낸 아우구스토 피노체트(1915~2006년)는 경제 살리기에 몰두했다. 이를 위해 미 시카고 학파(시카고 보이즈)를 등용,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을 펼쳤다. 시카고 보이즈는 공공부문을 민영화하는데 주력했다. 국영기업이던 광산을 필두로 수도, 전기, 교육, 연금 등을 줄줄이 민영화했다. 그 결과 1973년 300개에 달했던 국영기업, 공공기관은 1980년 24개로 줄었다. 기업을 위해 규제도 대거 철폐했고, 무역 장벽도 허물었다. 효과는 1980년대 중반부터 나타나, 1985~1997년 사이 칠레 경제는 연평균 7%씩 성장했다. 신 자유주의를 주창한 시카고대 교수 밀턴 프리드먼이 ‘칠레의 기적’이라고 부른 배경이다.

지난해 11월 19일 칠레 수도 산티아고 라스콘데스 지역의 한 할인마트에 시민들이 생필품을 사기 위해 줄을 서있다. 산티아고=이대혁 기자
 살인적인 물가, 싼 것은 인건비뿐 

2018년 칠레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1만6,000달러 안팎이다. 우루과이와 함께 남미에서 가장 높지만 같은 해 우리나라(3만3,400달러)의 절반 수준이다. 하지만 물가는 우리나라보다 더하면 더했지 낮지 않았다. 할인마트에서 500㎖ 물을 샀는데도 우리돈 1,000원 안팎에 달했다. 세계적인 브랜드 S커피 전문점에서 샌드위치를 곁들인 커피도 1만원(6,300페소) 수준이었다. 시위를 촉발한 지하철 요금은 1,300원(800페소)으로, 1,250원인 우리나라보다 저렴하다고 볼 수 없었다. 소득 수준을 생각하면 우리나라 물가보다 2배가 더 비싼 셈인데, 전체 인구의 50%가 월 소득으로 40만페소(64만원) 이하를 버는 점을 감안하면 살인적인 물가다. 최저임금(30만1,000페소)보다 못한 20만~30만페소의 월급을 받는 이들도 전체 노동자의 15%에 달한다. 지하철 요금 30페소 인상이 이들에겐 결코 작지 않은 금액인 셈이다. 산티아고에서 무역업을 하는 한 한인 사업가는 “싼 것은 인건비뿐인데, 이는 부유층이 서민들을 착취했고 정부가 용인했다는 얘기”라고 말했다.

지난해 OECD에 따르면 칠레는 상위 1%가 전체 자산의 25%를 가지고 있다. 상위 10% 소득이 하위 10% 소득의 19배에 달할 정도로 양극화가 심각하다. 빈부 격차가 9배 수준인 우리나라에서 ‘계층 이동의 사다리가 끊겼다’는 말이 나오는 상황임을 감안하면 칠레는 아예 사다리가 없는 셈이다. 시위에 참여하고 있다는 40대 에두아르도 알베르토씨는 “버는 것보다 쓰는 것이 더 많아 빚을 지고 산다”며 “칠레가 잘 산다는 것은 일부 부유층 얘기지 대다수 국민과는 거리가 먼 얘기”라고 분노했다. 이런 양극화에 따른 서민들의 분노가 국가를 마비시킨 시위로 표출됐던 것이다.

칠레 수도 산티아고 바케다노 지하철 역 입구가 한달 넘는 시위로 파괴돼 폐허로 변해있다. 산티아고=이대혁 기자
 극도의 적대감, 폐허가 된 중심지 

11월22일 시위가 맹렬하게 펼쳐지는 산티아고 중심지 바케다노 광장으로 향하는 리베르타도 대로에 접어들자 최루탄 냄새가 코끝을 찔렀다. 한달 넘게 수백만명이 모여 시위를 벌였고 경찰이 강경 대응하면서 남긴 상흔은 최루탄 냄새뿐만은 아니었다. 보도블록 곳곳은 부서져 있었고, 신호등과 거리 표지판들은 고꾸라져 있었다. 바케다노 광장에는 오전에도 시위대 10여명이 전쟁영웅 마누엘 바케다노 장군 동상에 올라 정부를 비판하는 구호를 외쳤다. 그 옆 바케다노 지하철역은 이미 폐허가 돼 입구가 돌무더기로 막혔고, 반대편 경찰서로 향하는 입구 역시 욕설과 ‘정부는 지금 어디 있는가’라는 원망 섞인 구호들이 뒤섞인 채 돌무지무덤처럼 폐쇄돼 있었다.

지난해 11월 22일 칠레 수도 산티아고 바케다노 광장에서 시위대가 마누엘 바케다노 장군 동상에 올라 시위를 하고 있다. 산티아고=이대혁 기자

바케다노 광장에서 피오노노 다리를 건너 칠레대 로스쿨과 산세바스티안대를 지날 때는 고무 타는 냄새가 가득했다. 전날 저녁 경찰에 쫓겨 이곳으로 이동한 시위대가 타이어 등을 태우며 맞섰던 장소였다. 이곳에서 만난 포르헤 카르카스(62)씨는 “평화로웠던 시위가 과격 양상으로 번진 것은 피녜라 대통령이 ‘우리는 전쟁중이다’라고 말한 시점부터”라며 “그의 말에 군대가 탱크를 몰고 거리로 나왔고, 경찰들의 억압도 거세져 시위대가 격하게 반발할 수밖에 없었다”고 옹호했다. 그는 “지금과 같이 정부가 인간으로서 살 수 있는 기본적인 것들을 지원하지 않으면 시위는 계속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카를로스 고메즈 산티아고대 경제학과 교수는 “지난 40년간 빈부 격차가 커지는 상황에서 정부는 아무런 역할도 못했다”며 “국민들이 정부에 대한 신뢰를 완전히 닫아버린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산티아고=이대혁 기자 selected@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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