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벌의 탄생, 대치동 리포트] <4>대학 서열화의 병폐 
과도한 입시 경쟁 탓에 신체적ㆍ정신적 고통을 호소하는 청소년들이 적지 않지만, 대학 서열화에 따른 명문대 간판 따기 전쟁은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겉으로 드러난 증상만 보면 공부 때문에 저럴까 싶었는데, 얘기를 듣다 보면 결국 공부가 근본원인이에요. 학업 스트레스가 쌓이다 보니 거식증이나 섭식장애 등으로 이어진 거죠.”

유혜진 서울시 청소년상담복지센터장은 12일 과도한 입시경쟁으로 인한 스트레스 때문에 고통을 호소하는 중고교생이 줄어들지 않고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학업 스트레스가 유발하는 여러 부작용이 드러났지만, 명문대 입학이라는 현실적 목표에 가려진 탓인지 교실 풍경은 크게 바뀌지 않았다는 뜻이다. 유혜진 센터장은 “극단적 선택을 고민하는 친구들도 더러 있다”며 “잠시 머리를 식히러 거실에 나왔다가 ‘들어가서 공부해’라는 부모의 말 한마디에 방에서 몰래 자해한 경우도 있었다”고 전했다.

실제로 중고교생 10명 중 3명은 ‘죽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있는데, 가장 큰 이유는 학업 문제였다.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의 ‘한국 아동ㆍ청소년 인권실태 2018 총괄보고서’에 따르면 중고교생 6,307명을 대상으로 ‘최근 1년간 죽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있는지’ 조사한 결과 ‘가끔 생각한다’와 ‘자주 생각한다’고 응답한 비율은 33.8%에 달했다. 죽고 싶은 이유로는 학업 부담과 성적 등 공부와 관련한 스트레스가 37.2%로 가장 높았다. 반건호 경희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학업 문제는 해를 거듭해도 압도적인 1위를 차지하고 있다. 시대가 바뀌고 입시제도가 변해도 청소년들에게 여전히 큰 부담이 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특히 학년이 높을수록 극단적 생각을 하는 학생들이 많았다. 중학생은 32%가 죽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고 답했는데, 고등학생의 경우 35.3%로 조사됐다. 유혜진 센터장은 “고교생은 모의고사 점수나 내신등급이 잘 나오지 않으면 좌절하거나 무기력해진다. 점수나 등급이 높게 나와도 주관적 기준으로 평가하는 경우가 많아 불안감이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최근에는 중학생도 ‘좋은 대학에 못 가면 어쩌나’ 하는 불안감을 호소하는 경우가 많아졌다고 유 센터장은 전했다.

수능이 임박하면 교실에서 벌어지는 입시경쟁은 최고조에 달한다. 지난해 수능시험을 치른 권민식(18)군은 “고2 때까지는 교실 분위기가 괜찮았는데, 고3부터는 모두 예민해져 있다 보니 서로 굉장히 조심한다. ‘모의고사 왜 그렇게 못 봤어’, ‘너 그러다가 재수하겠다’ 같은 말은 금기어에 속한다”고 말했다. 학원 분위기도 별반 다르지 않다. 서울 강남의 대학입시준비 학원에서 삼수를 했다는 정모(24)씨는 “친구나 친한 선후배 사이라도 말 한마디, 사소한 장난까지 신경 써야 한다. 농담이 농담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살벌한 분위기”라고 말했다.

채지선 기자 letmeknow@hankookilbo.com

김민준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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