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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석의 우충좌돌] ‘헬조선’, 성장과 인권 대립을 넘어

입력
2020.01.07 18:00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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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과 지옥 꼬이고 맞물린 현실

교육과 노동 현장, 너무 부끄럽고 답답

경쟁 피할 수 없다면 창의성 살려야

악순환에 빠진 문제들에 뒤덮여 세상이 가라앉고 있다. 우리 안에서 답답함은 폭탄이 되었고, ‘헬이다, 헬!’이라는 비명이 여기저기 터져 나온다. 지옥이 일상을 잠식하고, 둘은 한 몸이 된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악순환에 빠진 문제들에 뒤덮여 세상이 가라앉고 있다. 우리 안에서 답답함은 폭탄이 되었고, ‘헬이다, 헬!’이라는 비명이 여기저기 터져 나온다. 지옥이 일상을 잠식하고, 둘은 한 몸이 된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지옥 같은 경쟁이 교육 현장이다. 공교육은 철저히 입시학원에 의해 망가졌으며, 선행학습은 창의성을 방해하는 주범이다. 망국적이라는 말이 벌써 오래 전부터 나왔음에도, 불패를 과시하며 고약하게 지속되고 있다. 그나마 지난 십여 년 동안 이 획일적인 입시의 핵심인 수능에서 벗어나려는 교육정책이 자리를 잡아가고 있었다. 그런데 작년에 문 대통령은 정시를 확대하라는 이상한 지시를 내렸다. 시민단체뿐 아니라 교육부조차도 수능 축소를 핵심 과제로 추진했는데, 갑자기 정책의 기조를 뒤흔든 것이다. 조국 가족 때문에 수시에 대한 사람들의 분노가 높았는데, 그것을 무마하려는 정략적 동기가 개입했다는 의심을 받을 만했다. 학생부종합을 비롯한 수시 입시에 문제가 있더라도 지속적으로 개선을 해야 할 일이지, 수능 비율을 늘릴 일은 아니다.

물론 입시 정책만으로 교육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 유럽과 비교하면, 무엇보다 고졸과 대졸의 높은 임금 격차를 줄이는 것이 학력 갈등에 대한 중요한 해결책이었다. 그렇지만 로봇자동화 시스템과 인공지능의 발전으로 단순하고 일반적인 기술을 가진 고졸자들은 점점 위기에 빠지고 있으니, 그 해결책의 효과는 줄어들고 있다. 아울러 중소기업과 대기업의 임금격차도 줄어들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부동산 가격이 또 폭등해, 서울에 집을 장만하는 일이 한층 더 어려워졌다. 심리적 좌절감에 빠진 20대들은 공무원시험에 몰리다 못해, 이젠 부동산과 재테크에 몰두한다.

악순환에 빠진 문제들에 뒤덮여 세상이 가라앉고 있다. 우리 안에서 답답함은 폭탄이 되었고, ‘헬이다, 헬!’이라는 비명이 여기저기 터져 나온다. 지옥이 일상을 잠식하고, 둘은 한 몸이 된다.

이 와중에서 보수와 진보의 대립은 사회 전반에서 양극화하고 있다. 자유한국당이 퇴행적인 모습을 보이는 상태에서, 보수는 기업의 자유와 성장만 강조한다. 물론 중요하지만, 그것만으로 모든 것을 해결할 수는 없다. 보수와 반대로, 자칭 진보라는 지식인과 생태활동가들은 성장 중심의 관점에 비판적이다. 노동자의 안전과 생명을 무시하는 성장 정책과 경쟁을 전체적으로 비판하는 경향이 심해진다.

그러나 성장의 필요성이 끝난 것은 아니며, 경쟁도 단순히 악은 아니다. 성장과 경쟁을 악으로 치부하는 관점은 이념적 극단주의일 뿐이다. 자칭 진보의 상당수도 학력 경쟁에서는 보수와 다를 바 없지 않은가. 모든 성장과 경쟁을 멈추자고 말하기 어려운 게 실제 상황이다. 삶의 모든 영역에서 개인화된 심화학습과 평생학습이 끈질기고도 미세하게 확대되고 있다. 구태의연한 경쟁이나 획일적인 경쟁은 줄이거나 없애야 하지만, 새로운 방식의 경쟁은 피할 수 없다.

그렇더라도 ‘오늘도 3명이 퇴근하지 못하고’ 죽었다는 팩트는 부끄럽지 않은가? 사실이다. 노동자들의 죽음 앞에서 인권 운동가들은 한국 사회가 인권을 포기한 사회라고 혹독하게 비판한다. 이 비판엔 선의가 담겼을 것이다. 그렇지만 여기에서도 구별할 중요한 점이 있다. 한국 사회에서 인권이 단순히 포기되고 있지는 않다. 중장기적으로 개선되는 면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노동과 교육 현장에서 잔혹성이 늘어나고 있다. 왜 그런가? 개선되고 있는 인권의 효과를 경쟁과 성장의 부작용이 까먹고 있기 때문이다.

인권은 중요하지만, 각자 여유 있는 삶을 확보하려는 개인들의 개인화된 의지와 실력도 중요하다. 그 의지와 실력을 경쟁 속에서 살리고 촉진하는 일도 질주하는 사회는 포기하기 어려울 것이다. 인권과 다르면서도 그것 못지않게 중요한 경쟁을 인정해야 한다. 학교와 노동 현장에선 인권 못지않게, 능력에 따른 평가도 중요하다. 상대평가는 피할 수 없는 팩트로 굳어지고 있다. 다만, 현재의 경쟁방식은 창의성에서 거리가 한참 멀다. 경쟁을 피할 수 없는 만큼, 최소한 창의성은 살려야 한다.

이게 정말 까다로운 문제다. 성장도 살리고 실력의 경쟁도 살린다? 서로 다른 문제들이 뒤엉킨다. 문제들이 거의 지옥이다.

김진석 인하대 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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