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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공간 사람] 온실 있는 집과 서재가 큰 집의 ‘유쾌한 동거’

입력
2020.01.08 04:40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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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집은 ‘사고 파는 것’이기 전에 ‘삶을 사는 곳’입니다. 집에 맞춘 삶을 살고 있지는 않나요? 삶에, 또한 사람에 맞춰 지은 전국의 집을 찾아 소개하는 기획을 수요일 격주로 <한국일보>에 연재합니다.

경기 파주의 한 주택단지에 들어선 ‘소풍’은 40대 부부와 싱글남이 기존의 땅콩집에서 탈피해 ‘한 지붕 두 가족’의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한 시도다. ©홍석규 건축사진작가
경기 파주의 한 주택단지에 들어선 ‘소풍’은 40대 부부와 싱글남이 기존의 땅콩집에서 탈피해 ‘한 지붕 두 가족’의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한 시도다. ©홍석규 건축사진작가

집짓기는 개인 고유의 삶을 반영하는 것이라 타인과의 공유가 어려워 보인다. 육아나 사업 등 공통분모가 없다면 더더욱 그렇다. 드물지만 같이 짓겠다는 의지로 똘똘 뭉쳤다면 대개 좌우 대칭으로 크기와 형태가 동일한, 한때 유행이었던 ‘땅콩집(한 필지에 똑같이 생긴 두 건물을 붙여 지은 집)’으로 수렴됐다. 지난해 1월 경기 파주의 한 주택단지에 강혜연(48)ㆍ이남영(49) 부부와 40대 싱글남인 박모씨가 함께 지은 집은 ‘한 지붕 두 가족’의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하기 위해 땅콩집에서 탈피했다는 점에서 인상적이다.

대학 선후배인 이들은 직장과 취향, 살아온 환경과 가족 형태가 다 달랐다. 같이 집을 짓기로 한 것은 2년 전쯤 강씨 부부가 땅(대지면적 358.40㎡)을 사면서부터다. 부부는 평소 집에 관심이 많던 박씨에게도 근처에 땅을 살 것을 권유했고, 혼자 집을 짓는 데 부담을 느낀 박씨는 부부가 산 땅에 같이 집을 짓자고 역으로 제안했다. 예산도 줄이고, 적적하지 않을 듯해 이들 부부도 흔쾌히 동의했다. 편의상 땅은 강씨 부부의 명의로, 집은 박씨 명의로 했다. 비용은 강씨 부부와 박씨가 각각 6대 4로 나눴다. 집을 지으면서 크고 작은 갈등이 있을 것이라는 염려는 기우였다. ‘최소 10년간, 되도록이면 같이 살자’는 구두 합의만 했다. 집을 짓고, 실제 생활까지 이들은 큰 갈등 없이 사계절을 보냈다. 강씨는 “가족과 직장 등 서로의 삶에 변화가 적어 같이 집을 짓는 결정을 하기가 수월했다”라며 “옆집에 아는 이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든든해 불편함을 찾기 어렵다”고 말했다.

‘ㄱ’자 형태의 집에서 왼쪽 정사각형이 박씨가 거주하는 2호, 오른쪽 직사각형이 강혜연씨 부부의 1호다. 그 앞에 따로 떨어진 건물이 별채다. ©홍석규 건축사진작가
‘ㄱ’자 형태의 집에서 왼쪽 정사각형이 박씨가 거주하는 2호, 오른쪽 직사각형이 강혜연씨 부부의 1호다. 그 앞에 따로 떨어진 건물이 별채다. ©홍석규 건축사진작가

 

 ◇한 지붕 두 가족 

생활방식이 서로 다른 두 가구를 하나의 집으로 묶는 것은 건축가의 몫이었다. 설계를 맡은 조한준 소장(더함 건축사사무소)은 우선 두 가구의 요구조건부터 들었다. 강씨 부부가 원했던 것은 △햇볕이 잘 드는 남향집 △공동으로 사용할 별채 △작은 마당이었고, 박씨가 원했던 것은 △따뜻한 집 △일몰이 보이는 창 △책과 음악감상에 적합한 집이었다.

마름모형의 대지에 우선 각자가 원하는 향을 고려해 배치했다. 조 소장은 “이 집 설계에선 배치가 가장 중요했다”며 “부부의 집은 햇볕이 잘 드는 남향으로, 박씨의 집은 일몰이 보이는 서향으로 두었다”고 말했다. 자연스럽게 기역(ㄱ)자 형태의 2층집이 됐다. 서쪽을 바라보는 박씨의 집은 정사각형에 가깝고, 남향인 부부의 집은 직사각형이다. 두 집은 맞닿아 있지만 내부로는 연결되지 않는다. 서로의 사생활을 보호하기 위해서다. 출입구도 다르다. 다만 외부 마당과 별채를 공용공간으로 쓴다.

강씨 부부가 사는 1호의 1층 서재 한 켠에 햇볕을 쬐기 좋은 ‘에너지 존’이 있다. ©홍석규 건축사진작가
강씨 부부가 사는 1호의 1층 서재 한 켠에 햇볕을 쬐기 좋은 ‘에너지 존’이 있다. ©홍석규 건축사진작가
강씨 부부가 거주하는 1호의 2층 거실 한 켠에 욕조가 설치돼 있다. ©홍석규 건축사진작가
강씨 부부가 거주하는 1호의 2층 거실 한 켠에 욕조가 설치돼 있다. ©홍석규 건축사진작가

내부 공간의 크기와 구조도 완벽하게 다르다. 강씨 부부가 쓰는 1호(연면적 127.22㎡)는 햇볕을 최대한 많이 받도록 설계됐다. 마당과 바로 연결되는 1층 테라스 앞에 주방과 미니 서재(다용도실)를 뒀다. 그마저도 모자라 볕이 잘 드는 서재 코너에 창을 내어 벤치 수납장을 두었다. 이들 부부가 일광욕을 즐기는 ‘에너지 존’이다. 결혼 전까지 20여년을 주택에서 나고 자란 강씨는 “어렸을 때 집 앞 낡은 소파에 푹 파묻혀 햇볕을 쬐면서 책을 본 기억을 되살려 만든 공간”이라며 “햇볕도 쬐고, 책도 보고, 마당 풍경도 볼 수 있어서 집에서 가장 아끼는 곳”이라고 말했다.

2층에는 이들 부부의 취향을 반영한 온실과 거실, 부부의 방이 나란히 이어진다. 강씨는 “어렸을 적 마당 한 켠에 돌과 시멘트를 이용해 만든 야외 욕조가 있었다”라며 “어둡고 갇힌 욕조 말고 뭔가 바라볼 수 있는 트인 욕조가 좋아서 넓은 공간에 욕조를 설치했다”고 말했다. 거실 한 켠에 건식 욕조가 놓여 있다.

식물 가꾸기를 좋아하는 강씨 부부가 2층 끝에 마련한 온실에서 다양한 나무들이 겨울을 나고 있다. 조한준 소장 제공
식물 가꾸기를 좋아하는 강씨 부부가 2층 끝에 마련한 온실에서 다양한 나무들이 겨울을 나고 있다. 조한준 소장 제공

거실 옆은 햇볕과 바람이 통하는 온실이 있다. 식물 가꾸기를 좋아하는 부부가 식물들이 겨울 추위에 시드는 것을 막기 위해 ‘식물의 방’을 따로 내어준 셈이다. 조 소장은 “다른 집과 달리 방은 줄이고 부부가 원하는 대로 온실, 거실, 서재, 주방 등 목적에 맞는 공간이 많다는 게 집의 특색이다”라고 설명했다.

독서를 좋아하는 싱글남 박씨가 지내는 2호 1층 서재는 수백 권의 책을 꽂을 수 있는 책꽂이와 큰 탁자가 있다. ©홍석규 건축사진작가
독서를 좋아하는 싱글남 박씨가 지내는 2호 1층 서재는 수백 권의 책을 꽂을 수 있는 책꽂이와 큰 탁자가 있다. ©홍석규 건축사진작가

1호가 ‘햇볕’ 위주라면 2호는 ‘책’이 주인공이다. 1,2층 곳곳이 책꽂이로 가득하다. 집에 있는 대부분의 시간을 독서와 음악감상으로 보내는 박씨의 집인 2호(84.69㎡)는 각 층마다 서재가 따로 있다. 1층에는 주방과 서재가 있다. 일몰을 볼 수 있게 서쪽으로 테라스를 냈다. 1층 서재에는 큰 탁자를 두어 집이지만 사적 모임이나 회의 등을 할 수 있게 했다. 바닥도 타일로 깔고 벽은 노출 콘크리트를 사용해 일부러 사무실처럼 꾸몄다. 2층에는 침실과 거실, 그리고 또 다른 서재를 만들었다. 거실 창은 작고 길게 만들었다. 햇빛이 많이 들어와 책이나 음반이 상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1층이 ‘열린’ 서재라면 2층은 ‘닫힌’ 서재에 가깝다. 집중력을 높이고, 좀 더 아늑한 분위기를 낸다.

박씨의 2호 2층에도 작은 서재가 마련됐다. 박씨는 햇빛에 책이 상하지 않도록 서향을 선호하면서 창을 크지 않게 냈다. ©홍석규 건축사진작가
박씨의 2호 2층에도 작은 서재가 마련됐다. 박씨는 햇빛에 책이 상하지 않도록 서향을 선호하면서 창을 크지 않게 냈다. ©홍석규 건축사진작가

조 소장은 “기존에 두 가구가 함께 집을 짓는 경우 비용이나 설계 면에서 갈등의 소지를 줄이고자 똑같은 두 개의 집을 나란히 배치하는 게 일반적이었다”라며 “하지만 서로 다른 생활방식을 맞추기 위해 두 집의 크기, 형태, 구조 등을 다르게 해 붙어 있지만 단독 주택 같은 느낌이 들도록 했다”고 설명했다.

설계 초기부터 포함돼 있던 별채는 이웃 주민과의 교류 공간이다. 오가는 이들의 눈높이에 맞춰 창을 냈다. ©홍석규 건축사진작가
설계 초기부터 포함돼 있던 별채는 이웃 주민과의 교류 공간이다. 오가는 이들의 눈높이에 맞춰 창을 냈다. ©홍석규 건축사진작가

 ◇더불어 살았던 유년을 복원해준 집 

집 앞에는 다목적 공간으로 쓰는 별채(15.59㎡)가 있다. ‘ㄱ’ 형태의 집은 별채로 인해 ‘ㄷ’ 형태가 됐다. 자투리 공간을 별채로 만든 것도 아니다. 애초 설계 초기부터 별채는 집의 필수사항이었다. 강씨는 “집을 짓기 전에 연습 삼아 인근 타운하우스(공동주택)에 살아봤더니 이웃들과의 교류할 공간이 꼭 필요하다고 느꼈다”라며 “아파트에도 요즘 주민 공용시설이 생기듯 마을에도 주민들이 모여서 모임도 하고, 요리도 할 수 있는 공용공간이 있다면 훨씬 더 삶이 풍요로워질 것 같았다”고 말했다.

사과 껍질을 벗기다 만 듯한 모양을 닮은 별채는 동네 주민들의 모임 장소이자, 벼룩시장, 스터디카페 등 다목적으로 쓰인다. 지금은 전시를 준비 중인 예술가들의 임시 작업실이다. 도로에 접해 있는 내부 벽에 긴 창을 내어 오고 가는 이웃들과 눈높이를 맞췄다. 강씨는 “저희 부부의 삶에 맞춘 듯한 집에 살면서도 집 안에 고립돼서 살 생각은 전혀 없었다”라며 “8,90년대 흔했던 주택, 동네 문화를 되살려 앞뒤, 좌우 이웃들을 서로 배려하고, 교류하면서 더불어 살고 싶다”고 말했다. 집의 이름인 ‘소풍’은 ‘소풍 온 마음으로 인생을 살다 가자’는 뜻이기도 하지만 ‘바깥 풍경이 안으로 들어오고, 안에서 일어나는 일상도 풍경이 되는 소소한 풍경’이라는 뜻도 담았다.

두 가구의 유일한 공용공간인 마당은 외부의 시선은 차단하면서도 두 가구가 소통할 수 있게 설계됐다. ©홍석규 건축사진작가
두 가구의 유일한 공용공간인 마당은 외부의 시선은 차단하면서도 두 가구가 소통할 수 있게 설계됐다. ©홍석규 건축사진작가

부부 삶의 풍경도 달라졌다. 결혼 후 서울 시내 오피스텔에 꽤 오래 지냈던 부부는 그곳을 ‘도시 근로자 합숙소’라 불렀다. 지금은 일을 멈췄지만 한창 일할 때 이들 부부에게 집은 그저 일하면서 잠시 쉬는 곳에 불과했다. 집보다 일의 비중이 월등히 높았다. 집을 짓고 난 뒤 관계는 역전됐고, 시간은 거꾸로 흐른다. “제가 가장 행복했던 순간을 떠올려 보면 어렸을 때 집에서 머물렀던 시간이었어요. 어렸을 때라 그 순간이 동화처럼 미화된 게 아닐까라는 생각도 했어요. 오피스텔에 살 때도 잘 지내긴 했었어요. 그런데 집을 짓고 나니 어렸을 때의 그 행복감이 다시 밀려들어오고, ‘아 이제야 행복한 일상을 회복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강지원 기자 styl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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