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대사회, 신음하는 지구촌] 1부 <3>폭압정치로 권력 굳건한 마두로
달러 유통되고 재화 넘쳐나면서 베네수엘라 反정부 시위 잠잠
미국 인도적 구호품 반입 수포로 국회의장 쿠데타 실패도 원인
지난달 12일 베네수엘라 수도 카라카스의 중심지 센트로에 위치한 한 정부건물 앞에서 여성 보안요원이 지켜보는 가운데 시민들이 지나가고 있다. 카라카스=이대혁 기자

작년 초까지만 해도 니콜라스 마두로(58) 베네수엘라 정부는 오래 가지 못할 것으로 보였다. 2015년 버락 오바마 정부부터 시작된 베네수엘라에 대한 미국의 경제 제재는 도널드 트럼프 정부에서 더욱 강화됐고, 지난해 1월 반정부 성향의 야당 정치인 후안 과이도(37)가 국회의장에 오른 직후 임시 대통령을 자처하면서 50개국이 넘는 서방 국가들의 지지를 받고 있었다. 연일 나라를 떠나는 국민들이 늘어나면서 인근 중남미 국가들마저 마두로 정부에 대한 고립 정책에 나서면서 마두로의 실각은 기정사실화하는 분위기였다. 미국이 군사적 개입을 검토하고 있다는 보도도 나왔기에 정권 교체가 손 앞에 다가섰다는 평가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기자가 방문한 지난달 10~14일, 마두로 정권은 언제 그랬느냐는 듯 건재했고 앞으로도 쉽게 무너지지 않을 것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남미에서 정치적으로 가장 안정된 나라”

지난달 11일 베네수엘라 수도 카라카스에서 만난 50대 기업인 후안 카를로씨는 “이곳 정치인, 해외 언론인 등이 요새 하는 말이 ‘현재 베네수엘라는 남미에서 정치적으로 가장 안정된 나라가 됐다’는 것”이라고 웃으며 말했다. 칠레, 에콰도르, 콜롬비아, 볼리비아 등 인근 남미 국가들이 반정부 시위로 몸살을 앓고 있는 반면, 베네수엘라는 반정부 시위 없이 잠잠했기 때문이다. 수도 카라카스에서 시위가 가끔 일어나긴 하지만, 준공무원으로 최저임금을 받는 간호사, 교수 등이 임금 인상을 요구하는 시위 등 소규모에 불과한 것이 현실이다.

생필품ㆍ전력ㆍ식품 부족 등이 베네수엘라의 경제 붕괴를 촉진, 마두로 정부에 치명타가 될 것이라는 서방의 기대도 시장에서 달러가 유통되고 물건들은 넘쳐나면서 쏙 들어간 지 오래다. 민간을 중심으로 시장에 달러가 통용되면서 경기가 회복된 것은 베네수엘라에 대한 미국의 제재가 약발이 없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트럼프 미 대통령이 지난해 8월 “미국 내 베네수엘라 정부의 재산과 이익에 관한 모든 거래를 금지하겠다”고 밝힌 추가 제재는 ‘마두로 제거를 위한 가장 단호한 조치’라는 평가까지 받았으나 경제가 되살아나면서 무색해진 상황이다..

지난해 2월 23일 베네수엘라와 맞닿은 콜롬비아 국경도시 쿠쿠타에서 베네수엘라 주민들이 불에 타고 있는 트럭에서 국제사회의 구호품을 내리고 있다. 쿠쿠타=로이터, 연합뉴스

◇날아간 두 번의 기회

현지 주민들에 따르면 지난해 마두로 정부를 무너뜨릴 결정적 기회가 없진 않았다. 2월 23일 인도주의적 구호 물자가 콜롬비아 국경에서 베네수엘라로 유입되는 것과, 4월 30일 과이도 국회의장의 쿠데타 시도가 그것이다. 결론적으로 두 번의 기회는 모두 수포로 돌아갔다. 기업인 훌리오 바크씨는 “인도적 구호품이 못 들어온 게 마두로 정부가 건재하게 된 가장 큰 배경”이라고 설명했다.

당시 미 국무부는 베네수엘라로 보낸 인도주의적 구호품인 식량과 의약품 반입을 성공시키기 위해 엘리엇 에이브럼스 특별 대표를 콜롬비아 국경도시에 파견했다. 에이브럼스 대표의 임무는 마두로 정권 퇴진 후 권력을 국회의장인 과이도에게 넘겨주는 것이었다. 구호품이 국경을 넘어 베네수엘라 국민들에게 전달될 경우, 이후 국경은 속절없이 뚫리고 마두로 정부는 버티지 못할 것이라는 계산이었다. 그러나 마두로 정부는 생중계까지 되던 미국의 구호품 전달 시도를 저지했다. 군인들이 최루탄을 쏘며 구호대와 국민들을 해산시킨 뒤 구호품을 불에 태워버린 것이다. 바크씨는 “베네수엘라 국민들이 구호품을 배웅하러 국경 다리를 넘었는데, 군대에서 최루탄을 쏘니 다 흩어져버렸다”며 “국경을 뚫고 정부를 무너뜨리겠다는 사람들이 최루탄 몇 발에 혼비백산한 것”이라며 혀를 찼다.

4월 과이도 의장이 주도한 군사봉기도 해프닝으로 막을 내렸다. 그는 중무장 군인 70여명을 이끌고 “무장 봉기를 통해 마두로 대통령을 이 나라에서 축출하자”며 거리로 나섰고,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과이도 베네수엘라 임시 대통령이 ‘자유의 작전’을 개시했다”고 지지했다. 하지만 베네수엘라 군부가 마두로 정권에 대한 충성을 유지하면서 실패로 돌아갔다. 이후 과이도 의장은 부패 스캔들에 연루되면서 국민의 신뢰를 잃었고, 마두로 정부는 암달러 유통으로 살아난 경기를 등에 업고 되레 권력을 강화하고 있다. 직장인 라울 패사노씨는 “과이도는 끝났다. 국회는 식물국회다”며 “국민들은 제 스스로 사는 법을 찾고 있다”고 말했다.

베네수엘라 수도 카라카스에서 니콜라스 마두로 정부를 지지하는 친정부지지자들이 지난해 12월 15일 헌법 개정 20주년을 축하하는 행진을 벌이고 있다. 현재 베네수엘라에서는 반정부 시위는 거의 없어진 상태다. 카라카스=AP, 연합뉴스

◇죽음의 공포, 국민들은 얌전해졌다

베네수엘라 국민들이 나라를 떠날 망정 마두로 정부를 전복시킬 힘을 모으지 못하는 이유를 현지 주민들은 ‘길들여짐’과 ‘공포’로 꼽는다. 국민 80%가 현 정부가 배급하는 식량상자 ‘클랩(CLAP)’에 의존하는 등 우고 차베스 전 대통령의 ‘무상’ 복지책에 길들여진 데다, 마두로 정부가 ‘폭압’으로 국민들에게 공포감을 심어 옴짝달싹하지 못하게 하고 있다는 얘기다.

공포는 2017년 반정부 시위에서 극명하게 심어졌다. 그해 4월부터 시작된 반정부시위에서 마두로 정부는 유혈로 제압, 국민 120여명이 목숨을 잃었다. 특히 마두로 정부는 폭력배, 수감자들을 풀어 친정부 시위대를 조직했고 이들에게 무기까지 지급해 반정부 시위대를 공격하도록 하면서 사상자가 늘었다는 게 중론이다. 호르헤 코스(23) 베네수엘라 민간 공공부문연구소 연구원은 “정부가 국민들을 향해 총을 들었다면 국제적으로 문제가 되니까 깡패들을 내세워 총을 쏘게 했다”며 “정부는 자신들이 한 게 아니라고 우기면서 잡는 시늉만 하는데, 국민들은 목숨을 잃을까 무서워 이후 시위에 나설 엄두를 못 낸다”고 토로했다. 지난해 1월 과이도 의장의 등장으로 다시 고조된 반정부 시위에서도 마피아, 범죄자로 구성된 마두로의 민병대가 나서 20명 안팎이 사망하자 시위 열기는 금세 움츠러들었다. 기업가 바크씨는 “만약 한국에서 반정부 시위 중 국민 100명 이상이 죽었다고 하면 그 정부는 견딜 수 있겠나”라며 “하지만 여기는 꿋꿋하게 정권을 유지할 수 있는 나라”라고 말했다.

카라카스=이대혁 기자 selected@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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