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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 떠도는 슈퍼박테리아 환자 급증… “CRE 토착화” 경고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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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 떠도는 슈퍼박테리아 환자 급증… “CRE 토착화” 경고음

입력
2020.01.04 04:40
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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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병원 “병 옮길라” 퇴원 압박… 요양병원은 “손 많이 가” 안 받아

2017년 첫 전수감시 때의 3배… 전문가들 “시설료 주고 CRE인증제 확대를”

슈퍼박테리아 카바페넴 내성 장내세균(CRE).
슈퍼박테리아 카바페넴 내성 장내세균(CRE).

전직 간호사 이모(33)씨의 아버지는 사고로 의식을 잃어 지난해 7월부터 경기 고양시 모 대학병원에 입원해 왔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아버지는 입원 중 슈퍼박테리아인 카바페넴 내성 장내세균(CRE)에 감염됐다는 판정을 받았고, 이로 인해 병원으로부터 ‘퇴원’ 압박을 받았다. 이씨는 “병원을 나가야 하지만 CRE 환자를 받겠다는 요양병원을 찾을 수 없어 큰 고생을 했다”고 말하며 한숨을 쉬었다.

이씨의 사례처럼 항생제에 대한 내성이 있어 치료가 힘든 슈퍼박테리아의 일종인 CRE 감염 환자들이 입원할 병원을 찾지 못해 이중고를 겪는 상황이 새해에도 심화되고 있다. 감염자 확산에 대한 우려 때문이라지만, CRE 환자들이 크게 늘어가는 가운데 이들을 관리할 의료시설(주로 요양병원)이 부족하면서 자칫 슈퍼박테리아 감염의 ‘토착 질병화’까지 걱정되는 상황이다.

[저작권 한국일보] CRE감염 환자 수. 신동준 기자
[저작권 한국일보] CRE감염 환자 수. 신동준 기자

종합병원과 요양병원이 서로 CRE환자를 떠미는 상황이 속출하면서 감염사례가 급증, 지난해 CRE환자는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3일 질병관리본부에 따르면 2019년 말 기준 CRE 환자는 1만5,221명으로, 발병사례 전수감시가 시작된 2017년(5,717명)의 3배에 달한다. CRE는 장내세균 치료에 사용하는 가장 강력한 항생제인 ‘카바페넴’에 내성을 가진 세균들로 폐렴, 요로감염 등 심각한 감염을 일으킨다. 다른 슈퍼박테리아보다 치료가 어려워 동일한 패혈증을 일으켜도 사망률이 30~40% 높다. 대개 의료기관 내 의료진이나 간병인과의 접촉을 통해 전파되지만, 대학병원 등 상급종합병원과 요양병원을 오가는 환자들이 많은 현실에서 전파경로 추적조차 어렵다.

그러나 환자가 체내에서 CRE를 배출하기까지 회복기를 보낼 요양병원이 부족한 상황이다. CRE환자를 받는 요양병원은 수도권에 10곳 이하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입원환자 1명당 매일 정해진 대가를 건강보험으로부터 지급받는(일당정액제) 요양병원 입장에선 굳이 손이 많이 가는 CRE환자를 받을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격리실을 갖춘 요양병원도 드물다. 요양병원은 감염관리 수준이 떨어져서 간호인력이나 다른 환자에게 CRE가 전파될 우려도 있다. 이씨는 수소문 끝에 최근 아버지를 전원시킬 요양병원을 찾았지만, 먼저 입원한 CRE환자가 퇴원해 병실이 비기를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다.

CRE환자들은 종합병원들의 퇴원 압박에까지 시달린다고 주장한다. 종합병원처럼 급성기 치료를 담당하는 의료기관들은 입원 16일째부터 건강보험으로부터 지급받는 입원료 수가가 줄어들기 때문에 CRE보균자를 되도록 빨리 내몰려 한다는 설명이다. 요양병원은 입원 181일째부터 입원료 수가가 줄어든다. 이씨는 “병원 직원으로부터 중환자실 환자들도 다 퇴원시킨 경험이 있다는 말까지 들었다”라면서 “나도 대학병원 간호사 출신이라 사정은 알지만 갈 곳이 없는데 어떡하느냐”라고 하소연했다.

보건복지부는 격리설비와 인력을 갖춘 요양병원에 ‘감염예방관리료’라는 건강보험 수가를 추가로 지급해 감염병 환자들을 받도록 독려하겠다는 입장이지만 현장에서는 근본적 대책이 아니라고 본다. 이재갑 한림대 강남성심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CRE환자를 받으면 각종 검사 등 처치가 늘어날 수밖에 없는데 대가는 정액제에 묶여 있다”면서 “요양병원이 3차 이후의 4차병원이 된 셈인데 종합적인 건강보험 수가 체계 조정이 필요하다”라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대책을 내놓지 않는다면 앞으로 개별 병원이 감염관리에 만전을 기한들 전국적으로 CRE 발생을 저지할 수 없는 사실상 ‘CRE 토착화’에 직면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엄중식 가천대길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토착화 과정에 돌입”했다고 평가하고 “격리실을 운영하는 요양병원이 있다면 대가를 따로 지급해야 한다”라고 조언했다. 이재갑 교수는 “서울시는 자체 예산을 들여 요양병원에 대한 컨설팅을 지원하는 한편 환자들이 믿고 찾아가도록 CRE 인증제를 도입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데 이런 사업을 전국단위로 확대해야 하지만 복지부나 질병관리본부가 예산 확보에 어려움을 느끼는 것 같다”라면서 “지금 CRE를 제어하지 못하면 후폭풍이 엄청날 것”이라고 우려했다.

김민호 기자 km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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